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폐허와 진보 사이에서
대안적 민주주의 꿈꿀 좌익의 빈자리 아쉬워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
우리 주변은 폐허로 가득하다. 폐쇄된 상점, 버려진 공장, 혹은 텅 빈 광산촌 등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고고학적 유적’들이 현대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죽어버린 것, 사라진 것들을 쉽사리 떠나보내지 않고 마음속에 묻어두는 것은 이제 우리의 관습이 되었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와 이별을 고하면서 우리는 사적이고 감상적인 위안의 세계에서 보상을 구한다. 주변의 네온사인이 화려해질수록 우리는 더 우울해진다. 이러한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8세기 말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망명자 신세로 전락한 프랑스 외교관 출신 작가 샤토브리앙은 ‘무덤 너머의 비망록’에서 자기 시대의 역사를 불가항력적인 박탈의 과정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신대륙의 ‘인디언’과 동일시했었다. 19세기 서구의 문학과 미술 작품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폐허의 모티프는 우수에 젖은 18세기식 폐허와는 달리 전혀 회복될 기미가 없어 비참한, 그야말로 ‘폐허의 폐허’였다.
지금 우리는 샤토브리앙이 탄식하던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시대에 살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대접 못 받던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 존중받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태껏 접해보지 못한 온갖 혐오가 판치고 있다. 혐오와 인권은 언뜻 정반대로 보이지만, 실은 공통의 여건에서 비롯되었다. 자본주의라는 유일신의 통치 아래 미래는 오직 극소수의 ‘승자’들에게만 활짝 열려 있다. 일론 머스크나 피터 틸 같은 신종 엘리트들의 부와 권력은 옛 중국 황제가 시샘할 정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미래의 희망마저 소수에게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세계를 떠도는 극우 세력의 망령은 전례 없는 허무주의의 산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대책 없는 세계에서 다행히도 대한민국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국제적으로 소위 개발도상국 내지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진작에 치워졌는데도 대한민국만큼은 그 사다리를 용케 올라탔다. 이것은 세계사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정작 나라 안에서는 계층적 사다리가 거두어지고 있다. 굳이 법조계나 경제계 카르텔을 논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는 귀족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렇기에 현 이재명 정부의 실험은 의미심장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환생한 전태일이 대통령이 되어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있다.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서구 세계가 창출한 소위 ‘근대문명’의 마지막 등불이 한반도로 옮겨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좌익 세력은 대체 무얼 하고 있나. 프랑스혁명기 이래 자리 잡은 ‘좌익’이란 용어는 사회가 인정하는 ‘올바른(오른편)’ 가치에 저항하는 세력을 일컫는다. 현 정부의 성장주의 노선은 합리적이지만, 이를 추종한다면 더 이상 좌익일 수 없다. 향후 공정하게 ‘룰’을 지키며 무한 성장하겠다는 ‘착한(?)’ 재벌 밑에서 마냥 입을 벌리고 서 있으려는가. 전 세계적으로도 현재의 좌파는 과거의 폐허 속에 주저앉은 채 우울증에 빠진 듯하다. 예컨대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정치 문화를 잠식한 서구에서는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가 실패한 혁명에 대한 성찰을 대체했다. 유토피아는 그저 옛 시절 추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좌파에게는 분명 대체 불가능한 소명이 있다. 소수에게 편중된 희망을 모두에게로 확장시킬 과업 말이다.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 스베틀라나 보임이 소련 시대의 반체제 운동을 떠올리며 말했던 ‘노스탤지어의 미래’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실현되지 못한 과거의 희망을 감정적으로 소비하기보다 미래를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고자 했다. 이제 우리 사회의 좌익 세력도 그간의 무궁무진한 경험과 희망을 갖가지 고정관념으로부터 구해내 무기력한 현재를 타개할 미래상으로 제시할 때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분단과 냉전이 남긴 유산, 즉 극우파의 ‘반동적’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뒤집은 ‘진보’의 허상을 과감히 떨쳐낼 필요가 있다.

그간 소위 ‘진보’ 세력이 추구해 온 사회정의는 실은 사회적 통념에 기초해 있기에, 이를 실현할 주역은 오히려 ‘건강한’ 보수 세력이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세상에는 정의 구현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경제 성장 및 국가에 대한 충성을 거부할 자유, 직업적 능력이 없어도, 공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해도, 돈 없거나 못생겨도, 독신자나 싱글맘도, 성소수자도, 심지어 국적 없는 사람도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풍조, 인공지능보다 동물과 자연, 더 나아가 세상 만물의 역량에 미래를 거는 사고, 국민의 기본권보다 이주민과 난민의 인권을 우선시하고 다수결의 폭정에 맞서 대안적 민주주의를 꿈꿀 권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오래된 이상이다. 이러한 대안적 가치들을 사회에 뿌리내리는 데 헌신할 좌익 세력의 빈자리가 오늘날 더욱 아쉽게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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