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새 30% 폭증... 뇌 잠식하는 '디지털 마약'
KAIST, 중독 재발의 원인 ‘뇌 회로 불균형’ 규명
세포 단위 조절로 중독 억제 가능성 첫 입증
의지 아닌 뇌의 회복… 과학이 제시한 새 탈출구

최근 KAIST 연구진이 마약 중독 재발의 핵심 원리를 뇌의 세포 회로 수준에서 밝혀내며, ‘중독은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 회로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타나는 숫자는 여전히 심각하다. 한국의 마약류사범은 지난 5년간 30% 이상 급증하며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5년 만에 30% 증가… 한국, ‘조용한 마약 확산기’ 진입
대검찰청 마약관련 통계자료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국내 마약류사범 단속 누계는 23,403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23,022명) 대비 1.7% 상승했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2020년 12월 기준 단속 누계가 18050명이었다는 사실이다. 불과 5년 만에 5,000명 이상 늘어나며 약 29.6% 증가한 것이다. 절대수뿐 아니라 범죄 저연령화·비대면 유통 등 질적 변화도 동반됐다.
문제는 과학이 밝혀낸 메커니즘보다 빠르게 현실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기준 전체 마약류사범 중 20~30대가 전체의 약 59.4%를 차지하며, 전체 마 약류사범의 절반 이상이 청년층에 집중되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한 판매·투약 인증 콘텐츠가 늘어나며, ‘가벼운 호기심 섭취’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범죄 양상은 더욱 교묘해졌다. 과거에는 해외 밀반입 중심이었지만, 2023년 이후에는 텔레그램·SNS 오픈채팅방 등에서 은밀히 거래하는 ‘디지털 마약시장’이 확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제 마약은 거리에서가 아니라 스마트폰에서 거래되는 시대”라며 “특히 20대 이하 마약류사범의 비율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적 중독화(Social Addictionization)’로 부르며, 물리적 접근보다 심리·신경학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KAIST의 연구 성과가 갖는 의미가 두드러진다.
“전전두엽 기능 저하 아닌 세포 회로 불균형”… KAIST, 새로운 원리 밝혀내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인지과학과 백세범 석좌교수 연구팀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CSD) 임병국 교수팀과 공동으로, 중독 재발의 근본 원리가 ‘전전두엽 기능 저하’가 아니라 ‘특정 신경세포 회로 불균형’에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연구는 올해 3월 Nature Neuroscience에 게재되며 세계 주목을 받았다.
연구진은 전전두엽 내 존재하는 ‘파발부민 양성(Parvalbumin-positive)’ 억제성 신경세포(PV 세포)에 주목했다. PV 세포는 흥분성 신경세포의 과도한 활동을 억제해 뇌 회로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백 교수팀은 실험 결과 이 세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금단 후 사소한 자극만으로도 마약 탐색 행동이 재점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PV 세포는 일종의 ‘브레이크 게이트(brake gate)’로서, 흥분성 신호를 제어하고 뇌의 보상 회로로 이어지는 경로를 관리한다. 백 교수는 “중독 재발은 전전두엽 피질 전체의 기능 저하가 아니라, PV 세포가 보상 회로를 조절하는 방식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중독의 본질은 의지력의 약화가 아니라 뇌세포 간 균형이 깨진 생리적 문제라는 점이다.
“세포 하나의 균형이 재발을 막는다”… 뇌 기반 치료의 전환점
KAIST의 연구 결과는 마약 중독이라는 난제를 ‘뇌세포 회로 조절’ 의학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됐다. 연구진은 PV 세포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실험을 통해, 중독 재발 행동을 억제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세포 단위에서 흥분-억제의 균형을 복원하면 재발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향후 정밀 신경조절 치료 및 표적 세포 치료 개발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백세범 교수는 “중독은 다시 태도를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회로의 균형을 회복하는 문제이며, 파발부민 세포가 그 균형의 관문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회로의 균형 회복이 곧 사회 회복”
KAIST의 이번 발견은 단순히 신경과학의 진보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중독이 ‘의지력 부족’이 아니라 ‘뇌 회로의 균형 붕괴’로 인한 질환이라면, 사회는 중독자를 범죄자가 아닌 환자로 바라봐야 한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뇌치료 접근이야말로 중독 재활의 핵심이 될 것이다.
백 교수는 “파발부민 세포가 중독 행동의 ‘게이트’를 관리한다는 사실은, 중독 치료를 세포·회로 수준의 정밀 조절로 옮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한국의 중독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학이 제시한 출구, ‘브레이크 게이트’의 복원
KAIST의 이번 연구는 그 경고를 단순히 법적 대응이 아닌 신경과학적 해법으로 바꿀 기회를 제시했다. 파괴된 뇌세포의 신호 균형을 되살리는 연구야말로, 중독자의 행동을 바꾸고 재발을 막는 실질적 길이다.
우리 사회가 되찾아야 할 것은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뇌의 ‘브레이크 게이트’다. 그 게이트가 다시 열릴 때, 한국은 중독이라는 어두운 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 보편적인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