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은 시작일 뿐 … 동남아 의류공장 ‘임금 속임수 구조’

베트남에서 한국계 의류기업의 임금체불 문제가 발생한 가운데 동남아 의류산업에서는 단순한 임금 미지급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임금 속임수와 노동권 침해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트남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하띤성에 위치한 한국계 의류 제조기업 파이브스타 하띤공장에서 노동자 약 300명이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조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노동자들은 두 달치 임금과 설보너스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공장 가동 중단과 집단 항의에 나섰다.
국제노동 전문가들은 단순한 임금체불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동남아 의류산업에서 나타나는 노동통제 방식과 임금 속임수 구조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 자본은 아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몇 년 전 봉제산업 외국인 투자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인도네시아 매체 마잘라 세다네는 2023년 무렵 중부 자바 그로보간에 위치한 의류 제조업체 PT SAI Apparel Industries 공장에서 발생한 노동문제를 조사해 보도했다. 해당 공장은 글로벌 의류 브랜드에 제품을 공급하는 대형 봉제공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한다.
이 공장의 노동문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영상이 확산하면서 알려졌다. 영상에는 여성노동자가 공장 관리자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노동자는 초과근로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동단체와 연구자들이 노동자 급여명세서와 근로기록을 분석한 결과 단순한 임금 미지급을 넘어 여러 형태의 임금 관련 부정행위가 확인됐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된 것은 근로시간 기록 조작이다. 노동자들이 실제로 일한 시간보다 적게 기록되면서 초과근로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사례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강제 초과근로다. 생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노동자들이 정해진 근무시간 이후에도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이 과정에서 초과근로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사례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현지 노동단체는 법정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형해화, 그리고 노조활동에 대한 제약과 조직화 압력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자본의 국적을 넘어 동남아 의류산업에서 나타나는 노동문제의 특징을 보여준다. 임금체불 외에도 사회보험료 미납, 근로시간 조작, 초과근로수당 미지급, 산업안전보건의 부재, 노조활동 제약 등 여러 형태의 노동권 문제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의류산업에서는 최근 생산시설이 자카르타와 서부 자바에서 중부 자바 등 임금 수준이 낮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노조조직률이 낮은 지역으로 생산기지가 이동하면서 노동조건 관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베트남에서 발생한 한국계 기업의 임금체불 사건 역시 이러한 구조적 맥락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도네시아 PT SAI Apparel Industries 사례는 한국 기업이 관련된 사건은 아니지만 글로벌 의류 공급망에서 나타나는 노동 관리 방식이 자본의 국적에 상관없이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런 문제에 대응하려면 임금체불 여부만을 점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임금지급 구조, 근로시간 관리, 사회보험 납부 여부, 산업안전보건, 식당과 화장실 같은 영양 및 위생 문제, 노조활동 보장 등 근로조건과 노사관계 전반을 함께 점검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국제적 장치는 초보적인 단계지만 이미 존재한다. 국제노동기구(ILO)와 글로벌 노조단체, 현지 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노동권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다양한 실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 역시 해외에 진출한 기업의 노동문제를 단순한 개별 사건으로 대응하기보다 국제 네트워크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만의 단독 행위보다는 기존에 형성된 국제노동 거버넌스와 공급망 실사 체계를 활용해 현지 노조, 국제노동단체, 국제기구와 함께 문제를 점검하고 대응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webmaster@labortoday.co.kr)
Copyright © Copyright © 2026 매일노동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