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대전환? 의지는 있는데 '구조'가 없다

미국, 정부가 때리자 시장 꺾였다
2025년 미국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43.2GW로 전년 대비 14% 줄었다. 정책 불확실성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의 반재생에너지 기조도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연방 재생에너지·효율화 프로그램 예산을 수억 달러 삭감했고, 태양광·풍력 프로젝트의 환경영향평가 등 인허가 심사를 지연시켰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은 재생에너지를 "불충분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공개 비판하며 석탄·천연가스·원자력에 더 많은 연방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감소는 주로 4분기에 집중됐다. 4분기 설치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0% 급감했다. 미국 의회가 2025년 7월 태양광 세액공제 기한을 앞당기는 법안(OBBBA)을 통과시키면서 개발업체들이 사업 일정을 2026~2027년으로 미룬 영향이 컸다.
에너지 조사기관 우드 맥킨지의 글로벌 태양광 부문장 미셸 데이비스는 "2025년 한 해 동안 연방 에너지 정책이 화석연료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재생에너지에서 멀어진 것이 태양광 산업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말했다.

한국, 정부가 밀어도 보급 더뎌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100GW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는 약 34GW 수준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보급량은 3.8GW로 2022년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현재 한국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 미만이다. 기후솔루션과 국제 에너지 정책 연구기관 RAP(Regulatory Assistance Project)가 지난 2월 공동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보고서는 "전력산업은 여전히 대규모 중앙집중형 화석연료 발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계통 유연성도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를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상황에서도 보급이 더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시장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진단한다.
시장은 여전히 화석연료 편
기후솔루션·RAP 보고서는 한국 전력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전력 도매시장의 가격 결정 구조다. 현재 한국의 전력 도매시장은 '비용기반시장(CBP)' 방식으로 운영된다. 발전소가 가격 경쟁 입찰을 하는 대신, 정부가 사전에 산정한 발전 비용을 기준으로 전력 거래가 이뤄지는 구조다. 여기에 '총괄원가보상제'라는 제도가 더해진다. 원자력·석탄·가스 발전소에는 연료비와 투자비 회수를 보장하지만 재생에너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보고서는 이 구조가 "시장 신호를 왜곡하고 화석연료 프로젝트 위험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보고서 저자인 임장혁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전력시장 가격 결정구조가 화석연료 수익보장 중심으로 돼 있다 보니 태양광은 물론 배터리(ESS)가 들어와도 제대로 된 가격 신호를 받기 어렵고 수익 실현도 힘들다"고 말했다.
둘째는 한국전력(한전)의 수직 통합 구조다. 한전은 전력 송·배전과 판매를 독점하는 동시에 100% 자회사인 6개 발전자회사(화력 5, 원자력 1)를 통해 국내 전체 전력량의 약 60%를 생산한다. 발전과 송전, 판매를 전부 한 회사가 하기 때문에 민간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전력망에 접속하거나 공정하게 경쟁하기 어려운 구조다. 보고서는 "완전히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송전계통운영자(TSO)나 배전계통운영자(DSO)가 부재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그는 "송전사업자를 판매사업자로부터 분리해야 한다"며 "기존 체제는 원전·석탄·가스 발전에 최적화된 구조라 재생에너지가 들어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석 전문위원은 "OECD 국가 중 멕시코와 한국만 송전과 판매가 분리되지 않은 나라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재생에너지 친화적 시장으로 바꿔서 속도 높여야"
정부도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후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태양광 설치를 막아온 이격거리 규제를 법제화해 합리적 수준으로 완화하고 재생에너지 접속이 지연되는 배전선로에 배터리(ESS)를 보급해 재생에너지 추가 접속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계절·시간대별 개편도 1분기 안에 추진할 계획이다. 전기위원회 독립성 강화와 전력감독원 신설도 올해 법 개정을 통해 추진한다.
임장혁 연구원은 이격거리 규제 완화에 대해 "태양광 설치의 원천적 봉쇄가 풀린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계통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가 인지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인다"며 "배전단 ESS 확대와 송전 제약 지역에서 배전망을 통한 태양광 확대 방향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임 연구원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시장 구조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사업자 입장에서는 장기적이고 예측가능한 시장이 필요한데 지금은 화력발전에만 예측가능하고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화력발전이 수익도 크고 예측도 가능한 시장이 유지되는 한 발전사업자는 재생에너지보다 가스발전소 건설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발전사업자가 가스발전소 대신 재생에너지를 짓는 시장이 와야 100GW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석광훈 전문위원은 구조 개혁과 함께 속도를 높일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전이 송전선로 건설을 독점하는 현재 구조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요한 전력망 확충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병목 구간의 송전사업을 민간이 건설해 한전에 매각하는 방식(BTO)을 도입하고 정부가 재생에너지 설치에 유리한 전략 부지를 선제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혁신적인 전기사업자가 들어와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과 구조 개혁이 동시에 진행돼야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