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1톤당 ‘지구피해 28만원’ 산출…1만번 시뮬레이션
전세계 전문가들과 작업…“‘한국형 탄소 비용’ 만들 기회”

우리 집 휘발유차가 도로를 달릴 때, 석탄화력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할 때 지구 대기엔 이산화탄소가 추가된다. 배출된 탄소(온실가스)는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폭염과 가뭄, 홍수로 이어져 건강 악화, 식량 가격 상승,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하지만 당장 내 눈앞에 ‘탄소 고지서’가 날아오진 않는다. 탄소 배출이 가져올 피해를 미리 계산해 고지서를 부과하듯 미리 비용을 치르게 하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개발된 것이 ‘탄소의 사회적 비용’(SCC·Social Cost of Carbon)이다.
이 분야에서 주목받는 한국 학자가 있다. 유종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다. 그는 세계적인 전문가들과 함께 올해 2월 국제학술지 ‘기후변화 경제학’에 ‘전 지구 탄소의 사회적 비용’(GSCC)을 톤당194달러(약 28만5천원)로산출한 특집 논문 6편을 게재했다. 한국 전문가가 모형으로 탄소 비용을 직접 산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 교수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의 기후변화 피해비용’ 산정 연구개발 프로젝트(2023~2027년)를 이끌고 있고, 이번 연구도 그 일환이다. 유 교수를 지난달 2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유 교수는 “수십년 뒤를 전망하는 것인 만큼 불확실성은 필연적”이라며 “이번 연구는 탄소 비용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이 ‘불확실성’을 체계적으로 줄여 ‘진짜’ 탄소 비용에 더 가까이 가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를 위해 같은 값을 입력해도 모형에 따라 결과가 다른 ‘시스템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려 했다. 서로 시각이 다른 ‘펀드’, ‘페이지’ 등의 대표적 모형 4개를 종합했고, 기후민감도·할인율·인구변화·경제성장 같은 입력값의 사소한 차이로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려 1만번 가까이 시뮬레이션했다. 유 교수는 “각 모형의 최신 버전을 이용해 최신의 과학적 사실을 반영하고, 200개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 전망과 피해 비용, 인구변화, 경제성장 등 사회경제적 특성을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탄소 비용의 세계적 표준은 오바마 행정부 때 출범한 미국의 ‘범정부 워킹그룹’(IWG)이 산출한 값으로 인식된다. 세 가지 모형을 활용해 2010·2013·2016·2021년 네 차례 값을 산출했는데, 각각 29.6달러·48달러·46달러·56달러였다. 탄소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미국 환경보호청(EPA)에서 2023년 산출한 값은 무려 190달러였고 유 교수가 이번에 산출한 값은 194달러였다. 유 교수는 “미래 세대를 중요하게 생각해 할인율을 낮게 적용하는 연구가 많아지고(그만큼 미래 세대를 중시), 또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관련해 새롭게 드러나는 최신 과학적 지식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깊어질수록, 탄소 비용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탄소 비용은나라마다 조금씩 달리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연방법원은 2024년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한 축산업자에게 톤당 65달러의 탄소 비용을 적용해 5천만달러(715억원)의 배상을 명령했다. 국내에서도 2024년 경전철 목동선 건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탄소 감축 편익 산정 때 톤당 4만5천원(미국 워킹그룹의 2013년 값)을 적용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를 두고 “최신 연구 기준(당시 톤당 5만5400원)을 적용하면 환경편익이 137억원 추가 증가한다”고 밝혀 한국형 탄소 비용 산출의 필요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경제학의 ‘외부효과’ 개념에서 시작됐다. “100여년 전 ‘피구세’에서 출발해 1990년대 예일대 윌리엄 노드하우스 교수가 ‘기후-경제 통합평가모형’(DICE)을 만들면서 구체화”(유 교수)한 것이다. 영국 경제학자 아서 세실 피구는 1920년 개인이나 기업이 제3자에게 의도치 않은 손해를 끼치면서도 보상을 하지 않는 ‘부정적 외부효과’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교정하는 세금인 ‘피구세’를 제안했다.
유 교수는 “탄소 비용도 피구세의 일종으로 오랫동안 연구됐는데, 불확실성 문제 때문에 피구세의 일종인 담뱃세·교통혼잡세보다 도입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노드하우스의 모형은 특정 시점에 이산화탄소 1톤을 추가한 시나리오와 그렇지 않은 시나리오의 차이를 탄소 비용으로 산출한 것이다. 유 교수는 “현재 우리가 폭염·홍수·가뭄으로 입는 피해는 미래 세대가 겪을 피해에 견주면 매우 작은 수준”이라며 “미래 세대의 피해를 현재 시점에서 전망해 추산한 값이 탄소 비용”이라고 했다.

노드하우스가 재직한 예일대에서 석박사를 마친 유 교수는 이번에 범정부 워킹그룹 모형들의 원작자이거나 최고 운용 전문가들(미국·네덜란드·이탈리아 출신)과 협업했다. ‘어벤저스’급 전문가들이 협업에 응한 배경으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국의 관련 연구가 사실상 중단됐기에, 이번 제안을 학계에서 반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국의 관련 연구가 공백 상태인 지금을 그는 “한국의 기회”라고 했다. 유 교수는 “한국 정부가 범정부 워킹그룹 같은 체계를 구축하고 ‘한국형 탄소의 사회적 비용’(K-SCC)을 꾸준히 산출·발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중 탄소비용, 전세계 총액의 40%… 한국은 톤당 3.8달러
유종현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서 지난해 기준 ‘전 지구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톤당 194달러로 산출됐다. 반면 ‘한국의 탄소 비용’은 톤당 3.8달러에 불과하다. 세계 10위권 경제국의 탄소 비용이 지나치게 적은 이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유 교수가 지난해 국제학술지 ‘기후변화 경제학’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산출한 전 지구 탄소 비용은 톤당 194달러로, 2023년 미국 환경보호청이 추산한 190달러와 거의 같다. 유 교수는 전세계 200개 나라의 ‘국가별 탄소 비용’(NSCC)도 산출했는데 1위는 미국으로 139달러, 2위 중국 37달러였다. 두 나라를 합치면 전세계 총액의 약 40%다. 이어 영국(18달러), 독일(17달러), 프랑스(14달러) 순이다. 유 교수는 국가별 탄소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인구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등의 경제 규모”를 꼽았다. “기후재난이 닥쳤을 때 가진 게 많은 나라가 잃을 것도 많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한국은 3.8달러로 21위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전세계 국내총생산의 1.7% 수준인데 탄소 비용으론 비중이 0.9%에 불과했다. 이런 차이에 대해 유 교수는 “탄소 비용에는 미래 경제 규모가 주요하게 고려되는데, 한국은 인구가 다른 국가보다 빨리 감소해 미래 경제 규모가 더 빠르게 주는 것으로 전망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국가별 값은 필요에 따라 부수적으로 활용하는 용도”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한 나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기에 “정부 정책이나 기후소송 등에선 국가별 값이 아닌 전 지구 값을 쓰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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