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중동 탈출르포] 이란 미사일 눈앞에서 격추 … 부모님과 중동사막 '필사의 탈출'

이소연 기자(lee.soyeon2@mk.co.kr) 2026. 3. 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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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여행 비행기서 전쟁 발발
여권만 든채 카타르공항 노숙
"한국 못 가는 거 아냐" 발동동
겨우 현지차량 구해 육로탈출
11일만에 돌아와 안도의 한숨
지난달 28일 이란 전쟁 발발 직후 모든 비행편이 취소된 카타르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에서 발이 묶인 승객들이 맨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란에서 쏘아올린 미사일이 격추될 때마다 휴대폰에서 국가 비상사태 알림이 울렸다. 카타르 도하 이소연 기자

어머니 환갑을 기념해 떠난 첫 가족 유럽 여행이 출발 17시간 만에 악몽으로 바뀌었다. 바르셀로나의 호텔을 예약하고 가우디 건축물 입장권과 기차표까지 예매했지만 스페인 땅은 밟아보지도 못했다. 대신 가족에게 남은 것은 미사일 공습 속 공항 노숙과 카타르 장기 체류, 사막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건너는 육로 이동과 끝없는 환승 비행이었다.

기자의 가족은 지난 2월 27일에서 28일로 넘어가는 밤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뒤 카타르 도하 하마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현지시간 아침 8시 15분 스페인행 카타르항공 비행기에 올랐고 곧 이륙했다. 하지만 곧 기내 방송이 나왔다. "항공기가 회항합니다." 비행기는 쿠웨이트 상공에서 방향을 틀어 5시간 만에 카타르공항으로 되돌아갔다.

낮 12시 비행기가 활주로에 내리자 기내 분위기는 패닉에 휩싸였다. "삐―삐―." 300여 명 승객의 스마트폰에서 동시에 재난 경보음이 울린 것이다. 건너편 한 백인 승객이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워(War)."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막 시작된 순간에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이다.

공항에 내려보니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환승객 수천 명이 항공사 카운터 앞에 몰려들었고 직원들은 "언제 비행기가 다시 뜰지 알 수 없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짐도 없이 여권과 지갑만 들고 시작된 기다림은 밤까지 10시간 넘게 이어졌다. 공항 의자와 바닥 곳곳엔 발이 묶인 여행객들이 널브러져 잠을 청했고, 기자의 가족도 노숙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이게 하루이틀이면 재밌는 해프닝으로 끝나겠지만 오래 지속되면 어떡하냐"며 한숨을 쉬셨다.

밤 10시 20분께 멀리서 둔탁한 저음의 '펑'하는 소리가 처음 들렸다. 까만 밤하늘 위로 주황색 불꽃이 수직으로 치솟았다. 이란이 쏜 미사일이 카타르 영공에서 격추되는 장면이었다.

하루 가까이 공항에 갇혀 있던 기자의 가족은 3월 1일 새벽 4시 카타르항공에서 추가로 마련한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앞 마트로 가 속옷과 잠옷 등 간단한 옷가지와 라면, 생수 같은 비상식량을 구입했다. 유럽여행을 위해 챙긴 캐리어 대신 비닐봉지 몇 개가 가족이 가진 전부가 됐다. 이 상태로 카타르에 발이 묶인 다른 환승객 수백 명과 기약 없는 호텔 생활이 시작됐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미사일 공습이 이뤄졌다.

각종 탈출 방법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육로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동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아랍 땅에서 개인이 차를 빌려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는 건 웬만큼 용감하지 않고는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갇힌 관광객과 교민 수가 카타르의 10배인 두바이에서만 전세기가 뜰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혹시 카타르가 보유하고 있는 요격용 방공무기가 떨어질 경우 어쩌나"란 우려가 커진 이유도 있었다. 3월 7일 새벽 6시, 기자의 가족은 5인승 SUV와 현지 운전사를 구해 사우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카타르 '아부삼라'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면 사우디 '살와'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 심사와 수하물 검사 등을 하게 된다. 수십 명의 여행객 사이에서 몇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린 후 기자 가족도 사우디에 입국할 수 있었다.

이후 5시간 넘게 낙타 무리와 정유시설 옆을 지나 달린 끝에 사우디 리야드에 도착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사우디에도 이란의 공격이 이어졌고, 비행 일정도 계속 연기됐다. 리야드의 킹칼리드국제공항에는 인근 국가에서 넘어온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3월 8일 밤 8시,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 좌석에 몸을 실었을 때만 해도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이륙이 불가능하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이란의 드론 공격 때문이었다. 밤 11시 30분 마침내 "영공이 다시 열렸다"는 기장의 짧은 안내와 함께 기체가 지면을 박차고 올랐다.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일주일 만에 드디어 중동을 벗어나게 된 것이다.

비행기는 3월 9일 새벽 4시가 넘어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눈을 붙인 뒤 이날 저녁 6시 몽골 울란바토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3월 10일 저녁 8시 마침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카타르 도하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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