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규제·의약품값·쌀…미 ‘비관세 장벽’도 조사 압박

11일(현지시각)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을 포함한 16개 경제주체를 상대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시작한 것은 연방대법원 판결로 무효가 된 국가별 상호관세를 다른 형태로 복원하려는 신호탄이다. 미국은 디지털 규제, 의약품 가격 책정, 쌀 시장 개방 등 분야에서도 추가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향후 한국을 향한 통상 압박이 확대될 수 있다.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무역 관행에 대해 관세 등 보복 조처를 할 수 있도록 한 301조 조사의 첫 대상 분야로는 ‘제조업 과잉생산’이 선택됐다. 보조금, 수출장려 정책, 금융 지원 등을 통해 수요보다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각국의 ‘과잉생산’이 가격 하락과 대미 무역흑자로 이어졌고, 그 결과 미국은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피해를 봤다는 것이 무역대표부의 논리다. 무역대표부는 지속적인 무역흑자를 과잉생산의 주요 증거 중 하나로 제시했다. 대미 무역흑자 규모에 비례해 관세를 높게 부과했던 상호관세와 유사한 논리 구조로, 각국의 흑자 규모가 최종 관세 수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무역대표부는 한국을 조사 대상에 포함한 이유로 “크거나 지속적인 무역흑자를 통해 구조적 과잉생산 능력의 증거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대상에는 중국, 일본, 대만 등 주요 대미 무역 흑자국이 대부분 포함됐다.
원칙적으로 무역대표부는 301조 조사 과정에서 관련 법령에 따라 각국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대응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가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줄어든 관세 수입을 보완하는 성격이 강한 만큼, 협의 절차를 거치더라도 결국 추가 관세 부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미 무역 합의로 15%로 결정됐던 한국의 상호관세는 지난달 말 미 대법원의 판결로 무효가 됐고, 현재는 전세계적으로 적용되는 10%의 글로벌 관세만 부되고 있다. 301조 조사 결과에 따라 최소 5%포인트 수준의 추가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문제는 관세율 복원이 이번 조사의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는 이날 언론 전화 브리핑에서 “앞으로 더 많은 301조 조사가 있을 것”이라며 “디지털 서비스세, 의약품 가격 책정, 수산물과 쌀 시장 접근, 해양오염 같은 환경문제 등 미국 업계가 제기해온 사안들이 추가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에 지속해서 문제를 제기해 온 비관세 장벽 분야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특히 디지털 분야에서는 한국을 겨냥한 조사 가능성이 거론된다. 무역대표부는 지난해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플랫폼 규제, 망 이용료 부과 입법,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 등 한국의 디지털 통상 장벽을 문제 삼았다. 또 미국 제약·의료기기 업계를 인용해 한국의 약값 결정 방식과 건강보험 급여 정책의 투명성이 부족하며, 정책 변경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히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리어 대표는 이날 브리핑에서 쌀 시장 접근 문제도 추가 조사 가능 분야로 거론했는데, 미국이 지속해서 한국에 제기해 온 사안이다.
무역대표부는 두번째 301조 조사 대상으로 각국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제를 갖추고 있는지 살피기로 했다. 그리어 대표는 “(이 조사는) 각국이 강제노동 생산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대외적 법제를 마련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약 60개국이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통해 중국 신장위구르에서 생산된 제품이 강제노동과 연관됐다고 추정하고 수입을 제한한다. 신장산 원자재가 제3국을 거쳐 우회 수출되는 경로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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