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영의 책놀이 7] 책놀이에서 ‘정답’을 지우는 순간

장선영 기자 2026. 3. 1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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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확장, 창의성, 질문 중심 접근
사진=AI 생성 이미지

[한국독서교육신문 장선영 기자]

아이와 그림책을 읽다 보면 부모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왜 화가 났을까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대개 이렇게 마무리되지요.

"그래, 맞아. 친구가 장난감을 빼앗아서 화가 난 거지."

겉으로 보기에는 자연스러운 대화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대화 속에는 하나의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부모가 이미 알고 있는 '정답'입니다. 많은 어른들이 책놀이를 하며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은 아이의 생각을 듣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정답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책놀이는 시험이 아닙니다. 책놀이는 정답을 찾는 활동이 아니라 생각을 확장하는 경험입니다.

책놀이는 이해 확인이 아니라 사고 확장입니다

발달심리학자 피아제(Jean Piaget)는 아이의 사고가 동화와 조절의 과정을 통해 확장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는 새로운 정보를 기존 경험에 맞추어 이해하기도 하고,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면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가기도 하지요.

그림책을 읽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책 속 장면을 보며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고 상상하며, 때로는 전혀 다른 해석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때 어른이 "정답은 이거야"라고 말해 버리면 아이의 사고 과정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맙니다.

아이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아직 자라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아이가 질문을 받는 순간이 아니라, 어른이 정답을 내려놓는 순간입니다.

정답이 사라질 때 질문이 살아납니다

책놀이 수업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림책 속 장면을 보며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토끼는 화난 게 아니라 그냥 졸린 것 같아요."

옆에 있던 어머니가 바로 말을 덧붙이셨습니다.

"아니야. 친구가 놀려서 화난 거야."

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왜 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니?"

아이는 책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눈이 반쯤 감겨 있고, 귀도 축 처졌어요."

그 순간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이의 말은 틀린 답이 아니라 관찰에서 나온 해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럼 정말 졸린 걸까요, 아니면 화가 난 걸까요?"

아이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난 것 같아요."

"아니요, 울 것 같아요."

"저는 그냥 혼자 있고 싶은 것 같아요."

그날 책놀이는 한 권의 책을 읽고도 여러 개의 이야기가 생겨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질문은 생각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교육학자 비고츠키는 아이의 발달이 상호작용 속에서 확장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어른의 질문은 아이의 사고를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질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답을 찾는 질문입니다.

"주인공은 왜 울었을까요?"

다른 하나는 생각을 여는 질문입니다.

"주인공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요?"

"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다른 방법도 있을까요?"

첫 번째 질문이 정답을 향한 길이라면, 두 번째 질문은 생각이 자라는 길입니다.

책놀이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질문은 분명합니다.

아이의 생각을 따라가면 이야기가 열립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이 늑대는 나쁜 늑대가 아닐 수도 있지 않아요?"

저는 웃으며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팠을 수도 있잖아요."

그 말 한마디로 책놀이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아이들은 늑대의 입장이 되어 보기도 하고, 숲 속의 상황을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먹을 게 없으면 어떻게 하지요?"

"토끼가 음식을 나눠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친구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 순간 책은 더 이상 줄거리를 따라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사고가 만들어낸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창의성은 정답이 없는 공간에서 자랍니다

창의성 연구로 유명한 켄 로빈슨(Ken Robinson)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이들은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학교는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만든다."

이 말은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정답 중심의 교육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점점 질문을 멈추게 됩니다. 틀릴까 봐 말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틀린 답을 말하면 고쳐지거나 평가받는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점점 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이미 정해진 답을 찾는 데 익숙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놀이는 정반대의 공간입니다. 여기에는 틀린 답이 없습니다. 아이의 상상은 언제나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나무 안에 요정이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웃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래요? 어떤 요정일까요?"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밤에만 나오는 요정이요."

그 순간 책 속 이야기에는 없던 새로운 장면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펼쳐집니다. 이렇게 시작된 한 문장은 아이의 상상 속에서 하나의 세계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생각의 확장이 됩니다.

창의성은 바로 이런 순간, 정답이 사라진 자리에서 조용히 자라나기 시작하지요.

책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어른의 역할

책놀이에서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생각이 자라도록 돕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니?"

"다른 방법도 있을까?"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질문들은 아이에게 사고의 문을 열어 줍니다.

책놀이는 결국 책을 읽는 활동이 아니라 생각을 함께 키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단순합니다.

어른이 정답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책놀이에서 정답을 지우는 순간,

아이의 생각은 비로소 자라기 시작하지요.
한국독서교육신문 장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