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에 전기톱 드는 현역… “나무가 바로 나”

용인/허윤희 기자 2026. 3. 1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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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생애 최초 대규모 회고전
17일 호암미술관서 개막
전시장에서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1987) 옆에 서 있는 김윤신. 아르헨티나 이주 4년째에 제작한 작품으로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높이 181.3㎝. 안정감 있는 밑동 위로 다양한 형태의 돌기들이 서로 다른 각도와 밀도로 맞물리며 올라가 마치 조각의 뼈대를 이루는 듯한 구성이다. /호암미술관

“나무는 바로 나예요.”

91세에 전기톱 들고 나무를 자르는 현역 조각가가 말했다. 구순에 전성기를 맞은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나무가 좋아서” 40년간 한국을 떠나 아르헨티나에서 작업했고, 다시 한국에 정착한 지금도 눈을 뜨면 나무부터 만진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았고, 자연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어요. 나는 톱질을 해야 몸이 안아파요.” 전시장에서 만난 그가 풍성한 백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원조 걸크러시(여자도 반하는 멋진 여성)’ 매력을 발산했다.

김윤신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경. 2층 전시장이 조각 런웨이가 됐다. /뉴시스

김윤신의 생애 첫 대규모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17일 개막한다. 1982년 개관한 호암미술관이 한국 여성 작가의 개인전을 여는 건 처음이다. 집요하게 나무를 재료로 생명의 본질을 탐구해 온 김윤신의 70여 년 예술 세계가 미술관 2개 층 전관에 펼쳐진다. 망실된 1960년대 이전 작품을 제외하고 파리 유학 시절 판화부터 60대 들어 몰입하기 시작한 회화까지 엄선한 170여 점이 나왔다. 미술관은 “작가가 평생 제작한 작품이 평면·입체를 아울러 1500점에 달한다”며 “앞으로 회고전을 서너 번은 더 해야 될 정도”라고 했다.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오른쪽)가 11일 언론 공개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11일 언론에 사전 공개된 전시장에선 육질 단단한 나무 조각들이 산책로처럼 늘어서 있었다. 톱질을 통해 드러난 나무의 속살과 거친 껍질이 대조를 이루고, 잘린 단면과 벌어진 틈이 그대로 드러난 조각이다. 작가는 “이 나무가 어떤 성질을 갖고 있는지 며칠 동안 보다가, 딱 느낌이 왔을 때 톱을 들고 거침없이 공간을 만들어 간다”며 “일단 잘라내야 그다음이 보인다”고 했다. 그 과정을 그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재료와 내가 하나가 되어(合) 작품이라는 또다른 하나가 탄생(分)한다”는 의미다.

1층 전시실 전경. 1970년대 중후반의 '기원 쌓기' 시리즈와 '합이합일' 개념이 형성되던 시기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이 놓였다. /호암미술관
아르헨티나에 가서 전기톱으로 처음 작업한 작품.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4-84'(1984). /뉴시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나무를 솟대처럼 쌓아 올린 초기작 ‘기원 쌓기’ 연작은 유년기 기억과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오빠 김국주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엄마는 새벽마다 장독대 옆에 물을 떠놓고 기도했다. “내가 돌을 주워다 쌓으면 엄마가 초를 세워두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엄마의 간절한 염원에서 작품이 나온 것 같다. 미술이 단순히 형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정신과 혼이 드러나는 것임을 나중에 깨달았다.”

1983년 12월 김윤신은 “이곳 나무가 기차게 좋다”는 조카의 말에 이끌려 아르헨티나를 찾았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숲, 아름드리 나무가 나를 멈추게 했다. 여기 재료로 1000점 만들면 한국으로 돌아가자 결심했다.” 그는 상명여대 교수라는 안정된 지위도 내려놓고 그곳에 정착했다. 돌처럼 단단한 남미 나무와 씨름하다 찾아낸 도구가 전기톱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알가로보, 라파초, 칼덴, 케브라초 같은 원목이 그의 손을 거쳐 원초적 생명력 물씬한 조각으로 탄생했다.

김윤신, 회화 ‘내 영혼의 노래 2013-50’(2013). 나무 같은 기둥을 중심으로 잎사귀들이 화면 전체에 흩날린다. 150×460cm. /호암미술관

전시장 1층에선 1970년대 중후반의 ‘기원 쌓기’ 시리즈부터 아르헨티나 이주 후의 달라진 작업까지 거닐면서 살펴보게 했다. 현존하는 가장 초기작인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 석판화, 이후의 실험적인 평면 작품들도 함께 전시했다. 2층에선 멕시코·브라질 채석장에서 장기 체류하며 만든 돌조각과 함께 2000년대 이후 채색 조각을 런웨이처럼 늘어놓았다. 남미의 토속성과 원시성, 한국의 오방색이 만난 원색의 회화도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태현선 리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는 “아시아와 유럽, 남미를 가로지르며 두 세기에 걸쳐 형성된 김윤신 작업은 한국적 감성과 동양적 사유를 기반으로 남미의 자연과 문화를 흡수하며 구축된 매우 독자적인 작품”이라며 “톱질과 망치질 자국으로 가득한 그의 조각은 동시대 미술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작가’라는 존재를 느끼게 한다”고 했다.

생명력 넘치는 회화와 채색 조각이 함께 전시된 2층 전시장. /뉴시스

3년 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이 대박 나면서 국제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평단과 언론, 시장이 열광했다. 김윤신은 89세에 세계 최대 미술 축제인 ‘2024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대받은 데 이어, 91세에 호암미술관 최초의 여성 작가 개인전 주인공이 됐다. 그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면서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한 일이다.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했다. “딱 105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그때까지 하면 누가 봐도 ‘아, 이거 김윤신이야’ 이렇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전시는 6월 28일까지. 성인 2만5000원.

전시장에 선 김윤신. /호암미술관

☞ 김윤신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과 석판화를 공부했다. 1969년 귀국해 학생들을 가르쳤고, 1974년 한국여류조각가협회 설립을 주도했다. 상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다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했다.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2024년 제60회 베네치아 비엔날레 본전시 작가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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