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삭스·베컴도 반한 삼겹살…언어를 뛰어넘는 건 정성어린 대접"
연탄불로 구운 '본삼겹'
외국인 입맛도 사로잡아
작년 타이베이에도 지점
BTS 맛집으로 입소문
프리즈서울 개최 이후
각국 미술 인사 즐겨찾아
'아티스트 월' 된 식당 문
드로잉·사인으로 채워져
서울 중구 약수동 금돼지식당 3층. 주방을 가르는 나무 미닫이문에 동시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시작은 2025년 4월, 미국 현대미술 작가 톰 삭스의 방문이었다. 박수경 금돼지식당 공동대표가 사인을 부탁하자 그가 문 위에 작은 하트를 그리기 시작했고, 곧 어시스턴트 두 명을 불러 문 전체를 하트로 채웠다. "그날 이후 이 문이 자연스럽게 '아티스트 월'이 됐어요."

뒤이어 방문한 미국 작가 대니얼 아샴은 문에 사인을 하고 명함을 붙여두고 갔다. 일본 팝아트 대표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자신의 대표 아이콘인 활짝 웃는 꽃(Smiling Flower)을 몇 송이 그려 넣었다.
예술가들이 포문을 열자 글로벌 스타들도 이 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래퍼 카녜이 웨스트는 사인과 즉흥적인 드로잉을, 할리우드 배우 제임스 프랑코는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자신이 연기한 고블린 캐릭터를, 남자 테니스 세계 1위 카를로스 알카라즈는 라켓 그림을 그렸다. 지드래곤과 블랙핑크 지수, 손흥민과 데이비드 베컴까지 세계적인 셀럽들이 흔적을 남기는 곳. 한국인에겐 흔하디흔한 메뉴 ‘삼겹살 전문점’이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프리즈 서울이 만든 새로운 흐름
2016년 문을 연 금돼지식당은 2019년 삼겹살 전문점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 서울 ‘빕 구르망(Bib Gourmand)’에 선정된 이후 매년 이름을 올려 왔다. ‘BTS 맛집’으로 알려지며 이미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긴 대기 줄을 이루는 이 식당은 최근 들어 미술 관계자들이 한국에 방문하면 꼭 들르는 명소가 됐다. 배우자이자 공동대표인 신재우 씨와 함께 이 식당을 운영하는 박수경 대표를 최근 금돼지식당에서 만났다.

이곳이 전 세계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계기는 2022년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이 개최되면서다. 별도의 마케팅 없이도 이 기간 서울을 찾은 아티스트, 갤러리스트, 컬렉터들 사이에서 일정 중 꼭 들러야 하는 식당으로 공유되며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났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 맥스 홀라인, 미국 현대미술 거장 데이비드 살레, 프랑스 작가 필리프 파레노, 뉴욕 글래드스톤갤러리 파트너 맥스 퍼켄슈타인 등이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았다.
미술계와의 접점은 협업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열린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29 톰 삭스’ 전시 기간에는 식당에서 3만원 이상 결제한 고객에게 전시 티켓을 20% 할인해주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유명 인사가 다녀갈 때마다 금돼지식당 공식 계정과 개인 인스타그램에 함께 찍은 기념사진과 사인을 차곡차곡 기록한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너무 신기해요. 대부분 누군가의 소개로 방문하는 만큼 작은 실수라도 하면 소개해준 사람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 더 신경 쓰게 돼요.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9월에는 해를 거듭할수록 아트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이 찾아오죠.”
까다롭기로 알려진 미술계 인사를 사로잡은 이유 중 하나는 디자인을 전공한 신 공동대표의 감각. 그의 감각은 공간과 운영 방식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박 대표는 지금도 직접 서빙하고 고기를 굽는다. 과도한 친절과 무뚝뚝함 사이의 균형, 손님이 먼저 말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파악하는 태도 등을 고수한다. 약 60명의 직원이 손님 표정과 반찬 상태 등을 살필 수 있도록 운영의 세부 요소는 그래프와 수치로 시각화해 교육한다.
“맛있는 건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맛있어요. 언어를 뛰어넘는 것은 정성 어린 대접인 것 같습니다.”
금돼지식당의 전체 방문객 중 외국인은 약 40%에 달한다. 종교나 식습관상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손님을 위해 한식 기반의 비건 메뉴와 당일 한정 소고기도 준비한다.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영어와 일본어 등을 배우는 게 문화가 됐다.
생과일주스 노점에서 글로벌 진출까지

금돼지식당은 올해로 개점 10주년을 맞았다. 두 공동대표는 결혼 전인 2009년 무렵 동대문시장에서 생과일주스 노점을 시작했다. 신당동에 가게를 얻어 수제버거부터 샐러드까지 다양한 음식을 판매했지만 빚을 지는 등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후 연탄제육 배달점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했고, 이를 토대로 인근에 금돼지식당을 열었다.
상호명은 두 사람이 추구하는 맛을 구현하는 듀록(Duroc)이라는 돼지 품종을 고려해 지었다. 갈색 털이 햇빛에 비추면 금색을 띤다는 점, 금돼지라는 단어가 지닌 길상적 이미지를 고려했다. 웃는 돼지 로고는 신 대표가 직접 손으로 그린 것이다.
개점 첫날부터 손님이 줄을 섰다. 약수역 일대는 동대문시장과 가까워 소규모 패션 회사가 많고, 젊은 인구 비중도 높은 지역이다. 새로 들어선 흰 외관의 깔끔한 건물이 호기심을 자극한 것 같다고 박 대표는 회고했다. 1층 호프집 자리에서 11개 테이블로 출발해 이후 노래방이 있던 2·3층으로 확장했다.
대표 메뉴는 뼈가 붙은 삼겹살인 ‘본삼겹’이다. ‘본’은 영어 bone인 동시에 ‘근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박 대표는 “뼈 주변에서 나오는 성분이 고기의 풍미를 더 깊게 만들어 가장 맛있는 부위”라며 “연탄불과 특수 제작 주물 불판의 조합이 최상의 고기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고기 굽기에 과학적 요소를 접목해 기술 난도가 꽤 높은 금돼지식당 직원들만의 ‘그릴링’도 맛에 일조를 한다. 박 대표는 삼겹살에 장아찌와 파무침을 올리고 갈치장을 곁들이는 조합을 추천했다.
금돼지식당은 1년 365일 문을 연다. 명절에도 거의 쉬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언제나 내일 망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고, 발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올해 중순에는 본점에서 도보 1~2분 거리에 별관을 열 예정이다. 규모는 본점과 비슷하지만 정육점을 결합해 실험적인 콘셉트로 운영하고자 한다. 현재 유일한 사이드 메뉴인 통돼지 김치찌개에 차가운 국수류 등을 보강해 “한식 돼지고기 신(scene)의 확장”을 모색한다. 넘치는 대기 수요와 공간 제약 문제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금돼지식당은 2025년 5월 타이베이에 첫 지점을 연 데 이어 필리핀, 일본,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진출을 준비 중이다. 현지 외식업체와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어 금돼지식당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이식하는 방식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한식의 세계화라는 거창한 목표가 있다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지은 제스퍼 대표·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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