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1주년 특별기획-보건바이오]① 강의실 준비됐나? 의대 증원, 속도 보다 질

김동주 기자 2026. 3. 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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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더블링’ 현실화…강의실 부족·실습 과밀 우려 확산
지역의료 강화 취지…교육 기반 확충 병행해야

최근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공공성 강화'라는 목표 아래 빠르게 추진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제네릭 의약품 약가 인하 등은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들이다. 그러나 정책의 취지와 달리 현장에서는 의료 인력 수급 불균형, 의약품 공급망 취약성 등 새로운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보건의료는 단순한 시장 논리만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분야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영역인 만큼 정책의 공공성과 함께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 산업 생태계의 안정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타나는 쟁점과 현장의 목소리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어느덧 2년 차에 접어들었으나 교육 현장에서는 양적 팽창에 따른 '교육의 질적 하락'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 서울=한스경제 김동주 기자 |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가 어느덧 2년 차에 접어들었으나 교육 현장에서는 양적 팽창에 따른 '교육의 질적 하락'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24학번 휴학생들과 2025학번 신입생들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이른바 '더블링'으로 보건의료 공공성 강화라는 정책 취지가 교육 인프라 부재로 인해 무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의대 24·25학번 70% "교육 질 저하 체감"

실제로 의료 교육 현장의 혼란은 데이터로 증명되고 있다. 교육계에 따르면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산하 대표자 단체가 전국 40개 의과대학 재학생 3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69%가 수업 환경 변화로 인해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고 답했다. 

특히 기존 정원으로 입학했으나 증원된 후배 기수와 통합 수업을 받게 된 24학번의 경우, 응답자의 84%가 질적 저하를 호소했다.

물리적 공간 부족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응답자의 57%는 강의실 부족으로 수업권 침해를 겪고 있다고 답했으며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가 강의실 좌석조차 확보하지 못해 원활한 수강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공간 부족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학습권 저하로 직결되고 있다. 학번 간 공간적 분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전체의 25%에 달했다.

학생들의 우려는 현재의 강의실 부족을 넘어 미래 수련 과정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체 응답자의 95%는 향후 본과 진입 시 실습 인원 과밀, 부속 병원의 수용 한계, 나아가 인턴 정원 부족 등의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응답자의 92%는 현재의 교육 혼란이 학부 과정을 넘어 인턴과 레지던트 등 전공의 수련 과정까지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2027~2031년 5개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확정했다. 기존 의대 정원 3058명에서 내년 490명 증원을 시작으로 2028년과 2029년에는 각각 613명, 2030년과 2031년에는 813명씩 정원을 늘려가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5년간 총 3342명, 연평균 668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배출해 고령화와 지역 의료 공백에 대응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의료계에서는 반발과 우려가 나왔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정부는 24·25학번의 교육과 수련에 문제가 없다고 호도하고 있으나 현장은 이미 붕괴 직전"이라며 "이미 학생들은 강의실 대신 대강당에서 겨우 수업을 듣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대규모 임상실습을 소화할 여력이 없는 병원에서 양질의 의사 양성은 불가능하다"라며 "정부는 교수, 전공의와 학생이 직접 참여하는 '합동 실사단'을 구성해 현장의 처참한 실태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라"고 강조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역시 "현재 전국 40대 의대는 2024~2025학번 더블링과 지역 의대 중심 대규모 증원 여파로 이미 임계치에 접근해있다"며 "근거가 공개되지 않은 490명 수용 가능이라는 메시지는 임상실습 붕괴와 수련 불가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시설 확충과 불확실한 교육 과정 해소가 선행되지 않은 증원은 공공의료 시스템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

◆ 공공성 강화, 교육 여건이 변수

정부 정책의 핵심은 증원을 통한 지역·필수의료 공공성 강화에 있다. 그러나 현장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양적 확대는 오히려 정책적 불신을 초래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고 있다. 임상 숙련도가 부족한 인력이 지역 의료 현장에 배치될 경우, 환자들이 신뢰도 높은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되어 지역 의료 자생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설 확충과 불확실한 교육 과정 해소가 선행되지 않은 증원은 공공의료 시스템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의대 교육여건 개선에 나선다. 의대 증원에 맞춰 각 대학별 정원 규모에 맞는 인력과 시설, 기자재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강의실과 실습실 등 교육기본시설을 개선하고, 학생편의시설 등도 단계적으로 확충한다. 기초의학 실험, 실습, 진료 수행, 임상술기 실습 등 의대 교육 단계에 따라 필요한 기자재 확보를 연차적으로 추진한다.

또한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는 연속 근무시간을 기존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줄였고, 주당 수련시간 상한을 정하기 위한 시범 사업도 시작한다.

다만, 교육의 질 확보를 위한 인프라 개선이 증원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의료계 관계자는 "당장 현장에서 벌어지는 강의실 부족과 실습 과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속도전보다는 '질적 가치'를 담보할 수 있는 정책적 세심함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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