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불길처럼 그리움이 타올랐던 적 있나요?
아무리 그리워도 질리지 않고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아

사랑을 사랑하고 그리움을 그리워한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솟구쳐서 마른기침까지 토한 적이 있는가? 그리움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삶의 개인적 역사를 쓰고 있다는 것 아닐까. 간절한 그리움 때문에, 세계가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가졌을 때 비로소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리움은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아닐까.
이대흠 시인의 시 '먹어도 먹어도'에서처럼 '아무리 그리워해도 나의 그리움은, 바삭바삭 금방 무너질 듯 마른기침을 토하며,'에서처럼 온통 그리움이 시적화자의 전체를 덮고 있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그리움 때문에, 말은 안으로 삭아서 없어지고, 그 자리에 마른기침이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 오히려 그립다.
이런 그리움에 모든 것이 불탈 것 같은 '그리움'은 살아가는 동안 몇 번 찾아올까. 찾아왔던 사람은 이 죽을 것 같은 그리움의 세계를 자기 서사의 장으로 열어 좀 더 풍요로운 심연의 세계를 가지지 않을까.
그리움은 계산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한순간 덮쳐오는 해일처럼 순식간에 그 세계를 마주한다. 또 자신은 빠져드는지도 모르게 빠져든다. 또 다르게는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무방비의 세계에서 상상과 환상이 춤을 추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실재의 세계를 사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를 살고 있다. 그 상상 가운데 하나가 그리움이다. 그리움 자체가 상상이란 말은 아니다. 그리움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서사가 상상이란 것이다. 그리움이 펼치는 세계에서 끝없이 슬픔으로 추락하고, 추락한 자신을 추스르며 다시 현실로 돌아와 또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해도 그리움은 어찌 질리지도 않는지.
우리는 현실을 살면서도 추상의 세계를 살고 있다. 물론 현실을 산다. 현실을 살면서도 사랑도 막연하고, 그리움도 막연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현실을 직면한다. 비로소 한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 한 세계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과 막연하게 겪은 사람은 세상을 대하는 자세와 깊이가 다르다. '왠지 당신의 이름만 떠올라도 불길처럼'의 세계 속에 한동안 몸담았던 적이 있는 사람의 세계는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심연의 세계를 가진 사람이다.
오래된 시집에서 이대흠 시인의 시 '먹어도 먹어도'가 강렬하게 시선을 끌었던 것은 다시 그리움의 세계에서 불꽃처럼 쓰러질 기운조차 없는 '나'와 시적 화자가 강하게 대조됐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의 그리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싱거운 그리움이 아니라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리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움은 에너지다. 그리움은 내면의 질서를 바꾸려는 몸부림이다.
먹어도 먹어도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는 농심 새우깡처럼, 아무리 그리워해도 나의 그리움은, 채워지지 않고, 바삭바삭 금방 무너질 듯 마른기침을 토하며, 그리워 그리워해도 그리움은, 질리지 않고, 물 같은 당신께 닿으면 한꺼번에 녹여 버릴 듯, 왠지 당신의 이름만 떠올라도 불길처럼,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그리움은,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1997,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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