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티셔츠는 ‘무례’?…전사자 추모식에 야구모자 고집한 트럼프 [박시진의 글로벌 픽]
미군 전사자 인수식에 모자 착용
트럼프家 온라인 몰 55달러 판매
“TPO 적합하지 않다” 비난 거세
오바마·바이든 등 공격…‘내로남불’

‘OOTD(Outfit Of The Day)’에 대해 아시나요? ‘오늘의 의상’을 줄인 말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자신의 옷차림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 형태로 쓰이며 일종의 ‘관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치인들은 OOTD를 활용해 대중들에게 자신의 의사나 뜻을 전달하곤 합니다. 시각적인 효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지루한 연설보다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에게 OOTD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는 패션이나 매너를 뜻하는 ‘TPO’입니다. 공식적인 언행, 태도, 메시지가 핵심인 정치야말로 TPO 감각이 가장 절실한 분야인 셈이죠.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TPO에 적합하지 않은 OOTD로 연일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바로 지난 7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미군 전사자 6명의 ‘존엄한 인수식(Dignified Transfer)’에 참석할 당시 ‘USA’가 적힌 흰색 야구모자를 썼기 때문인데요. 이 모자는 지금까지도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일부 공화당 인사를 포함해 트럼프에 비판적인 인사들은 그의 모자가 무례하다고 비난했습니다.

문제가 된 트럼프의 모자는 금색 글씨로 ‘USA’가 새겨진 제품입니다. 모자 왼쪽 측면에는 성조기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비연속 임기를 상징하는 ‘45/47’ 로고가 있는 상품입니다. 트럼프 일가가 운영하는 온라인 매장에서 55달러(약 7만 900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을 지낸 마이클 스틸은 X(옛 트위터)에 “이 바보는 품위나 순간의 의미를 전혀 모른다”며 “존엄한 인수식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빌어먹을 모자를 벗어라!!”고 게시글을 남겼습니다.
비판이 더 세졌던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델라웨어를 방문한 날 다른 장소에서는 모자를 벗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트럼프 대통령은 손에 야구모자를 반 접어 들고 있었고, 활주로에 운구 차량이 옮겨진 뒤 차에서 나온 그는 역시 모자를 쓰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후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했을 때는 모자를 착용한 상태였는데요, 그 모자는 미국 국민에게 이란 공격 개시를 알리는 녹화 영상에서 착용한 것과 유사한 제품이었습니다.
이 모자가 문제가 된 근본 이유는 트럼프가 모자를 일종의 정치적 마케팅 도구로 썼다는 정황 때문입니다. 실제 트럼프 스토어 웹사이트에는 모자 주문량이 폭주하며 ‘7~10일 가량 배송 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문구까지 떴습니다.
미국 일각에서는 행사 내내 야구모자를 쓰고 단 한 번도 벗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도, 전사자들을 존중하는 모습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른 참석자들이 고개를 숙일 때 트럼프 대통령 홀로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태도도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됐습니다. 한 X 이용자는 “트럼프는 자신이 저지른 이란 관련 실수로 목숨을 잃은 미군 장병들의 유해 환송식에서까지 선거용 모자를 쓰고 있었다”며 “위선이 극에 달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7번째 전사자가 나온 다음날(8일)에도 이 모자를 착용하고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습니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온 전쟁중에 여유롭게 골프를 즐기는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쓴소리를 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자 논란은 처음이 아닙니다. 2017년 허리케인 ‘하비’로 큰 피해를 입은 텍사스주 수해 현장을 방문할 당시에도 본인의 모자를 착용해 구설에 올랐습니다. 이 모자는 당시 트럼프 재선 캠프 공식 웹사이트에서 40달러에 판매 중이었는데요, 국가적 재난 상황을 위로하러 간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 캠프 굿즈를 홍보하고 수익을 올렸다는 점에서 비판받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때마다 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해외 정상에게 복장이 무례하다며 면박을 줬던 일을 떠올립니다. 지난해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났을 당시 ‘리얼 아메리카 보이스’ 기자인 브라이언 글렌은 젤렌스키가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에서 정장을 입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걸 빌미삼아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국의 전쟁 지원에 감사할 줄 모른다고 질책하기까지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정치인은 복장 하나로 곤욕을 치른 적이 많습니다.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존엄한 인수식 도중 시계를 확인한 것을 두고 한 달 이상 비난을 받았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 당시 비가 오자 해병대원들에게 우산을 들라고 요청해 반발을 샀고, 2014년에는 이슬람 무장단체(IS) 및 시리아 사태와 관련한 중대한 기자회견 당시 밝은 베이지색 정장을 입어 도마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보수 언론과 공화당은 “심각한 국가 안보를 논하는 자리에 파티복 같은 가벼운 옷은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하다”며 며칠 동안 맹비난이 이어졌습니다.

딕 체니 부통령도 2005년 1월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다른 지도자들이 검은색 외투를 입은 것과는 달리 올리브색 파카와 스키모자를 착용해 공격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는 ‘트럼프 2028’이 적힌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며 미국 헌법상 3선이 불가능한데도 야욕을 드냈다는 비판이 쏟아졌는데요,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으로는 이번 모자 착용도 오는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종의 홍보 마케팅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모자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모자를 쓰면 안되는 상황을 몰랐어도 문제지만, 알면서 했다면 더 큰 비난을 피할 수 없겠죠. 트럼프 대통령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란 역시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전망입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장기화되며 국민들도 하나둘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도자라면 더 책임감 있는 모습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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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진 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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