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볼모’ 유가 겁박에 속 타는 美 [트럼프 스톡커]
호르무즈 해협, 핵심 전선 부각...기뢰로 확전
민간인 1300명 사망 속 미군 140명 부상 숨겨
‘두문불출’ 모즈타바도 다쳐...美도 미사일 소진
이란은 휴전 2번 ‘퇴짜’...이스라엘도 끝장 예고
비축유 결정에도 유가 ↑...트럼프 구상 불분명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2주째 글로벌 금융시장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가운데 전선이 공중·육상에서 해상까지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란군이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볼모로 전쟁을 장기로 끌고 가려는 조짐을 보이자 국제 유가의 변동성이 극에 달하는 상황이다. 한국과 유럽, 일본 등은 역대 최대량의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는 궁여지책까지 꺼내면서 대응하려 하지만, 시장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 명분과 성과, 비용 등 여러 면에서 출구가 막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금씩 종전 발언을 늘리면서 전황의 유불리를 살피는 분위기다. 이란 전쟁은 제해권 다툼에 따른 국제 유가 수준과 미국 내 여론, 3월 31일~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움직임에 따라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은 해상 기뢰를 5000~6000개가량 보유하고 있다. CBS는 이란의 어뢰 보유량을 2000~6000개로 추정했다. 대다수가 이란이 자체 생산했거나 중국·러시아에서 들여온 무기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부설하는 것은 이 통로를 지나는 유조선의 통행을 전면 봉쇄하기 위해서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가는 국제 에너지 수송의 요충지다. 군사력이 열세인 이란으로서는 글로벌 유가를 유례없는 수준으로 띄워 미국과 국제사회에 반전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전략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기뢰와 함께 폭발물을 실은 선박, 해안 미사일 포대를 동원해 유조선들을 공격할 계획이다. 호르무즈 해협 장악은 이란이 추후 미국·이스라엘과 종전이나 휴전을 논의할 때 유용한 협상 카드로도 쓸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이란의 위협 수위가 높아지자 미국도 치솟는 유가를 방어하기 위해 강경 대응에 나섰다. CBS와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 국방부(전쟁부)는 미군이 이 해협 인근에서 16척의 기뢰부설정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댄 케인 미국 합동참모의장은 브리핑에서 “미 중부사령부가 기뢰 부설정과 기뢰 저장 시설을 타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아직 보고를 받지 못했지만 만약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어떤 기뢰라도 설치했다면 우리는 그것들이 즉시 제거되기를 원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란에 대한 군사적 결과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른 트루스소셜 게시물에서 “지난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작전 상황에 있지 않은 기뢰 부설정 10척을 타격해 완파했다”며 “추가 타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X(옛 트위터)에 “미국 해군은 글로벌 시장에 석유 공급이 지속되도록 보장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을 성공적으로 호위했다”고 적었다가 몇 분 뒤 지우는 촌극도 벌어졌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같은 날 브리핑에서 “미국 해군이 현 시점에서 유조선이나 선박을 호위한 적이 없다고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주요 부처 장관의 허술한 여론전에 국제 유가만 요동쳤다.

