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돌파 첫 관문 '벽에 오래 붙어 있기' [5.11이 보인다]
암벽등반을 시작한 지 1년 반, 등반을 잘 하고 싶어졌다. 더 어려운 바위를 오르고 더 재미있게 등반하고 싶어졌다. 훈련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선배 등반가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암장을 등록해 실력을 키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기로 했다. [5.11이 보인다] 연재는 월간산 정유진 기자의 암벽등반 훈련기다. (연재 제목 속의 5.11은 암벽등반 난이도다. 태권도로 치면 빨간띠 정도다.) _편집자 주

암벽등반 실력을 키우기로 했다. 초보자 티를 벗고 중급 클라이머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러기 위해 훈련을 하기로 했다. 어디서,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요즘 유행하는 볼더링 암장은 내가 원하는 방향의 훈련과는 거리가 있다. 볼더링은 짧은 루트 위에서 순간적인 힘과 화려한 동작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키워야 할 것은 한 번의 동작이 아니라 벽에 오래 붙어 있는 능력이다.
지구력 암장에 가기로 했다. 지구력 암장은 말 그대로 지구력 향상을 위한 루트들이 있는 암장이다. 긴 루트와 연속적인 동작을 통해 벽에 더 오래, 효율적으로 머무는 법을 연습하기에 좋은 훈련장이다.
훈련을 위해 서울의 지구력 암장을 찾아 다녔다. 대부분 분위기가 조용했다. 사람이 얼마 없어서다. 고요한 암장에서 쭈뼛쭈뼛 몸을 풀었다. 내가 고른 음악을 암장 스피커에 연결해 재생시켰다. 몸 풀기 루트를 골랐다. 1번부터 50번까지 번호표가 붙어 있는 홀드를 순서대로 잡아갔다. 시끌벅쩍한 볼더링 암장에 비해 여유가 느껴졌다. 차분한 마음으로 동작 하나 하나에 집중하며 몸을 움직였다.
이번 연재에서는 서울의 지구력 암장들을 소개한다. 우후죽순 늘어난 볼더링 암장들 사이에서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물 같은 곳들이다. 그중 네 곳을 직접 찾았다. 그리고 센터장들을 만나 그들의 등반 훈련기를 들어보았다.
도봉파워클라이밍센터클라이밍, 마라톤이 되다
서울 도봉구 도봉로133길 42 4층
1일 이용권 1만5,000원 · 1개월 이용권 9만 원 · 3개월 이용권 22만5,000원


클라이밍과 마라톤. 흥미로운 조합이다. 김종식 센터장이 새롭게 만들어 도입한 개념이다. 도봉 파워클라이밍센터의 김종식 센터장은 본인을 위한 훈련장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암장 운영을 시작했다. 김 센터장은 실력과 상관없이 모두가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마라톤'의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클라이밍 마라톤'이라는 종목을 만들었다.
암장의 루트들은 난이도 별로 각각 50개의 홀드를 이어 만들어진다. 각기 다른 난이도의 루트를 연결해 완주하는 것이 김 센터장이 만든 클라이밍 마라톤이다. 암장 한 켠에는 월별 마라톤 기록판이 있다. 홀드를 총 300개 잡아야 하는 풀코스 마라톤 참가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김 센터장은 회원들과 함께 매주 자연으로 나가 바위를 찾는다. 지구력 암장에서의 운동은 철저히 자연암벽등반을 위한 훈련이다. 이에 더해 자신의 난이도에 맞는 트레이닝을 병행하면 실력 향상을 이룰 수 있다. 암벽등반에 도움이 되는 유연성, 근력 훈련을 위한 트레이닝 강습도 운영 중이다.
도봉파워클라이밍 김종식 센터장

"교직에 있던 제가 암벽등반에 입문한 것은 우연에 의해서였어요. 아는 형님을 따라 입문한 자연바위에 푹 빠져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었죠. 선배들을 좇아다니며 실력을 끌어올렸어요. 그러다 5.11에 가까워지니 큰 벽을 만난 것만 같았어요. 스승이 필요했어요. 수소문해서 만난 등반을 잘한다는 대장님과 함께 매주 북한산 족두리봉 수리암장을 찾아갔어요. 좋은 스승을 두니 등반실력이 일취월장했습니다. 유연성을 위해 요가를 했고, 손가락 훈련과 근력 운동을 꾸준히 같이 했어요. 난이도에 맞는 훈련을 병행하며 바위를 꾸준히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클라임웍스 클라이밍 영등포산악인들의 베이스캠프
서울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85 훼미리하우스117 지하 1층
1일 이용권 2만 원 · 1개월 이용권 12만 원 · 3개월 이용권 32만 원

클라임웍스의 기성현 센터장은 산악부 출신이다. 암장을 시작한 것은 2019년이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모여서 운동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동기다. 스포츠로서의 클라이밍보다 '산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둔 암장을 만들고 싶었다. 자연볼더링부터 리드 클라이밍, 단피치 암장과 멀티 피치 등반까지 등반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클라임웍스'라 이름 붙였다. 이를 위해 다양한 강습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클라이밍 기초를 다지는 초급반부터 중급반, 트레이닝반, 외벽반, PT반 등. 본인의 실력이나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선택해 수강할 수 있다. 자연암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크랙 등반(바위틈에 손과 발을 끼워가며 오르는 방식의 등반) 훈련을 위한 홀드들도 준비했다. 센터장의 노력 덕에 산을 찾는 회원들이 많아졌다. 경험을 쌓은 회원들은 봄·가을이면 팀을 꾸려 등반을 하러 산을 오른다.

