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이 경남 청년人·家]하동 ‘밤톨’ 이가현 대표
브랜딩 공부에 몰두 “하동 대표하는 맛 만들고파”

'화개장터'는 하동을 대표하는 관광지 중 하나다. 연중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하동 화개면, 투박한 간판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작은 간판.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간결한 외관의 작은 매장을 나서는 이들의 손에 하나같이 네모난 밤색 포장 상자가 들려 나온다. 상자 안에는 하동 밤으로 만든 밤파이가 담겼다.
어느샌가 하동을 찾는 여행자에게 하동을 찾을 이유가 된 '밤톨', 그 중심에 1996년생 청년 창업가 이가현 대표가 있다.
◇관광객은 많은데…
이 대표는 부산 출신이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고 어느 순간 하동으로 삶의 방향을 틀었다. 그는 어떻게 이곳에 삶의 닻을 내리게 됐을까.
이 대표는 '여행자'로 처음 하동과 만났다. 지리산과 섬진강, 화개장터와 십리벚꽃길. 자연과 관광자원이 어우러진 이곳은 분명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으레 그렇듯 관광객의 동선을 따라다니던 이 대표는 이곳에서 '빈틈'을 봤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은데, 왜 젊은 사람이 하는 매장은 없지?"
이 대표 눈에 든 '빈틈'과 이어진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밤톨'이다.

◇아버지와 딸, 감각과 전문성의 결합
디자인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관련 업계에 몸담았던 그는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발견한 '빈틈'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관광객 동선, 소비 패턴, 관광·식음료·디저트 시장의 최신 동향을 분석하고 화개에 접목할 만한 부분을 찾았다. 나름의 시장분석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의 아버지도 자연스레 함께했다. 일본 동경제과학교에서 제과 기술을 익힌 뒤 부산에서 케이크와 타르트 전문점을 운영했던 아버지는 경력 30년이 넘는 전문 파티시에였다. "아버지의 기술과 저의 감각이 합쳐지면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봤어요."
다음 고민은 무엇으로 상품을 만들까였다. 눈에 든 것이 하동 밤이었다. 밤 하면 많은 이들이 공주 밤을 떠올리지만 하동도 그에 못지않은 밤 주산지다.
그는 두 가지 키워드로 방향을 정했다. '맛'과 '보여지는 것'. 아버지의 전문적인 기술로 '맛'은 확신할 수 있었고, 하동 밤이면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했다. 익숙하지만 '특별한', '하동 밤을 내세운 젊은 감각의 베이커리 카페'. 밤톨은 그렇게 문을 열었다.
시장분석과 아이템 선정, 브랜드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마친 이 대표는 주저 없이 하동행을 택했다. 2020년 물난리 이후 그대로 방치됐던 한 상가를 택하고, 이듬해 밤톨 매장을 열었다.

◇'하동에 오면 들러야 할 곳, 밤톨'
밤톨의 운영 구조는 명확하다. 이 대표의 부친은 밤톨의 제품 개발 전반을 담당한다. 이 대표는 운영도 맡고 있지만 '브랜드 디렉터'에 가깝다. 기술과 감각의 분업 구조다. 공간 구성과 패키지 디자인, 제품 콘셉트, 브랜드 스토리텔링까지가 이 대표의 영역이다. 매장 이름부터 인테리어, 포장 상자 하나까지 모두 이 대표의 '작품'이다.
작은 시골 번화가 수준의 상권에서 밤톨은 소박하고 간결해서 눈길을 끌었다. 시선을 끄는 데 성공하자 호기심이 뒤따랐다. 그 호기심에 이끌려 '고객'이 됐고, 나중에는 그들이 밤톨을 알리는 데 나섰다. 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객들의 블로그와 SNS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내 입소문을 탔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밤톨은 '하동에 오면 들러야 할 곳'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예상에도 없었고,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다. '하동 밤으로 특화된 젊고 트렌디한 베이커리 카페', '맛으로 첫인상을 만들고, 브랜딩으로 기억을 남긴다.' 그의 전략은 정확히 시장을 꿰뚫었다.

◇'지역', 빼놓을 수 없었던 요소
밤톨의 또 하나의 특징은 '지역'과의 연결이다. 처음엔 원물 수급도 '발품'으로 시작했다. '밤 팝니다'라는 현수막을 보고 농가를 찾아가 직접 문을 두드렸다. 맛은 있지만 상품성이 낮아 버려질 처지에 처한 쪽밤과 같은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것은 밤톨이 지향하는 지역과의 연계성을 한층 공고히 했다.
작년 6월, 이가현 대표는 밤톨에 이어 두 번째 매장 '숲속'을 열었다. 애초 '숲속'은 밤톨의 온라인 판매용 제품 제조 공간 확보라는 현실적 필요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곳을 하동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을 활용한 '브랜드 실험 공간'으로 확장했다. 밤톨의 '물리적 확장판'이 아닌 그가 가진 방향성의 확장, 또 다른 지역과의 연결점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역 청년 창업가 네트워크와도 연을 맺었다. '하동청년벤처협회'라는 모임은 이 대표와 '다른 듯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이들이 모여 '같은 듯 다른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신규 매장 '숲속'에서 내놓은 많은 제품 속에는 하동에서 맺은 인연들이 생산하고 가공해 유통하는 매실, 곶감, 고구마, 전통주와 녹차 등이 담겼다. 아버지와의 '협업'이 지역과의 '협업 생태계'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하동에서 청년창업이란?
이가현 대표가 바라보는 하동의 장점은 그가 그랬듯 유명 관광지는 많은데 젊은 감각의 매장이 여전히 적다는 것이다. 아이템과 콘텐츠만 갖추면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이다.
반면 한계도 있다. 특히 주거 공간의 부족은 가장 문제다. 처음 자신이 하동에 왔을 때도, 직원들을 채용할 때도 '살 집이 없다'는 현실은 여전했다. 최근 하동청년타운이 지어졌다는 소식이 가장 반가웠다는 이 대표다. 그는 청년들이 '살 집'이 안정적으로 뒷받침된다면 그 어느 곳보다 청년이 창업하기 좋은 하동이 될 거라 힘주어 말했다.
◇이가현, 그의 바람은?
이 대표의 바람도 지역과 맞닿아 있다. "하동에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그는 지역을 '경쟁력 있는 자산'으로 본다. 다만 "지역에 갇힌 사업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지역성을 갖되 확장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지역에서 일본 라멘집을 열 구상이라면 매장 판매에 그칠 것이 아니라 밀키트 개발로 온라인까지 확장할 수 있는 그림을 처음부터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 자신도 "몰라서 하지 못했던 일"이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청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적극 도전할 것을 권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비용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준비 과정에서 자신의 사업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점검, 보완하는 '공부'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계획을 세우면 그대로 되더라"라는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가까운 이 대표의 목표는 밤톨과 숲속, 두 브랜드의 안정적 정착이다. 처음 밤톨 문을 열며 다짐했던 '하동을 대표하는 맛을 만들고 싶다'라는 각오도 확고하다.
이 때문에 지금도 그는 공부 중이다. 브랜딩 공부에 한창 흥미를 느끼고 있다. 여기도 지역이 녹아있다. 자신이 일군 브랜드가 지역 산업의 한 축이 되고, 나아가 지역의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한 작업이다. 인터뷰 내내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을 '극I(극내향형)'라며 수줍어하던 그의 눈빛은 다음 목표와 바람을 이야기할 때 유난히 빛났다.
끝으로 예비 창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동으로 많이 오세요!"
정영식기자 jys23@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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