이란도 이스라엘과 주변 미군 주요 시설을 대상으로 계속 반격을 가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통신은 이슬람 혁명수비대가 바레인에 있는 미국 해군 제5함대 기지와 이라크 내 미군 기지에 새로운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지상 공방이 쉼없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미군 측 부상자도 약 14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군은 부상자 규모를 공개하지 않다가 로이터통신이 150명이라고 선제 보도하자 뒤늦게 열흘간 약 140명이 다쳤고 중상자는 8명이라고 공표했다. 이는 지난 1일 미 중부사령부가 발표한 3명 사망, 5명 중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당시 부상자로 발표된 5명 가운데 3명이 결국 숨지면서 미군의 사망자 수는 현재까지 7명에 이른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라바니 주유엔 이란 대사도 이날 미국 뉴욕 UN본부에서 회견을 열고 이번 공습으로 자국 민간인만 1300명 이상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라바니 대사는 또 개전 이후 이란의 65개 학교·교육기관과 주택 약 8000채 등 민간 시설 약 1만 곳이 파괴됐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스라엘이 지난 8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중심가에 있는 호텔을 공습한 탓에 이란 외교관 4명도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11일에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선박 4척을 공격하기도 했다. 공격을 받은 대상은 이스라엘 회사가 소유한 라이베리아 선적 화물선 엑스프레스룸호, 태국 선적 컨테이너선 마유리나리호, 일본 선적 컨테이너선 원마제스티호, 마셜제도 선적 스타귀네스호 등이었다. 이날 공격으로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서 지금까지 공격받은 선박은 최소 15척으로 늘어났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걸프만에 덴마크의 세계적인 해운·물류 기업 머스크의 선박 10척도 갇혀 있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중앙군사본부 카탐 알안비야는 국영TV를 통해 성명을 내고 “미국과 이스라엘, 그 동맹국들의 석유 화물을 실은 모든 선박을 정당한 표적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유가는 당신들이 불안케 한 역내 안보에 달렸으므로 배럴당 200달러를 각오하라”고 경고했다.
미군의 ‘장대한 분노(에픽 퓨리)’ 작전을 총괄 지휘하는 브래드 쿠퍼 미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X에 동영상을 올리고 “현재까지 우리는 다양한 정밀 무기 체계를 활용해 60척 이상의 선박을 포함한 5500개 이상의 이란 표적을 타격했다”며 “이란의 주력 전투함인 솔레이마니급 전함 4척 가운데 마지막 1척을 제거했다”고 알렸다. 쿠퍼 사령관은 또 이번 작전에 첨단 인공지능(AI) 시스템이 활용되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쿠퍼 사령관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몇 초 안에 추려내 지휘관들이 적의 대응보다 더 빠르게 잡음을 걸러내고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다”며 “무엇에 언제 발사할지는 사람이 최종 결정하지만 첨단 AI 도구는 며칠, 몇 시간이 걸리던 과정을 몇 초로 줄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1일 이란 전쟁으로 중동 전역의 미국 군사·외교 시설 최소 17곳이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개전 다음 날인 1일에는 쿠웨이트 슈아이바 항구에 있는 미군 기지의 숙소가 이란 드론 공격을 받아 미군 6명이 사망했다. 같은 날 사우디아라비아 기지도 이란의 공격을 받아 미군 1명이 추가로 숨졌다. 이란은 나아가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를 비롯해 미국과 동맹국 방어망의 핵심인 레이더와 통신 시스템 등을 집중 타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요르단 무와파크 살티 공군기지의 방공 센서 장비가 심각하게 파손됐고, 카타르에서는 구축 비용만 약 11억 달러에 달하는 장거리 조기경보 레이더가 손상됐다.
이스라엘 채널 12방송은 10일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내 석유와 에너지 시설은 추가로 공격하지 말아달라고 자국에 요청했다는 보도도 내놓았다. 이란이 주변 걸프 국가들의 에너지 시설을 보복 공습해 전쟁이 중동 전체로 확대되고 유가가 급등하는 상황 만큼은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가 상승, 제재 해제, 우크라이나 전황 안정 등의 전쟁 특수를 누리는 러시아는 첨단 드론 전술을 이란에 제공해 미국과 걸프국에 대한 공격을 돕고 나섰다. CNN은 11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적용했던 드론 표적 선정을 포함한 전략을 이란에 전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6일 러시아가 이란에 미국 군함과 항공기 등 중동 내 미군 자산의 위치 정보를 건넸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10일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에게 두 차례의 휴전 요청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소식까지 전했다. 휴전 요청에 퇴짜를 놓는 나라가 미국이 아닌 이란이라는 보도였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 지도부는 전쟁에서 지고 있지 않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판단 아래 휴전안을 거부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미국 승리를 선언한다고 해도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미국이 종전 의사가 있다 하더라도 이란이 어떤 형태로든 전쟁을 이어가거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정치, 군사적 비용이 너무 막대해 전쟁을 되풀이할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교차관은 “휴전이 성립되거나 전쟁이 중단되려면 이란에 대한 침략 행위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란 정국이 불확실성에 휩싸이자 국제사회도 대응에 나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1일 원유 공급난에 대응하기 위해 역사상 최대인 4억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IEA는 보도자료에서 “32개 회원국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석유 시장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각국의 비상 비축유 중 4억 배럴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오늘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IEA는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어려워진 탓에 원유, 석유제품 수출량이 분쟁 전의 10% 미만으로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IEA 공식 발표 이후 한국은 2246만 배럴을, 영국은 1350만 배럴을, 프랑스는 1450만 배럴을 각각 방출하겠다고 밝혔다.
