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 끝나도 ‘유가 60달러 시대’ 돌아오지 않는 이유[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6. 3. 1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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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전쟁은 언제나 끝날까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전쟁이 “매우 빨리(pretty quickly)”, “곧(very soon)” 끝날 거라며 시장을 안심시켰죠. 그 ‘곧’이 언제쯤인진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요.

그런데 미국이 이대로 ‘승리’를 선언하고 이란과의 전쟁을 끝내면, 세계 경제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그러면 좋겠지만, 그리 간단하진 않을 거란 비관론이 우세한데요.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이란전쟁의 여파를 들여다보겠습니다.

3월 10일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교외 다히예의 한 건물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됐다. 그 앞 헤즈볼라가 운영하던 금융회사 지점 자리엔 헤즈볼라 수장이었던 하산 나스랄라와 이란혁명의 상징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사진이 붙어있다. AP 뉴시스

*이 기사는 3월 1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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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TACO 하나요?

전 세계 금융시장이 간절히 원하던 신호가 포착됐습니다. 바로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이죠. 9일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전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분위기가 심상찮아지자, 입장을 바꾼 거죠. 그 덕분에 배럴당 110달러를 뚫었던 원유 선물 가격은 90달러 아래로 급락했고, 주요국 증시는 상승 반전했어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 7일 이란전쟁으로 쿠웨이트에서 사망한 미군들의 유해 송환식에 참석하고 있다. AP 뉴시스

하지만 10일에도 여전히 이란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여러 나라에 미사일 또는 자폭 드론이 떨어졌고요.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사실상 봉쇄된 상태입니다. 이날 이란혁명수비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계속된다면 이 지역에서 단 1리터의 원유 수출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대변인 성명을 발표했죠. 프랑스·러시아·중국·튀르키예 등이 중재에 나섰지만, 아직까진 양측이 협상테이블에서 마주하게 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데요.

그래도 최악의 시나리오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쟁과 호르무즈 봉쇄의 장기화라는 시나리오에선 어떻게 해도 ‘세계 경제 공멸’이란 매우 우울한 결론에 이를 테니까요. 그보단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에 공언했던 대로 몇 주 안에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든 끝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린다고 한번 가정해 봅시다. 현재로선 금융시장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이죠. 자, 그럼 그 이후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난 일주일간 브렌트유 선물 가격 추이. 한때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했던 유가는 90달러 대에 머물고 있다. tradingeconomics.com

평온했던 저유가 시대는 안녕

이란의 정권 교체는 현재로선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죠. 전쟁이 끝나더라도 아마 이란 정권은 건재한 채 남아있을 겁니다. 게다가 강경파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새로운 최고지도자가 됐으니, 이란의 대외정책은 전보다 더 예측 불가능해졌죠. 미사일 굉음이 사라져도,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은 가라앉지 않을 겁니다.

이란 정권이 계속 집권한다면 경제적 여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 세계 석유·가스 가격엔 지속적인 위험 프리미엄이 반영될 겁니다.”(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이코노미스트) 이 지역에 일종의 ‘모즈타바 프리미엄’이 추가될 거란 전망인데요.

고위험 지역으로 낙인찍힌 이 지역의 각종 보험료와 인건비가 상승할 거고요. 이런 고비용 구조가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국제유가를 끌어올릴 겁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처럼 국제유가가 4배씩 폭등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 이전 같은 60달러대 저유가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순 없는 거죠. “설령 오늘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앞으로도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유가가 상승할 것”(하버드대 경제학과 제이슨 퍼먼 교수)이란 분석입니다.

컨테이너선이 운항하던 과거 평시의 호르무즈 해협의 모습. AP 뉴시스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유전과 가스전이 얼마나 빨리 복구되느냐도 유가엔 관건입니다. 일단 가동을 중단한 유전과 가스전은 스위치 켜듯 바로 생산을 재개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건 수도꼭지가 아니라, 거대한 지질학적 압력이 작용하는 매우 정밀한 시스템이기 때문인데요.

유전은 가동을 중단하면 내부 압력 평형이 깨지면서 원유층으로 물이 섞여 들어갑니다. 그래서 가동을 재개하면 처음엔 기름 대신 물이 섞인 진흙탕 같은 액체가 나오죠. 이걸 다 걷어내고 다시 순수한 원유가 나오게 만드는 데 보통 몇 주가 걸리고요. 최악의 경우엔 생산량이 100% 회복되지 못할 위험도 있어요.

