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교섭 신청, 하루 407건 쏟아져

김아사 기자 2026. 3. 1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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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된 ‘노란봉투법’ 우려
원청 5곳은 곧바로 수용 의사
11일 오전 11시 서울 청와대 앞에서 민주노총 소속 ‘돌봄 공동교섭단’이 정부에 돌봄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돌봄 노동자의 실질 사용자는 정부’라고 주장하며 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교육부에 단체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김지호 기자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지난 10일 하루 만에 하청 노조 407곳(조합원 8만1600명)이 원청 사업장 221곳을 상대로 교섭 요구에 나선 것으로 집계됐다. 원청 기업이 직접 고용 계약을 맺지 않은 하청 노동자들의 상시적 교섭 요구에 시달릴 것이란 경영계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11일 이 같은 내용의 하청 노조 교섭 요구 현황(10일 오후 8시 기준)을 집계해 공표했다. 407곳 중 357곳은 민주노총 소속이었다. 현대차·HD현대중공업·한화오션·롯데건설 등 주요 대기업뿐 아니라 연세대·고려대 등 대학, 서울시·경기도 등 지자체들도 교섭 요구를 받았다.

정부는 “원·하청 간 대화와 타협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사용자성이 인정된 의제에 한해 교섭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현실을 모르는 얘기”라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노사 간 교섭 테이블이 차려지면 사용자성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다양한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고, 노조가 파업을 협상 무기로 삼아도 거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정부와 노조를 의식해 하나둘 노사 교섭에 나설 것으로 본다. 실제 10일 곧바로 교섭 의사를 나타낸 업체 5곳(한화오션·포스코·쿠팡CLS·부산교통공사·화성시)은 모두 정부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른 업체들도 결국 교섭 테이블에 앉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말하는 타협은 기업이 희생해 모든 걸 감내하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한노총 노조가 원청에 교섭 신청하자, 민노총 “우린 따로”

고용노동부는 11일 “원청 사용자 가운데 교섭 의사를 갖고 법적 절차에 따라 교섭 요구 당일 이를 공고한 사업장은 한화오션·포스코·쿠팡CLS·부산교통공사·화성시 등 5곳”이라고 밝혔다. 노동부 교섭 절차 매뉴얼에 따르면,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은 원청은 이 사실을 7일간 공고해야 한다. 공고하지 않을 경우 노동위원회에서 해당 원청 업체와 하청 노조의 사용자성이 성립하는지 따질 수 있는데, 이 업체들은 곧바로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것이다. 이는 하청 노조와 노사 교섭에 나서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업체들은 모두 정부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다. 포스코는 국민연금이 대주주로 정부가 회장 인선 등에 관여하고, 부산교통공사와 화성시는 정부가 사실상 사용자 역할을 하는 곳이다. 쿠팡CLS는 민주당과 정부, 양대 노총 등이 참여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새벽 배송 제한 여부를 논의 중이고, 한화오션은 사업 특성상 발주처인 정부의 영향이 크다. 이 중 한 업체의 노무 담당자는 “사용자성을 따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정부 뜻을 거스르기 어렵고 결국 교섭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산업계는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이 10일 하루 만에 31건 접수된 데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이제까지 노사 교섭의 대원칙은 2011년 도입된 ‘교섭 창구 단일화’였다. 당시 복수 노조를 허용하는 제도가 시행되자 사용자가 개별 노조마다 따로 교섭에 응해야 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조들이 뽑은 ‘대표 노조’와 교섭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며 노동부는 원·하청 노조 간뿐 아니라 하청 노조 간에도 원청 업체와 교섭을 각각 할 수 있도록 했다. 임금 체계나 근로 조건 차이뿐 아니라 ‘노조 간 갈등 가능성’ 같은 요소까지 고려해 교섭 단위를 분리할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노조 상급단체나 이권에 따라 교섭 단위가 쪼개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는데, 결국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예컨대 쿠팡CLS의 경우 10일 한국노총 노조로부터 교섭 요구를 받은 뒤, 민노총 노조로부터 교섭 단위 분리 신청 통보를 받았다. 쿠팡CLS 노동자들은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이다. 민노총 입장에선 한국노총과 함께 협상에 나서면 협상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가 줄어들 것을 걱정해 교섭 요구를 하기도 전에 교섭 단위 분리 신청부터 한 것이다. 노동위원회가 분리 신청을 받아들이면 쿠팡은 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노조와 각각 쪼개기 교섭을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 파장이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노동위원회에 달려 있다고 본다. 원청 업체와 하청 노조 간 사용자 관계가 성립하는지부터 교섭 단위 분리에 대한 판단도 노동위원회가 맡기 때문이다.

노동위원회는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로 구성돼 있는데, 지방노동위 판단을 중앙노동위가 재심처럼 다시 판단할 수 있다. 중앙노동위를 이끄는 건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박수근(69) 위원장이다.

사용자성 판단은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 내 공익위원 3명과 근로자위원, 사용자 위원 각각 1명으로 구성된 심판위원회가 맡는다. 판단을 좌우하는 건 수가 많은 공익위원들이다. 공익위원은 노동부 장관이 위촉하는 만큼, 주요 결정에서 정부 입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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