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뫼비우스의 띠'가 된 롯데와 태광의 '20년 앙금'
2006년 인수전부터 악연 시작돼
롯데홈쇼핑 "정상적인 회사 경영 방해"

롯데그룹과 태광그룹이 롯데홈쇼핑을 놓고 또다시 정면 충돌했습니다. 이번엔 오는 13일 열리는 롯데홈쇼핑의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구성 변경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데요. 2006년 불거진 경영권 분쟁이 20년째 이어지며 더욱 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사회 개편?
롯데홈쇼핑(법인명 우리홈쇼핑)은 오는 13일 주주총회를 열고 신규 이사를 선임할 예정입니다. 일부 이사의 임기가 만료되기 때문인데요. 이 신규 이사 선임 안건을 두고 롯데홈쇼핑 2대 주주인 태광그룹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태광그룹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롯데그룹 측 인사 4명을 추천했습니다. 이사 선임은 보통결의 사항이기 때문에 롯데홈쇼핑 지분 53.5%를 보유한 최대주주 롯데쇼핑이 이사 선임 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태광그룹이 문제 삼는 대목은 롯데홈쇼핑 이사회 내에 롯데그룹 인사들이 더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최대주주 롯데쇼핑이 롯데 추천 이사 선임 안건에 모두 찬성하고 태광 추천 후보 선임 안건에 대해 반대할 경우 롯데홈쇼핑의 이사회 구성이 바뀐다는 게 태광그룹 측의 주장입니다.

현재 롯데홈쇼핑 이사회는 롯데그룹 측 5명, 태광그룹 측 4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태광그룹의 주장대로라면 롯데그룹 측 이사 6명, 태광그룹 측 이사 3명으로 재편됩니다. 이사회의 3분의 2를 롯데그룹이 장악할 수 있다는 거죠. 이사회의 3분의 2를 차지하면 특별결의 안건도 롯데쇼핑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태광그룹은 최대주주 롯데쇼핑과 이사회를 '5대 4' 구도로 유지하자는 협약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태광그룹 측은 "롯데홈쇼핑은 13일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이사회를 6대3 구도로 재편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20년간 지켜온 견제와 균형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하지만 롯데홈쇼핑 측은 "이사회 구성은 주주총회에서 결정될 사안으로 현재 확정된 내용은 없다"며 "협약 위반이라는 주장은 어떤 협약을 말하는지 묻고 싶다"고 반박했습니다.
사돈이 악연된 사연
양측이 거론하는 '협약'과 현재의 갈등을 이해하려면 시계 바늘을 2000년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2000년대 초 롯데그룹과 태광그룹은 백화점, 할인점에 이어 유통업계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홈쇼핑 사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두 그룹은 당시 이미 사돈 관계였는데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고 신선호 산사스그룹 회장의 딸과 결혼했죠.
롯데쇼핑과 태광산업은 2001년 컨소시엄을 이뤄 홈쇼핑 사업자 선정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경방·아이즈비전·KCC정보통신·대아건설·행남자기 등으로 구성된 우리홈쇼핑 컨소시엄에 밀리면서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태광그룹은 홈쇼핑에 대한 야심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케이블TV 채널 티브로드를 보유하고 있었던 만큼 홈쇼핑을 발판 삼아 미디어 그룹으로 도약하고 싶어했죠. 결국 4년 뒤인 2005년 태광산업은 우리홈쇼핑 지분을 확보하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우리홈쇼핑은 경방, 아이즈비전 등 대주주간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이 분쟁 속에서 태광산업은 2006년 7월까지 45.04% 지분을 확보하는데 성공하고 방송통신위원회에 최다액 출자자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롯데쇼핑이 경방의 우리홈쇼핑 지분 49.78%를 4667억원에 인수하며 53.03%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가 됐기 때문입니다. 같은해 12월 방송통신위원회는 롯데쇼핑이 우리홈쇼핑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을 조건부 승인했습니다. 태광그룹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계속되는 다툼
태광그룹은 법정 다툼을 시작했습니다. 2007년 2월 방통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롯데쇼핑의 우리홈쇼핑 최다액 출자자 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게 시작이었는데요. 롯데홈쇼핑의 인수 절차를 문제 삼은 소송이었습니다. 하지만 태광그룹은 1, 2심에서 모두 패했습니다. 이후 2010년에도 태광그룹은 방통위를 상대로 같은 소송을 냈지만 역시 패소했습니다.
