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원청에 ‘산업안전’ 요구…노동부 “임금도 교섭의제 될 수 있어”

“제철소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동안전과 작업환경 개선 등을 의제로 교섭하고 싶다.”
경북 포항에서 포스코 하청노동자로 제강공장 지원업무를 18년째 하고 있는 이수출 유일(협력업체) 노조 위원장은 11일 “원청과 한 테이블에 앉아 교섭할 기회가 생겨 기대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 10일 시행된 뒤 이틀 동안 원청 사업주 7곳이 하청노조와 교섭에 응할 뜻을 밝히면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노란봉투법은 원청사업주가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경우 그 범위에서 사용자라고 판단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과한다.
이수출 위원장이 일하는 포스코를 포함해 한화오션,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씨엘에스), 경기 화성시, 부산교통공사, 대방건설, 일신건영 등 7곳이 하청노조와 교섭을 하기 위해 법적 절차에 따라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이들 기업·기관과 해당 노조의 말을 종합하면, 주로 산업안전·작업환경 개선이 교섭 의제로 올라왔다.
유일 노조를 비롯해 포스코 포항·광양제철소 하청업체 노조 33곳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노총 금속노련은 노동안전·작업환경 개선과 복리후생시설 등을 교섭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이 위원장은 “제철소에서 위험한 업무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들이 담당하지만 작업환경 개선 권한은 원청에 있어 하청노조의 요구가 반영되지 못했다”며 “교섭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산업안전보건기구 구성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도 한화오션에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참여 등을 논의하자고 요구할 계획이다.
경기 화성시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처리 민간위탁업체 노동자들이 가입돼 있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는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청소차량·인력·휴게시설 확충과 주 5일제 시행 등을 교섭 의제로 통보했다. 경기지역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안전 문제로 청소차량 뒤에 붙어 있는 발판을 제거한 뒤 노동자들이 더 많이 걷고 작업 속도도 느려지고 있다”며 “화성시(원청)와 청소차량 확충, 인력증원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화성시의 과업지시서상 토요일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시에 주 5일제 시행을 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청노조들은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은 ‘산업안전’을 중심으로 교섭을 요구하면서도, 노사 협의를 통해 다른 의제로 교섭 범위를 확대할 생각이다. 노조법 해석지침과 교섭절차 매뉴얼에는 하청노조가 요구하는 의제 중 일부라도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면 사용자성이 인정돼 일단 교섭을 해야 한다. 교섭 의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했다.
이런 이유로 교섭이 시작되면 교섭 범위를 놓고 원청·하청의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부산교통공사 관계자는 “산업안전이나 작업환경 개선에 대해선 교섭할 예정이지만, 다른 의제는 사용자성이 인정되는지 법적 판단을 받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미화·콜센터 업무를 담당하는 자회사(하청) 노조(부산지하철노조 운영서비스지부)는 샤워실·대기실 환경 개선과 작업 중 안전대책 강화, 작업 현실에 기초한 인력 설계 등을 공사에 요구할 계획이다.
임금이 교섭 의제가 될 수 있을지도 쟁점이다. 경영계는 ‘무리한 요구’라고 지적하지만, 노동부는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임금 수준 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사용자성이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사안에 따라 교섭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교섭 범위와 관련해 전문가로 구성된 ‘단체교섭 판단지원 위원회’가 의제별로 사용자성이 인정되는지 신속히 판단을 내려 이를 바탕으로 노사가 합의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한편 노동부는 노란봉투법이 처음 시행된 전날 저녁 8시 기준 221개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407개 하청노조(조합원 8만1600명)에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상급단체별로 보면 민주노총이 357곳(87.7%)를 차지하고 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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