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조금이라도 싸게”…유가·물가 상승에 ‘최저가 소비’ 확산

이규현 기자 2026. 3. 1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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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상승 여파로 기름값과 생활물가가 오르면서 시민들의 소비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저가 주유소에는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도심 상권과 전통시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 물가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 기준이 '가성비'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습이다.

저렴한 주유소로 몰린 차량들
대구 달서구 한 주유소에 차들이 줄을 서고 있다. 김도경 수습기자

기름값 부담이 커지면서 '싼 주유소'를 찾는 운전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2시30분께 대구 달서구의 한 주유소 입구에는 주유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85m 정도 줄지어 서 있었다. 평일 낮시간인데도 주유를 하려면 10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셀프 주유소였지만 차량이 몰리자 직원들이 밖으로 나와 대기 차량의 질서를 정리하고, 빈 주유기를 안내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 주유소에서 만난 김가영(32)씨는 "요즘 기름값이 너무 올라 부담이 크다"며 "운전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기름값이 조금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3시께 북구의 한 주유소에도 차량들이 끊임없이 들어왔고, 주유기의 '가득' 버튼을 누르는 운전자들도 눈에 띄었다.

직장인 김주안(34)씨는 "출퇴근을 자차로 하다 보니 기름값 체감이 크다"며 "ℓ당 2천 원대까지 오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화물운송업을 하는 신상철(60)씨도 "화물차는 사용하는 기름 양이 많아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부담이 크다"며 "운송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기름값에 바로 영향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주유소 관계자는 "대구 평균 가격보다 저렴한 편이라 손님이 꾸준히 오는 편"이라며 "중동 지역 전쟁 이후 방문 차량이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싸게"…'저가 상품' 찾는 소비자들

11일 오후 1시30분께 대구 중구 동성로의 한 창고형 화장품 매장. 매장 입구에는 '갓성비', '초특가 기획행사 1+1' 등 할인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진열대 앞에는 가격표를 확인하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매장에는 마스크팩 20장이 9천500원, 앰플이 3천~5천 원대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처럼 가격을 크게 낮춘 제품들이 진열대에 전시돼 있었다. 일부 화장품의 경우 정가 수만 원대에서 3천 원으로 낮춰 판매되며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대구 동성로의 한 창고형 화장품 매장에서 정가 8만 원의 화장품이 3천 원에 판매되고 있다. 서고은 수습기자

매장을 둘러보던 이모(25)씨는 "며칠 전 다른 매장에서 아이브로우를 1만 원대에 샀는데, 여기서는 3천 원에 팔고 있다"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조금이라도 저렴한 제품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전통시장에서도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같은 날 오후 2시께 대구 중구 번개시장. 한 고객이 상인에게 "가격을 내린 것이 맞느냐"고 묻는 등 가격을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가판대 곳곳에는 기존 가격을 지우고 낮춘 가격을 적어놓은 가격표들이 눈에 띄었다.

번개시장에서 장을 보던 주부 조정희(56)씨는 "요즘 식재료값이 너무 올라 시장에도 자주 못 온다"며 "양파 몇 개 담아놓은 바구니가 3천 원이나 해서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유가와 생활물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소비 기준도 '품질'보다 '가격'을 먼저 따지는 방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동북지방통계청의 '2월 대구·경북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대구 소비자물가지수는 118.06(2020년=100)으로 전년 동월 대비 1.7% 상승했다. 경북은 118.97로 1년 전보다 1.9% 올랐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도 같은 기간 대구 1.5%, 경북 1.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일 치솟던 기름값…열흘 만에 '숨 고르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연일 치솟던 국내 기름값이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12일 한국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대구지역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천911.49원으로 전일 대비 4.11원 하락했다. 경유의 ℓ당 평균 가격도 1천932.81원으로 하루 전보다 4.66원 내렸다.

같은 기간 경북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천911.35원으로 전일 대비 2.18원 내렸고, 경유 평균 가격도 ℓ당 1천931.82원으로 하루 전보다 4.39원 하락했다. 이처럼 기름값이 소폭 내린 것은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지 열흘 만이다.

정부는 11일 중동의 정세 불안으로 경유 가격이 급등하자, 지난달 만료된 경유 유가연동보조금을 다음 달까지 2개월 연장하고 지급 비율도 높이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사업자가 이미 구매한 유류에 대해서도 소급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유가연동보조금은 유가 급등 시 교통·물류업계의 유류비 부담을 덜기 위해 2022년 4월 도입된 제도다.

권영진 기자 b0127kyj@idaegu.com, 김도경 수습기자 gyeong@idaegu.com, 서고은 수습기자 goeunseo@idae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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