태광그룹과 롯데그룹의 갈등은 법정 밖에서도 첨예했습니다. 2007년 태광그룹의 티브로드는 우리홈쇼핑 송출채널을 S·A급에서 B급으로 격하시켰습니다. 홈쇼핑은 채널 번호에 따라 매출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채널 등급 변경은 우리홈쇼핑에 매출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지금도 롯데홈쇼핑이 법인명을 '우리홈쇼핑'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 역시 두 그룹의 갈등 때문입니다. 법인명 변경은 특별결의 사항이라 2대 주주인 태광의 동의가 필요한데요. 현재까지 동의해주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롯데그룹과 태광그룹이 계속 갈등을 빚는 것 역시 20년 전인 2006년 롯데홈쇼핑 인수 과정에서 굳어진 지분율 때문입니다. 현재 롯데쇼핑은 롯데홈쇼핑 지분 53.5%를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태광산업, 대한화섬, 티시스를 합친 태광그룹의 지분도 45.0%나 됩니다.
이에 따라 롯데쇼핑은 최대주주인데도 주요 안건 처리에 필요한 특별결의를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반면 태광그룹은 경영권은 없지만 중요한 결정을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을 갖고 있습니다.
견제냐 몽니냐
이번에 논란이 된 '5대 4' 이사회 구조 역시 2006년 롯데그룹의 롯데홈쇼핑 인수 당시부터 이어져왔습니다. 롯데홈쇼핑의 기존 1·2대 주주였던 경방과 아이즈비전은 2005년 2월 경영권 분쟁 당시 견제와 균형을 통해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자는 취지에서 5대4 이사회 구조를 유지하기로 협약을 맺었는데요.
2006년 롯데쇼핑과 태광산업이 각각 1·2대 주주 지분을 인수한 뒤에도 이 구도는 현재까지도 유지되는 중입니다. 태광그룹은 이 구도를 유지하자는 내용의 협약이 '합의서'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하지만 롯데그룹은 이런 협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태광그룹이 롯데홈쇼핑의 경영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롯데홈쇼핑은 최근 "(태광그룹이)2023년 8월 이후 정상적인 회사의 경영 활동에 문제를 삼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며 "주주나 이사진의 합리적 문제 제기에는 겸허히 수용하겠으나 회사 이익과 반하는 터무니없는 주장에는 강경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양측의 충돌은 잦았습니다. 태광그룹은 2023년 롯데홈쇼핑이 양평동 사옥을 롯데지주와 롯데웰푸드에게 비싸게 사 계열사를 지원했다며 공정위에 신고한 바 있는데요. 당시 롯데홈쇼핑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도 태광그룹은 롯데홈쇼핑을 공정위에 신고했는데요. 롯데백화점 등 계열사를 지원하기 위해 '통행세'를 받는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공정위는 이에 대해 조사 불개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보니 롯데홈쇼핑도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한 상태입니다. 롯데홈쇼핑은 이번 주총과 관련해 "대주주 횡포를 견제한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무분별한 반대와 빈번한 외부 고발 등으로 회사에 끼친 손해가 더 크다"면서 "지금이라도 2대 주주로서 책임감을 갖고 회사 발전을 위해 협력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롯데그룹과 태광그룹은 롯데홈쇼핑을 두고 20년간 한쪽이 완전한 경영권을 갖지도, 다른 한쪽이 완전히 배제되지도 않는 애매한 균형 상태에서 갈등을 이어왔습니다. 태광그룹의 주장대로 이사회가 재편되면 20년 만에 이 균형의 일부가 깨지게 되는데요. 여전히 태광그룹이 4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 이사회 밖에서 새로운 방식의 견제를 이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TV홈쇼핑 산업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롯데홈쇼핑은 최근 매출이 줄어들며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데요. 롯데그룹과 태광그룹의 20년 묵은 갈등이 롯데홈쇼핑의 정상 경영에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혜인 (hij@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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