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과자로 인생반전 어떻게 했나…건설사 직장인의 창업 모험기

박미향 기자 2026. 3. 1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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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샌드 조헌기 대표 인터뷰
건설회사 다니며 브랜드 창업 꿈
3년간 공부한 뒤 피낭시에 개발
처음엔 하루 12시간 일해도 빚더미
소문나며 급성장…“버티니 되더라”
‘브릭샌드’의 다양한 맛의 피낭시에. 지난해부터 감태, 유자. 의성 마늘, 청양 고추 등 한국 식재료를 이용한 피낭시에도 출시하고 있다. 박미향 선임기자

퇴사를 한번쯤 꿈꿔보지 않은 직장인은 없다. 후련하게 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결정이 좌우하는 일을 하고 싶어진다. 성공을 꿈꾸면서 말이다. ‘브릭샌드’ 조헌기(42) 대표는 직장인의 로망 ‘퇴사 후 창업 성공’을 이뤄낸 이다. ‘브릭샌드’는 수십가지 피낭시에(직사각형 모양의 구움 과자)를 파는 디저트 가게 브랜드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께 조 대표가 만들었다. 현재 조 대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11개 직영점을 운영할 정도로 얼추 성공했다. 지난해 신세계면세점 명동점과 인천국제공항점에 입점도 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면세점 입점에 성공한 것이다. 현정훈 신세계면세점 바이어는 “내외국인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브랜드인데다가 방한 외국인 관광객들 에스엔에스에 ‘한국 여행 선물 픽’으로 자주 바이럴되는 점을 확인하고 입점을 확정했다”고 말한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지에스(GS)건설에 입사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의 창업 이야기가 궁금하다.

10년간 직장 생활을 하고 코로나 때 창업해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공한 ‘브릭샌드’ 조헌기 대표. 신세계면세점 제공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막연하게 “제조업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던 그의 ‘최애 취향’은 커피나 디저트였다. 쉽게 ‘제조’할 수 있는 게 디저트란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나 핸드폰을 만들 순 없잖아요.” 지난달 27일 한겨레와 만난 그는 웃으며 말했다. 3년간 커피와 제과제빵을 배웠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다. 아내와 함께 일본, 이탈리아, 싱가포르, 대만 등을 다니며 연구도 했다. 작은 오븐을 구입해 집에서 ‘실전 제조’도 해봤다. 케이크부터 마카롱까지 웬만한 디저트는 다 만들어봤다. 대부분 쉽게 질렸다. 피낭시에를 만들어 먹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피낭시에 같은 구움 과자는 일주일간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연령대 구분이나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고 했다. 아내와 레시피 개발에 돌입했다. 아내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엘지(LG)이노텍 연구원이었다. 이들의 결론은 ‘당도가 낮은 피낭시에’였다. “모든 이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다 받을 순 없으니, 우리가 좋아하는 거, 내 취향을 반영한 거 하자”고 결심하면서 부부는 “달지 않고 지인들에게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은 피낭시에”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벽돌 모양을 얹은 그만의 피낭시에가 탄생했다. 모양과 이름에 그의 전공인 건축을 입혔다.

열에 여덟은 문 닫는 게 창업 시장의 현실이다. 그는 ‘재벌집 막내아들’쯤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게 아니라면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는 해에 창업할 용기는 어디서 생긴 걸까. “10년 전 동탄 신도시 건설 현장으로 발령나면서 그곳 작은 땅을 분양받았어요. ‘땅콩 주택’ 같은 걸 늘 짓고 싶었죠. 아내와 맞벌이하며 악착같이 모은 2억5천만원에 80% 대출을 받아 작은 상가 주택을 지었어요. 제가 도면 그리고 발주하고 검수하고 직접 다 했죠.” 아담한 3층짜리 상가 주택이 완공됐다. 3층엔 이들이 살고, 1·2층은 임대했다. 이자만도 매달 수백만원이 나갔다. 1층은 자주 공실이 됐다. “그럼 우리가 해보자”란 결론에 도달했다. 정부의 청년 창업 지원 사업에 도전해 초기 ‘시드머니’(종잣돈) 4천만원도 마련했다.

당시 그의 나이 30대 중반.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할 거 같아요. 원가나 상권 분석 같은 거도 모르고 무식하게 한 거죠. 죽을 뻔했어요.(웃음)” 힘들었다고 했다. 그는 휴직하고 매달렸다. 아내는 둘째가 태어난 뒤 육아 때문에 퇴사한 상태였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12시간 일해도 적자였다. 하루에 수익이 고작 몇만원일 정도로 현실은 참혹했다. “빚이 계속 늘었죠. 마이너스 통장에, 가족들에게 돈도 빌렸죠.” 코로나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회사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 반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브릭샌드’의 다양한 맛의 피낭시에. 박미향 선임기자

