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비축유 사상최대 4억배럴 방출 합의…한국도 2250만배럴(종합)

김상윤 2026. 3. 12.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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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에 유가 급등 대응…2022년 방출량의 두 배 넘어
일본·한국 등 주요국 참여…호르무즈 봉쇄에 글로벌 공급 충격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중동 전쟁 여파로 급등한 국제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비상 비축유 4억배럴을 시장에 방출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IEA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비축유 방출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유가 상승세를 억제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어질 경우 에너지 시장 불안이 계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IEA는 1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4억배럴의 비축유를 시장에 공급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중동 전쟁으로 원유 공급 불안이 급격히 커지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의 가격 급등과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긴급 대응이다.

이번 방출 규모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실시된 1억8300만배럴 방출의 두 배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당시에도 글로벌 에너지 공급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IEA 회원국들이 공동으로 비축유를 방출한 바 있다.

IEA는 특히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글로벌 시장에 상당한 공급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항로로, 중동 주요 산유국의 원유가 이 해협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공급된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현재 우리가 직면한 석유 시장의 도전은 전례 없는 규모”라며 “IEA 회원국들이 전례 없는 규모의 공동 비상 조치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각국도 구체적인 방출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일본은 약 8000만배럴을 방출하기로 했으며, 영국은 1350만배럴, 독일은 약 1950만배럴, 프랑스는 최대 1450만배럴을 시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도 2250만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할 계획이다.

다만 이번 방출의 구체적인 속도와 기간, 원유와 석유제품의 구성 비율 등 세부 사항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러한 세부 조건은 실제 시장 공급량과 가격 안정 효과를 좌우할 수 있는 핵심 변수로 평가된다. 에너지 분석업체 클레르(Kpler)의 호마윤 팔락샤히 애널리스트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며 “핵심은 얼마나 빠르게 방출하느냐”라고 말했다.

에너지 시장에서는 비축유 방출이 단기적으로 유가 급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 유가는 이번 주 초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급등했다. 런던 시장에서 브렌트유 가격은 배럴당 120달러에 근접하며 202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수준 중 하나까지 치솟았다.

이후 주요국의 비축유 방출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가격 상승세는 일부 진정됐지만, 전쟁 상황이 계속되는 만큼 시장 변동성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IEA는 에너지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비축유 방출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 정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롤 사무총장은 “에너지 시장의 안정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이 재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IEA 32개 회원국은 공공 비상 비축유 약 12억배럴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 의무에 따라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약 6억배럴 규모의 산업 비축유도 추가로 존재한다. IEA 회원국들은 에너지 안보를 위해 순수입 기준 최소 90일치 석유 비축을 유지해야 한다. 이러한 비축유는 전쟁, 자연재해, 공급 차질 등 에너지 시장 위기 상황에서 시장 안정 조치로 방출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전략비축유(SPR)는 세계 최대 규모로, 현재 약 4억1500만배럴이 저장돼 있다. SPR은 1970년대 아랍 석유 금수 조치 이후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구축된 제도로, 멕시코만 연안의 대형 지하 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SPR의 최대 방출 능력은 하루 약 440만배럴이며, 대통령이 방출을 결정한 뒤 실제 시장에 공급되기까지는 약 13일 정도가 걸린다.

다만 일부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비축유 방출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대규모 공급 차질을 완전히 메우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기관 시티그룹은 중동 지역 공급 차질 규모가 하루 약 1100만~1600만배럴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장기간 차단될 경우 글로벌 원유 공급의 상당 부분이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현재 해협 봉쇄 여파로 페르시아만 지역 주요 산유국의 저장시설이 빠르게 차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들이 추가 감산에 나서는 상황도 공급 불안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역별로 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되는 원유는 유럽이나 미국보다 아시아 국가들이 훨씬 더 많이 수입하고 있어, 전쟁 여파는 아시아 에너지 시장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석유 제품별 영향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항공유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항공유 가격이 원유 대비 크게 상승하는 등 시장 불균형이 확대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IEA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비축유 공동 방출을 주도해 왔다. 대표적으로 1991년 걸프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 2011년 리비아 내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글로벌 에너지 공급 위기 때 비축유 방출 조치가 시행됐다.

김상윤 (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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