전략 비축유 제도는 1973년 제1차 석유 파동(오일쇼크) 직후인 1974년 IEA가 설립되면서 함께 도입됐다. IEA는 회원국들에 순 석유 수입량 기준 최소 90일분에 해당하는 비상 석유 비축 의무를 부과한다. 이 비축분은 국가가 직접 통제하거나 민간 기업이 보유한다. IEA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현재 12억 배럴 이상의 비상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 의무 아래 6억 배럴의 산업 비축량이 추가로 확보돼 있다. 이번 방출 규모는 전체 비축량의 22% 정도다.
IEA 회원국들은 1991년 걸프전(2500만 배럴), 2005년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타격(6000만 배럴), 2011년 리비아 내전(6000만 배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1억 2000만 배럴, 1억 8270만 배럴) 등 지금까지 총 다섯 번 공동 방출을 결정했다. 이번에 방출하게 될 4억 배럴은 역대 최대 수준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이와 함께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은 주요 7개국(G7) 지도자들이 11일 화상회의로 이란 전쟁의 경제적 영향에 관한 대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도 같은 날 이란의 주변국 공격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찬성 13표, 반대 0표로 채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 분쟁 종식 방안을 상의했다.

월가는 IEA가 방출하기로 한 전략비축유의 분량이 현 위기를 타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은 하루 약 1억 배럴인데 방출분은 고작 나흘 치에 불과한 까닭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맥쿼리는 이날 보고서에서 IEA의 방출 규모가 걸프 해역을 통과하는 원유 물동량을 기준으로 봐도 약 16일 치에 불과하다고 추산하면서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파티 비롤 사무총장도 “4억 배럴 방출은 시장 교란의 즉각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중대한 조치이나, 분명히 말하건대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흐름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건 운송 재개”라고 강조했다.
세계 경제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불분명한 메시지로 일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전쟁은 내가 끝내고 싶을 때 언제든 끝날 것”이라며 “사실상 공격할 표적이 거의 남지 않았고 이것저것이 조금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달리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현지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의 작전은 모든 목표를 완수하고 승리를 거둘 때까지 필요한 만큼 시간 제한 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백악관과 가까운 한 인사를 인용해 “백악관은 유가가 지속적으로 타격을 주는 정치적 문제가 되기 전까지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3∼4주의 시간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유가 급등을 감안해 대(對)이란 군사 전략을 변경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한 적이 없다며 8일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 육박했을 때 백악관 인사들이 매우 놀랐다고 보도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9일부터 곧 전쟁을 끝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던진 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대까지 내려가자 다시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를 방문해 지역방송 WKRC와 인터뷰를 갖고 미국의 비축유 방출 계획을 묻는 질문에 “우린 그렇게 할 것이고 이후 가득 채울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조금(a little bit) 줄일 것이고 그러면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상하는 이란 전쟁 종결 시점이 어느 때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국제 유가와 금융시장은 상당 기간 불안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일방적으로 끝내더라도 현 이란 정권이 그대로 존재하고, 언제든 다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한 유가가 쉽게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베냐민 네타냐후 내각에 강경파가 득세하는 이스라엘의 전쟁 지속 의지도 큰 변수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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