이렇게 원유 공급은 차질이 불가피하지만, 수요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주요 7개국(G7)은 역사상 최대 규모인 3억~4억 배럴의 공동 비축유 방출을 준비 중인데요. 이 비상 상황이 끝나면 그 비축유를 다시 채워둬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에너지 안보에 각성한 여러 나라들이 석유 비축 늘리기에 나설 테니까요. 2023년부터 이어져 온 석유 시장의 ‘구조적 과잉 공급’ 기조는 깨지게 됩니다.

이미지 공든 탑 무너지나

상처 입긴 했지만 한층 강경해진 이란 정권의 생존. 주변 걸프 국가 입장에선 최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 또 이란이 두바이나 도하로 미사일을 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니까요. 게다가 이번 전쟁으로 미국의 보호망이 그리 완벽하진 않다는 게 확인된 상황. 결국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며 중동 국가는 군비 확장에 나서게 될 겁니다.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은 안보에 대한 기존 가정을 재평가함에 따라 군사비 지출이 급증할 겁니다. 이번 전쟁으로 미국 안보 역량의 한계와 첨단 기반 시설이 저렴한 무기에 얼마나 취약한지가 드러났으니까요. 국방비 증가는 자원 다변화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를 잠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프레드릭 슈나이더 중동국제문제협의회 연구원) 중동 국가에 무기를 판매할 한국 방산기업엔 호재가 될 겁니다. 반면 스마트시티 같은 첨단산업의 수혜를 기대해 온 기술기업엔 달갑지 않은 전망이죠.

3월 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시내에서 여성들이 텅 빈 식당 앞을 지나가고 있다. AP 뉴시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공들여 구축해 온 ‘매력적인 글로벌 투자처’라는 이미지에 금이 갔다는 겁니다. 부유층이 몰리는 ‘중동의 스위스’ 두바이, ‘글로벌 AI 허브’를 자처한 아부다비, 관광과 국제행사의 중심지 카타르 도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거점’을 노리던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그 화려한 도시들 뒤편에 알고 보니 이란이란 거대한 화약고가 있더라는 게 이번 전쟁으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특히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중동지역 데이터센터 3곳이 이란 드론의 공격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렇다고 당장 투자자들이 짐 싸서 떠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추가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합니다. “중동전쟁으로 기존 투자가 더 이상 경제성이 없다는 걸 깨달은 기업이 많습니다. 그 기업들은 투자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투자를 미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하죠. 다음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미시간대 경제학과 저스틴 울퍼스 교수)

에너지 패러다임 바꿀 수 있을까

일상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바꾸곤 합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석유를 쓰는 화력발전소는 자취를 감췄죠. 비싼 석유 대신 저렴한 석탄과 천연가스가 발전원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요. 또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이후엔 유럽에선 원자력 발전이 부활했어요.

그럼, 이번엔 어떨까요? 휘발유 가격 급등을 확인한 미국에선 다시 이런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미국은 중국처럼 전기차에 투자해야 합니다.”(로드메리 켈라닉 디펜스프라이어리티 연구원)

3월 10일 뉴욕의 한 주유소의 모습. AP 뉴시스

흔히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라 국제유가가 올라도 별 타격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석유는 세계시장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가격이 어디나 비슷한 법이니까요. 켈라닉 연구원 표현을 빌리자면 “석유시장은 여러 개의 수도꼭지와 배수구가 있는 거대한 욕조”나 마찬가지이거든요. (참고로 석유와 달리 천연가스는 지역마다 가격 차이가 큰 편입니다.)

따라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이란전쟁으로 인한 휘발유 가격 급등으로 고통받는 건 똑같고요. 오히려 미국 소비자가 가장 취약할 수도 있습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미국 가정이 유럽이나 일본보다 더 크고 연비가 낮은 차를 운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바로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외쳐온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 구호의 공허함이 확인됩니다. 미국이 석유를 더 많이 캐면 석유기업엔 좋겠지만, 일반 미국인도 살기 좋아지느냐? 그건 아닌 거죠. ‘석유 체제’ 안에 있는 한은 모즈타바 하메네이 같은 예측 불가능한 인물에 미국인의 삶이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막을 방법은 결국 ‘탈석유’와 ‘전기화’이죠. 이란전쟁이 보여준 중요한 교훈인데요.

과연 이런 깨우침이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에너지 전환 속도가 유독 느린 한국도 되새길 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By.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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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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