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4일차 ‘일본의 8배’ 기름값 폭등에 충격파…누가 이익 보나[점선면]

문광호 기자 2026. 3. 12. 07: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사실들): 주변국 1400원대, 한국만 1900원
선(맥락들): 한국 기름값, 대형 정유사가 올렸다
면(관점들): 추경 나선 정부, 정유사의 책임은?
지난 8일 인천의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해당 주유소 관계자는 경유 잔량이 얼마 없어 경유가 다 소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했다고 말했다. 권도현 기자

어제(11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전날보다 ℓ당 약 3원 내려갔습니다.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 하락세로 전환한 국제 유가 등의 영향으로 풀이되는데요. 미국-이란 전쟁 발발 10일 만에 200원 넘게 올랐던 점을 감안하면 가격 하락 폭은 미미합니다.

오른 유가에 물류·배송비, 여행 비용, 비료 가격 등은 이미 영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물가에도 반영될 전망이고요. 경제주체들이 대응할 여유도 없이 충격을 받게 되는 건데요. 한국 기름값이 주변국보다 훨씬 빨리, 많이 오른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이런 상황에서 이익을 보기도 합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점선면이 그 구조를 파헤쳐봤습니다.

점(사실들): 주변국 1400원대, 한국만 1900원

한국의 어제(11일) 전국 평균 휘발유 판매 가격은 ℓ당 1904원이었습니다. 이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 수입에 타격을 받는 주요국, 한국·중국·인도·일본 중 가장 높은 수준인데요. 중국·인도·일본의 휘발유 가격은 어제 기준 모두 원화로 1400~1500원대입니다.

가격 상승률도 한국이 압도적입니다. 지난 10일 가격(1907원)은 전쟁 발발일인 지난달 28일(1693원)보다 214원이 올랐는데요. 같은 기간 일본 휘발유 가격 상승률의 약 6배(1441원→1478원, 원화 환산)입니다. 전쟁 4일차에는 가격 상승률이 일본의 8배였고요. 중국은 같은 기간 123원 올랐고, 인도는 가격 변동이 거의 없었습니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후 한일 휘발유 가격 추이 그래픽. 변희슬 기자
선(맥락들): 한국 기름값, 대형 정유사가 올렸다

주변국들의 안정적인 가격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덕분입니다. 중국·인도는 정유사가 국영기업인데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고, 일본은 정유사에 보조금을 지급해 급등을 방지합니다.

한국도 1997년 이전까지는 최고 판매가격, 유통 단계별 판매가격 등을 고시하며 가격을 관리했는데요. 이후 법 개정으로 정유업체가 스스로 유류가격을 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시장 경쟁에 맡기면 자연스럽게 가격이 조정될 것으로 기대한 겁니다.

그런데 미국-이란 전쟁 국면에서는 기름값이 2~3주 시차를 두고 서서히 오르는 시장의 완충 작용이 없었습니다. 정유사가 원유 가격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석유제품 가격’ 변동을 주유소 공급가에 반영하기 때문인데요. 국내 정유사들이 기준으로 삼는 석유제품 가격 지표,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MOPS)은 특히 이번 전쟁 직후 급등했습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정유 4사가 주유소 사업까지 독점하는 한국의 독특한 구조가 꼽힙니다. 일본 등 해외에는 저가 경쟁을 하는 독립주유소가 많은데요. 한국은 전국 주유소 1만441곳 중 86%(8994곳)가 정유 4사 브랜드 주유소입니다(한국석유공사 오피넷 11일 통계 기준). 공기업에서 운영하는 알뜰주유소도 있지만 대형 정유사에 공급을 의존해 가격 경쟁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주유소 입장에선 정유사들이 공급가를 올리면 판매가를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주유소 자체적으로 수익 보전을 위해 판매가격을 선제적으로 올리는 경우도 생기면서 단기간에 급격한 판매가 상승이 이뤄졌습니다. 일각에서는 정유사 혹은 주유소간 담합이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중동 정세가 악화되면서 국제 유가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9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부산방면) 휴게소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문재원 기자
면(관점들): 추경 나선 정부, 정유사의 책임은?

정부는 최고가격제를 도입해 가격 안정에 나섰습니다. 지난 9일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번주 내로 휘발유·경유 가격 상한 설정을 위한 고시 제정 절차를 밟기로 했는데요. 유통 불법행위도 엄단하겠다는 방침입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유사나 주유소들이 가격을 빨리 올리고 천천히 내리는 비대칭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류세를 추가로 인하하고 소비자 직접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현재 휘발유 유류세는 7%, 경유는 10% 인하율이 적용된 상태인데 지금보다 인하 폭을 더 늘리겠다는 겁니다. 추가 재정 소요에 따른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가능성도 시사했습니다.

정유사의 사회적 책임도 요구됩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8년에도 고유가로 정유사들만 호황을 누린다는 지적이 제기됐는데요. 따가운 여론에 당시 정유사들은 3년간 10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으나 기한 내 조성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23년 정유 4사가 약 15조원 영업이익에 성과급 잔치를 벌이자 ‘횡재세’ 도입이 논의됐고요.

강대국이 일으킨 전쟁의 대가를 전 세계가 치르고 있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려운 시기, 기업이 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점선면>의 다른 뉴스레터가 궁금하시다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 https://buly.kr/AEzwP5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