[식판경제학] 4. 남동산단-다시 채울 세개의 레시피
[일본 고이소 슈지 교수]
산단 위기로 지역경제 환류 구조 흔들
숙련기술 맥 끊긴 현실 남동과 판박이
노동자 식탁, 지역경제 전체 축소한 격
[영국 스티브 포더길 경제학자]
토지·산업용 부동산, 고용 창출 수단
산단 성공 기준, 창출된 일자리 수 꼽아
정부, 기업 들어올 준비된 공간 공급을
[스페인 마르크 산스 자문관]
남동산단 새 방향, 22@ 혁신지구 제시
제조 산업 넘어 지식 산업 플랫폼으로
강력한 실행 주체, 산업단지 혁신 좌우


"지역경제학자로서 오랫동안 산업 발전을 '지역의 관점'에서 연구해 왔습니다. 산업 정책의 진정한 가치는 차가운 통계 지표가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식탁 위에서 비로소 증명됩니다."
일본 홋카이도분교대 지역창조연구센터장 고이소 슈지(小磯修二) 교수는 인천일보와 인터뷰에서 이번 기획 본질을 아우르는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가 말하는 산업단지 지속가능성은 수출 실적이나 생산량 같은 숫자에 있지 않다. 노동자 임금이 안정적인가, 그 소득이 지역 안에서 선순환하는가, 그래서 일터 주변에서 삶을 꾸리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가 하는 '삶의 질'에 방점이 찍힌다.
"노동자가 점심으로 무엇을 먹고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는 고용의 질과 지역경제 구조 자체를 투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식판경제학(Lunch Tray Economics)'이란, 바로 이러한 삶의 상징들이 응축된 개념입니다."
남동산단 식판을 따라 걷고 있다는 취재팀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동자의 점심 한 끼는 개인의 생활 양식이 아니라, 그 사회 산업 구조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는 뜻이다.

▲장면 열둘, "남동의 부가가치는 인천에 남고 있습니까?"
고이소 교수는 일본의 고도성장기를 지탱했던 가와사키와 기타큐슈 사례를 든다. 이 도시들은 환경오염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산업단지를 도시 인프라와 결합해 '살기 좋은 도시'로 진화시켰다.
그는 인천에 묻는다. "남동산단 부가가치는 인천에 남고 있는가?"
그의 진단은 매섭다. 산업단지가 외부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발생한 이익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간다면, 생산 지표가 아무리 높아도 지역민 식탁은 풍성해질 수 없다.

고이소 교수는 "중소기업이 지역 경제 공급망에 단단히 통합되고, 노동자 소득이 지역에서 소비되며 다시 재투자되는 '환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산업 정책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남동산단 위기는 단순히 기계가 멈춘 것이 아니라, 지역 경제 생태계로서의 기능이 저하된 데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일본이 먼저 겪은 '인구 구조의 역습'이 남동산단 식판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복병이 될 것이라 내다봤다. 일본 중소 제조업체들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문을 닫고, 숙련 기술의 맥이 끊기는 현실은 지금 남동의 '청년 부재'와 판박이다.
"산업단지가 단순한 생산 공간으로만 기능한다면 젊은 세대는 절대 정착하지 않죠. 주거와 교육, 문화, 녹지가 통합된 도시 개발이 이뤄질 때 비로소 인적 자원이 뿌리내릴 수 있습니다."
특히 그는 인천이 가진 '국제적인 연결성'을 주목했다. 물류 역량과 공항 중심 경제권이라는 강력한 자산이 있음에도, 왜 지표가 후퇴하는가에 대한 답을 '사회적 자본'에서 찾았다.
"경제 순환은 단순한 소득 증대 그 이상입니다. 상점, 학교, 지역 단체를 유지하는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 신뢰와 네트워크가 쌓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의 점심 식탁은 지역 경제 구조 전체를 축소해 놓은 모습입니다."
결국 남동을 다시 움직이게 할 동력은 외부 대기업 유치나 일시적인 보조금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의 자립도'를 높이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산업 정책과 도시 정책, 그리고 지역 순환 구조를 하나로 통합하는 정교한 설계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남동의 식판은 계속해서 비어갈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장면 열셋, "영원한 일자리는 없다. 공간이 일자리를 부르게 하라"
고이소 교수가 식판 '내용물'에 대한 지역 순환을 강조했다면, 영국 경제학자 스티브 포더길(Steve Fothergill) 교수는 그 식판을 놓을 '식탁(공간)'의 문제를 직설적으로 파고들었다. 1980년대 영국의 가혹한 제조업 구조조정을 연구해온 그는 남동산단 노후화를 바라보며 '부동산과 산업 개발'의 연결고리를 화두로 던진다.
"배경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저는 1987년에 『Property and Industrial Development』라는 책을 썼습니다. 영국의 경험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결과였죠. 그때 얻은 결론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적절한 토지와 개발용 부동산이 없다면 경제 성장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토지와 산업용 부동산은 일자리가 가장 필요한 지역에 고용을 창출하는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입니다."
포더길 교수는 산업단지의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 '창출된 일자리 수'여야 한다고 단언한다. 동시에 그는 남동이 직면한 공포를 건드리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제조업 일자리는 필연적으로 줄어든다는 사실.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제조업 부문에서 '영원한 일자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현대 경제의 본질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사라졌을 때,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일자리가 즉시 공급되느냐입니다. 현재 영국 산업단지에 있는 기업들은 20세기 중반 조성 당시의 기업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끊임없이 교체되죠."

