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진경산수’의 출발점을 보다[붓 끝의 美학]

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2026. 3. 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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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서화 걸작
① 신묘년풍악도첩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인 정선의 <신묘년풍악도첩> 중‘단발령망금강산’(1711·위 사진)과 ‘금강내산총도’(1711).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이 지난달 26일 재개관했다. 교과서에서 접했던 명품을 보고, 대표 서화가들을 주기적으로 집중 조명하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박물관 학예연구사를 통해 새 단장한 서화실에서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작품들의 진면목을 들어본다.

서른여섯에 금강산 첫 유람
13폭 그림에 감흥 고스란히
초년의 예술적 성취 드러나
산길 과감한 생략·과장 등
실경 표현하려 실험적 시도
말년에 ‘금강전도’로 완성

예술은 사람과 함께 무르익어간다. 장르를 막론하고 위대한 작품이 예술가의 말년에 탄생하는 경우는 흔하다. 오랜 경험과 숙련을 통해 축적된 예술 세계가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사에서 이러한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예술가를 꼽으라면 바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이 대표적일 것이다. 84세까지 장수한 그는 60대에 이르러 자신의 화풍을 본격적으로 확립하고 ‘금강전도’(삼성문화재단 소장), ‘인왕제색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박연폭포’(개인 소장) 등 걸작을 모두 70대에 선보였다. 하지만 겸재 정선의 예술 세계에 있어 말년 못지않게 초년의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 있다. 바로 1711년,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린 <신묘년풍악도첩>이다.

이 작품은 정선이 남긴 가장 이른 기년작(紀年作)으로, 훗날 진경산수로 발전하는 그의 예술 세계의 출발을 보여준다. 서울 북악산 아래의 몰락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주변 인물들의 도움으로 화가의 길을 수련하던 정선은 같은 동네 어른인 신태동(辛泰東·1659~1729)과 함께 첫 금강산 유람을 하게 된다. 이 여행은 젊은 화가 정선에게 우리 강산을 직접 관찰하고 화폭에 담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신묘년풍악도첩>에는 금강산 일대와 동해안 지역을 유람하고 난 뒤의 감흥이 13폭의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그린 ‘단발령망금강산’은 금강산을 처음 마주한 순간의 강렬한 인상을 보여준다. 정선은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과 단발령의 봉우리를 화면 전면에 배치하고, 그 너머로 환하게 드러나는 금강산의 봉우리들을 표현했다. 근경과 원경 사이의 공간을 비우거나 험준한 산세를 강조하는 과감한 생략과 과장은 이후 그의 진경산수의 특징적 표현으로 자리 잡는다.

내금강의 전체 지형을 보여주는 ‘금강내산총도’는 내금강의 산세와 계곡, 사찰의 위치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부감 시점으로 담았다. 화면에는 주요 지명이 기록되어 있어 일종의 그림 지도처럼 금강산의 지형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훗날 정선이 제작한 ‘금강전도’의 장대한 화면 구성으로 발전한다. ‘금강내산총도’에 나타난 주요 명승지는 개별 장면으로 이어져 내금강 입구의 ‘장안사’, 만폭동 깊숙한 곳의 ‘보덕굴’, 내금강에서 외금강으로 나가는 길목의 ‘불정대’, 유람을 마무리하는 ‘백천교’에 이른다. 금강산뿐 아니라 동해안의 절경도 함께 담겨 있다. 고성 지역의 ‘해산정’과 ‘삼일호’, 삼일호 서북쪽 문암의 해돋이를 그린 ‘문암관일출’, 통천 지역의 ‘옹천’과 ‘총석정’, 그리고 흡곡의 ‘시중대’에 이르기까지 관동 지역의 다양한 풍경이 펼쳐진다.

정선은 자신이 직접 보고 기억한 풍경을 섬세하고 꼼꼼하게 그렸다. 쌀알 모양의 미점(米點)으로 산과 나무를 묘사하는 방식, 바위산을 각진 선으로 표현하고 상부에 흰색을 더하는 기법 등에서는 전통 화법을 바탕으로 실경을 표현하려는 그의 실험적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또한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점경 인물도 특징적이다. 작은 크기로 묘사된 인물들은 단순한 장식 요소가 아니라 화면에 서사를 부여하고 현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단발령망금강산’과 ‘백천교’에서는 도포와 갓을 착용한 선비들이 절경을 감상하는 모습과 함께 여행한 마부와 승려의 대조적인 모습이 당시 유람의 분위기를 전한다. ‘옹천’에서는 파도가 부딪치는 절벽길을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사람과 나귀의 모습이 보는 이까지 아찔하게 한다. 이러한 점경 인물은 풍경 속에 풍속적 요소를 더하며 실제 여정에 동참하는 듯한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정선은 이후 평생 동안 수차례 금강산을 방문하고 여러 폭의 금강산 그림을 남겼다. 그의 금강산 그림은 여러 문사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화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평생 금강산을 화폭에 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실험했기에 말년에 ‘금강전도’ 같은 혁신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신묘년풍악도첩>은 진경산수라는 정선의 예술 세계가 형성되는 기념비적 초년작이다.

김승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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