센터장이 꿈꾸는 클라임웍스의 모습은 한결 같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의 아지트이자 훈련장.' 더 많은 클라이머들이 산으로 나가 더 많은 등반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클라임웍스는 산으로 나가는 등반가들을 위한 든든한 발판이 되어줄 계획이다.


클라임웍스 기성현 센터장

"고등학교, 대학교 산악부 활동을 하며 산을 다녔어요. 저는 등반을 잘 못했어요. 성실하지만 잘 못하는 사람. 그래도 꾸준히, 성실하게 등반을 다녔죠. 4년차가 됐을 즈음에야 실력이 붙어 가는 게 느껴졌어요. 잘 못하는 사람이니까 '그냥 꾸준히 열심히만 하자'는 마음이 컸어요. 그렇게 차곡차곡 기반을 다져나갔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날 바위에 갔는데 '저거 될까?' 하고 붙었던 문제를 한 번에 완등했어요. 그게 첫 5.11대 완등이었어요. 속살바위 변태(5.11c)라는 루트였죠. 그 후로 속살바위에 있는 루트들을 순서대로 하나씩 깨나갔어요. 어떤 루트를 위해 매달리고 노력했다기보다는 천천히 실력을 쌓아 나갔던 것 같습니다."
서울스포츠클라이밍센터그 시절 등반가들의 아지트
서울 동대문구 무학로 130
1일 이용권 1만 원 · 1개월 이용권 6만 원/ 5만 원(학생)


'실내인공암벽', 녹슨 간판이 달린 건물 계단을 내려가면 민트색 벽으로 둘러싸인 옹골찬 암장이 나온다. 'since 1993.' 서울 1세대 암장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깊은 역사를 안고 있는 암장이다. 한국 암벽등반 문화가 막 형성되어 왕성해지던 시기 만들어진 서울스포츠클라이밍센터는 수많은 클라이머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그들은 50평 남짓의 천장 낮은 암장에서 숙식하며 훈련했다. 운동하러 오는 길에 석유를 사와 곤로에 불을 붙였고, 동굴 같은 벽 아래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암장에 설치되어 있는 철봉과 나무판으로 직접 만든 트레이닝 보드의 벗겨진 페인트칠은 세월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 준다.


서울스포츠클라이밍센터 안강영 센터장

"새내기는 신세대 스타일의 파워풀한 오버행(각이 몸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벽) 등반 루트죠. 스포츠 클라이밍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5.11대의 상징적인 루트일 거예요. 옛날에는 인수봉의 해우길(5.11)이 자연바위 멀티피치 등반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루트였어요. '해우길을 깔끔하게 끝냈다'는 데 큰 의미를 두었죠. 매일 인수봉을 찾으니 자연스럽게 여러 루트에 붙게 되고 어느 순간 해우길을 완등하는 날이 왔어요. 5.11이라는 난이도가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사실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하는 구간이에요. 열심히 훈련해서 꼭 이루기를 바랄게요."
레드포인트클라이밍 체계적 훈련과 강습, 레벨업 암장
서울 광진구 천호대로109길 9 리아리움더언타워 B1
기초과정 2개월/14회 16만 원 · 등급향상 과정 2개월/14회 16만 원
트레이닝 과정 2개월/14회 12만 원


체험이나 개인 운동보다 강습을 통한 레벨업을 위한 암장이다. 레드포인트클라이밍의 김종곤 센터장은 이 연재의 이름을 따온 <5.13이 보인다>의 저자다. 스포츠 클라이밍에 트레이닝법을 들여 온 주인공으로서 체계적인 훈련법을 통한 실력향상을 보장하는 강습을 제공한다. 김종곤 센터장이 암장을 시작한 것은 아웃도어 브랜드 K2와 함께였다. 당시 복합 스포츠 센터를 만들고자 했던 브랜드의 요구에 따라 리드클라이밍, 볼더링, 클라이밍 강습을 모두 진행하는 규모가 큰 암장을 운영했다. 이후 센터가 폐쇄되며 해당 암장의 '강습' 역할만 가지고 나와 세운 곳이 바로 레드포인트 클라이밍이다.


김종곤 센터장은 자연바위를 나가기 위한 훈련보다 별도의 스포츠로서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도록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킨다. 그의 저서 <5.13이 보인다>에서 언급한 다양한 훈련법과 휴식법을 통해 암장을 찾는 회원들의 클라이밍 실력을 향상할 수 있도록 하는 강습의 공간으로서 암장을 운영한다.
레드포인트클라이밍 김종곤 센터장

"제가 암벽등반을 시작했을 때는 특정한 루트를 목표로 두지 않았어요. 하나 하나의 루트들이 목표를 향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북한산 인수봉 남면에 가면 단피치 스포츠 루트들이 줄지어 있어요. '짬뽕길', '여정길', '거봉길' 이런 길들요. 그 자리에 있는 루트들을 단계별로 깨나가면서 실력을 키워갔어요. 시간 날 때마다 인수봉을 찾아 바위에 직접 붙었죠. 그러다 손가락 힘이나 어깨 근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거기에 맞게 훈련을 따로 진행했어요. 그러다보니 체계적인 훈련법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어졌어요. 스포츠 생리학 대학 서적과 해외 등반 서적을 찾아가며 공부해 만든 책이 <5.13이 보인다>입니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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