그의 업장이 있는 동탄엔 삼성전자 기흥, 화성, 평택 사옥에 근무하는 임직원이 많이 살았다. “연구원이든, 생산직 직원이든 코로나 사태로 저희 카페에 와 재택 근무를 하는 거예요. 피낭시에를 맛보고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코로나로 회식비가 남으니 팀 간식으로 주문 좀 받으세요, 사장님.’ 이 소리를 계속 듣게 됐어요. 10박스, 30박스, 주문이 계속 들어왔지요. 아이들 재우고 아내와 밤새 만들었죠.” 삼성전자에 소문이 나면서 단체 주문이 계속됐다. 주문 영업이 이익을 내는 데 효자 노릇 한다는 거를 익혔다. 재료 누수가 없으니 마진이 올랐다. 2년을 버티자 점차 동탄 지역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현재는 문 닫은 영업점인 동탄호수공원 인근 2호점과 롯데백화점 동탄점 매장을 열면서 교훈도 얻었다. 본점과 너무 가까우면 마이너스라는 점과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성공엔 기폭제가 있기 마련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주문 판매가 끊길까 걱정이 됐다. 서울 입성을 결정했다. 신분당선이 교차하는 강남역 안에 매장을 열었다. 고작 12평짜리 매장이었는데 임대료는 1천만원이 넘었다. “6개월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문 연 날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동탄에서 유명한 게 서울 왔대’가 에스엔에스(SNS)를 타고 퍼졌다. 유동 인구가 많으니 눈도장 찍는 이가 많았고 고스란히 판매로 이어졌다. 이때 유동 인구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서울역점, 명동점을 연이어 내며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각인됐다. 일본과 대만 잡지에 ‘케이(K) 선물용 디저트’로 소개됐다.

‘브릭샌드’ 조헌기 대표가 창업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 제공

요즘 유명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기본이라고 한다. 그는 고액 광고비를 지불하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하지 않았다. 대신 체험단 마케팅을 했다. 팔로어 수가 적어도 시식해보라고 디엠(다이렉트 메시지)을 보냈다. ‘브릭샌드’ 계정에 시식 일정을 올리면 댓글 단 이를 초청했다. 그들은 맛보고 각자의 스타일대로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유명인이 단박에 터트리는 게 아니라 긴 시간 소소하게 꾸준히 알려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소소하게 퍼진 에스엔에스 글을 보고 유명 유튜버가 찾아왔다. 실패한 매장도 있다. 삼청동 매장은 봄·가을엔 긴 줄이 섰지만 폭염과 한파가 닥치는 여름과 겨울엔 매출이 70% 이상 급감했다. 계절성의 중요성도 이 업장 폐점을 통해 배웠다.

‘한국을 대표하는 선물용 디저트 브랜드’가 되자는 원대한 목표가 생겼다. 여행자의 ‘필수 아이템’은 여행지 선물용 먹거리다. 일본만 해도 넘쳐난다. 도쿄 바나나 빵은 대전 성심당 빵만큼 우리에게 익숙하다. 2028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천만명 유치가 목표인 지금, 딱히 이렇다 할 선물용 먹거리가 없는 게 한국 관광의 현실이다. 하지만 ‘브릭샌드’라니, 영어 이름이 우리 ‘케이 디저트’의 대명사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전통 디저트도 아닌 프랑스 구움 과자인 피낭시에가 아닌가. “한국을 대표한다고 해서 하회탈 모양이나 태극 문양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스타벅스가 미국을 대표하지만 미국 국기가 그려진 게 아니고, 독일 하리보 젤리도 그렇죠.” 그는 말을 이었다. “코카콜라 하면 병 모양이 생각나죠. 미국이 떠오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죠. 우리 벽돌 모양 피낭시에가 잘 성장해 벽돌만 생각하면 한국이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그는 한국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 식재료를 접목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매월 1일 신제품을 발표하는 ‘월간 브릭’ 행사를 한다. 국산 감태, 불닭 소스, 의성 마늘, 청양 고추, 국산 녹차, 고흥 유자 등을 사용한 피낭시에를 출시했다. ‘월간 브릭’ 체험단도 생겼다. 음료 한잔과 8개짜리나 12개짜리 박스를 제공한다.

창업의 어려움을 이겨낸 사연을 얘기하는 조헌기 대표. 신세계면세점 제공

이름이 알려질수록 의심의 눈초리로 대하는 외식업계 전문가도 많다. 떴다 진 수많은 브랜드처럼 ‘엑시트’(창업자가 투자금 회수, 수익 실현 뒤 빠져나가는 것)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브랜드를 30년, 50년, 100년 끌고 가는 게 저와 직원들의 목표”라고 한다. 요즘 그는 나라 밖 진출을 위해 애쓰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대만 등과 조인트벤처 협상 중이다. 제품 다변화도 진행 중이다. 브릭샌드 젤리, 사탕, 캐러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연 종각점은 사회생활의 출발점이었던 지에스건설 본사에 있다. 10년간 직장 생활을 한 곳이다. 인생은 예기치 못한 일의 연속이다. 그저 버틸 뿐!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조 대표의 창업 조언

① 창업을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

② 완벽하게 준비해서 시작할 생각 말고 70% 정도만 준비돼도 해라.

③ 어려움이 닥쳤을 때 버텨라. 기회는 온다.

④ 마케팅 전략도 바로 실행하라. 다소 부족해 보여도 행동에 옮겨라.

⑤ 실행과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어라. 쌓이는 배움이 있다.

⑥ 직원들과 꿈을 공유하고 그들 각자의 소망을 채워주려고 노력해라.

박미향 선임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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