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마감압박 무질서…근대 공간의 태동

박현주 책칼럼니스트 2026. 3. 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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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엘리베이터 자동차 지하철 카페 식당 쇼핑센터.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공간이다.

'움직이다: 확장의 장소/기차역 실험실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연결하다: 조종의 장소/신문사편집부 전화교환소 노동청 중앙당 기업형농장' '가까워지다: 거리두기의 장소/해변 그랜드호텔 댄스홀 경기장' '설계하다: 합리화의 장소/제철소 고층건물 교외주택단지 댐' '점유하다: 전시의 장소/백화점 민족학박물관 영화관 웨이트룸 스트립클럽' '밀집하다: 파괴의 장소/잠수함 전선 벙커 강제수용소' '물러나다: 해방의 장소/소도시 주말농장 아파트 기표소 카우치' '체험된 세계: 근대의 경험 공간' 이렇게 구성된 각 장에 등장하는 장소가 모두 32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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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장소들: 19세기와 20세기의 경험세계
알렉사 가이스트회벨 외 지음/이노은·이재원 옮김/교유서가/4만2000원

- 1870~1930년대 세기 전환기
- 역·제철소·극장·벙커 등 32곳
- 현대 삶으로 이어져온 옛 공간
- 獨 역사학자 25명 탐구·분석

아파트 엘리베이터 자동차 지하철 카페 식당 쇼핑센터…. 현대인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들은 어떻게 시작되어 우리의 감각과 행동을 길들여왔을까.

1900년 경의 ‘베를리너 일루스트리어테 차이퉁’ 편집부. 교유서가 제공


인천대학교 인문학연구소 번역 총서 발간 프로젝트로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근대의 장소들’은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공간적 경험이 탄생한 ‘고전적 근대’의 결정적 순간들을 포착한다. 알렉사 가이스트회벨(베를린 샤리테 의과대학 의학사 연구소 연구원)을 비롯해 독일의 역사학자 25명이 집필한 책이다. 근대라는 시대를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며 특징적인 장소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저자들은 역사학을 바탕으로 7개 그룹으로 나눈 32개의 근대적 장소가 어떻게 형성되고 사용되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인식되었는지 자세히 관찰해 기록했다. 이 책에서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근대’는 시기적으로 1870년대에서 1930년대에 이르는 ‘긴 세기전환기’다. 오늘날 도시의 공간들은 이 시기에 탄생한 장소들로 둘러싸여 있다.

6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인데, 목차를 먼저 꼼꼼하게 살펴보면 부담이 아니라 호기심이 더 강해진다. ‘움직이다: 확장의 장소/기차역 실험실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연결하다: 조종의 장소/신문사편집부 전화교환소 노동청 중앙당 기업형농장’ ‘가까워지다: 거리두기의 장소/해변 그랜드호텔 댄스홀 경기장’ ‘설계하다: 합리화의 장소/제철소 고층건물 교외주택단지 댐’ ‘점유하다: 전시의 장소/백화점 민족학박물관 영화관 웨이트룸 스트립클럽’ ‘밀집하다: 파괴의 장소/잠수함 전선 벙커 강제수용소’ ‘물러나다: 해방의 장소/소도시 주말농장 아파트 기표소 카우치’ ‘체험된 세계: 근대의 경험 공간’ 이렇게 구성된 각 장에 등장하는 장소가 모두 32곳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공간들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체험됨으로써 근대의 경관을 형성해 왔다. 그리고 이 세기전환기의 공간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근대적 자기 인식이 가능한 장소들이었다.

‘연결하다: 조종의 장소/신문사 편집부’로 떠나보자. 1900년경, 독일 베를린 중심부에 있는 울슈타인출판사. 이 출판사 소속의 여러 신문사가 함께 있었다. ‘베를리너 차이퉁’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베를리너 일루스트리어테 차이퉁’. 이 건물에는 100명 가까운 편집자들이 근무했다. 7년 사이에 3개가 증가한 숫자이다. 세기전환기의 신문 붐을 타고 발행 부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베를리너 일루스트리어테 차이퉁’ 편집부 사진이 책에 실려 있다. 사진에 대한 설명이다. “편집부 자체는 혼란스러운 인상을 준다. 그들의 방을 찍은 당시의 사진들은 무엇보다 근대적 커뮤니케이션이 집약되어 표현된 모습을 보여준다. 전화, 전보, 넘쳐나는 우편함, 책장, 사진, 신문 더미 등이 기자들을 둘러싸고 있다. 이미 1900년경에도 생산적 무질서가 편집부의 특징이었다. 국가행정기관의 모습과 달리 책상에는 종이가 가득 쌓여 있었고, 종이 사이로 종종 커피잔이나 가득 찬 재떨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편집부는 지식사회에서 창의적이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마감의 압박 속에서 처리해야 하는 과중한 업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산적 무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공감할 부분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읽기 부담스럽다면 평소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장소부터 골라 읽어도 무방하다. 100여 년 전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근대적 삶의 감각과 행동을 형성했던 공간들이다. 21세기의 우리도 많은 부분에서 과거와 비슷한 공간 체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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