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운영하는 OTT ‘지하실’…“디지털 시네마테크 되고파”[영화, 직접 틉니다]
해외 독립·예술 영화를 한국에 들여오는, 혹을 그를 시도하는 개인은 많다. 수입배급사 찬란의 오랜 투자 파트너인 배우 소지섭부터 한 편을 어쩌다 개봉시킨 이후 소식이 없는 무수한 1인 수입사들까지. 특히 2010년대 중반 <비긴 어게인>과 <위플래시>, 2020년대 중반 <서브스턴스> 등 이례적인 흥행작이 나올 때면 ‘나도 한 번…?’ 하며 해외 필름마켓을 찾는 발걸음이 늘기도 했다.
김도현씨(34)의 행보는 그와 비슷한 듯 다르다. 그는 영화를 ‘극장’에 들여오지 않는다. 김씨가 지난해 7월 시작한 ‘지하실’은 그가 운영하는 1인 OTT(온라인 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이다. 구독료는 월 9500원, 매달 아트하우스 영화 10~15편을 선정해 가져온다. 구독자들은 사전 공지된 기간 동안 홈페이지에서 그 영화들을 시청할 수 있다. 판권사로부터 라이선스를 확보해 직접 자막을 달고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등급 심의를 의뢰한 작품들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OTT라는 생소한 모델을 시도하고 있는 김씨를 지난달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그는 극장이나 기존 OTT에서 볼 수 없는 고전·예술영화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창구가 적다”는 생각에서 이 플랫폼을 고안하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청소년기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하지만 영화를 본격적으로 깊게 보기 시작한 건 2022년 즈음 영화 모임(시네클럽)을 꾸리게 되면서부터다. “모임은 회당 다섯 명씩 소규모로 진행했는데, 영화 한 편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네다섯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정동 경향신문 빌딩 안에 있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와 서울 마포구 한국영상자료원, 서울 종로구의 독립·예술극장 에무시네마 등을 찾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다. 특히 이 공간들에서 한시적으로 열리는 기획전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실 김씨가 처음 자연스레 꿈꿨던 건 극장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간을 운영하는 건 부대비용이 크게 드는 일이죠. 보다 실현 가능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OTT로 생각이 흘러갔습니다.”

김씨는 지하실을 ‘디지털 시네마테크’라고 소개한다. 실제 지하실의 운영 세부를 보면 그의 일은 한 달 주기로 영화제 혹은 기획전을 준비하는 프로그래머의 일과 닮았다. 상영관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아닌 온라인으로 영화가 제공될 뿐이다. 기존 시네마테크 및 독립·예술영화 상영관이 서울에 몰려 있는 것에 반해 OTT는 장소의 제약이 없다는 강점도 있다.
지하실은 주로 고화질이나 정식 루트로 볼 수 없던 고전 영화나 한국에서 많이 조명되지 않은 감독·나라의 영화를 들여온다. 첫 라인업 ‘영화의 탄생 기획전’에서는 1890년대 뤼미에르 형제의 흑백 영화들을 소개했고, 가장 최근 공개한 ‘혁명의 시네마 기획전’은 러시아 혁명 이후와 공산권 붕괴 직후까지의 소련 영화를 모았다. 매 라인업을 공개할 때마다 그는 지하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주제와 작품 선정의 이유를 전한다. 이 또한 영화제 프로그래머스러운 지점이다.
영화가 한 번 올라오면 1~2년 이상 시청이 가능한 대형 OTT와 달리, 지하실에서의 영화 유통 기간은 2~3개월 남짓이다. 영세한 예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제한된 상영 기간은 오히려 지하실의 시네마테크스러움을 강화한다. 김씨는 “OTT여도 지하실에서는 이 시기를 놓치면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시급성이 작동한다. 그러한 희소성은 영화의 심리적 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지하실을 시작한 지 어언 9개월 차. 김씨는 구독자를 늘릴 수 있는 상업성과 지하실이 지향하는 예술성 사이의 균형을 모색해나가는 중이다. 최근 시네필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를 모은 벨기에 감독 샹탈 아커만 기획전은 그가 생각하는 성공 사례다. 김씨는 “시네필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감독의 유통되지 않은 작품들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더라도 뛰어난 작품들과 잘 섞어서 소개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 큐레이션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간다면 나중에는 정말 조명이 필요한 감독들을 제때 소개하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씨가 또한 강조하는 것은 “합법적인 유통”이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좋은 작품을 보기 위해 불법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이들이 아직도 암암리에 많기 때문이다. 그는 “양질의 영화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니 본의 아니게 불법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며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최대한 양지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신뢰를 더 쌓아가고 싶다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지하실이 가져와 주겠지, 하는 믿음을 쌓고 싶습니다. 합법으로도 그 영화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심리를 심어주는 거죠. 그렇게 해야 영화계도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를 위해 김씨는 자신과 같은 1인 OTT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저 같은 OTT가 더 많이 생기면 개인들이 요청했을 때 느리게는 몇 달, 빠르게는 한두달 내에 주문형으로 영화가 제공되는 것도 가능해지겠죠. 그 구조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051602001
https://www.khan.co.kr/article/202603051716001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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