그는 한국이 수십 년간 제조업에서 거둔 성공이 오히려 '제조업 고용'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라는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조업은 서비스업보다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기 쉽기 때문에, 생산성이 오를수록 고용은 줄어든다. 독일조차 겪고 있는 이 숙명에서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 경험을 보면, 특정 지역을 성공시키고자 할 때 민간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들은 스스로 건물을 설계하고 지을 여력이 없습니다.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좋은 건물을 임차하거나 매입해 들어오죠. 즉,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산업이 즉시 입주할 수 있는 '준비된 공간'을 계속해서 공급하는 것입니다."
남동산단 낡은 공장들이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나 첨단 물류업으로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비어가는 것은, 그 공간이 현대 기업들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충고다. 골목에 편의점조차 귀한 남동산단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장면 열넷, "남동을 위해 밤낮으로 고민할 '컨트롤 타워'가 있는가"
마지막 제언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날아왔다. 바르셀로나 시의회 국제경제진흥 자문관인 마르크 산스 구야나벤스(Marc Sans Guanyabens)는 남동산단이 가야 할 구체적인 모델로 '22@ 혁신지구'를 제시한다. 과거 섬유 산업 중심지였으나 쇠퇴해가던 포블레노우 지역을 세계적인 테크 허브로 바꾼 사례다.
"22@는 전통적인 의미의 산업단지가 아닙니다. 기존의 낡은 산업지역에 공공기관, 기업, 대학이 협력하는 '트리플 헬릭스(Triple Helix)' 전략을 입힌 '혁신지구'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곳이 제조시설이 아니라 첨단 기술과 지식 기반 서비스, 연구시설을 유치했다는 점입니다."
산스 자문관이 꼽는 성공의 핵심은 '강력한 실행 주체'다. 바르셀로나 시정부는 '22@SA'라는 공공 전담 기구를 설립해 약 200헥타르에 달하는 산업 용지를 직접 주거, 업무, 공공 기능이 어우러진 복합 거점으로 재설계했다. 시정부가 광섬유망, 중앙 냉난방 시스템, 전기차 충전소 같은 인프라를 직접 투자해 구축했기에 민간 기업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수 있었다.
"과거 포블레노우의 전성기 종사자는 10만명이었습니다. 쇠퇴기에는 3만명까지 줄었죠. 하지만 혁신지구로 전환한 지금, 종사자는 11만5000명에 달합니다. 연간 경제 성과만 51억유로(약 7조원)입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이 중 절반이 지식 기반 산업 종사자라는 점입니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공공임대주택을 대거 공급하고, 지역개발기구인 '바르셀로나 액티바'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디지털 기술을 교육한 사례를 강조했다. 기술 고도화 과정에서 기존 노동자들을 '배제'하지 않고 '재교육'을 통해 생태계 안으로 포용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산단의 핵심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인천의 구체적인 상황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산업·혁신 유치 체계가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을 넘어서, '지식'과 '인재'가 모이는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산스 자문관은 인천 상황에 대해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제조업과 국가 주도 모델은 그간 대단한 성공을 거뒀지만, 이제는 지식 기반 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바르셀로나가 겪었듯, 기존 산업지구를 소생시키는 것은 강력하고 전문적인 실행 주체가 지속적으로 밀어붙일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혁신은 종이 위 계획안이 아니라, 그것을 현장에서 관철하는 주체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남동을 위해 밤낮으로 고민하고 실행할 전담 기구가 현장에 있냐고 인천에 묻고 있는 것 같았다.
/김원진·정혜리·홍준기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그래픽 이연선 기자 yonsony@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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