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압감을 ‘도파민’으로… 달라진 야구대표팀의 생존 방식

심진용 기자 2026. 3. 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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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대표팀 주장 이정후가 지난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C조 조별리그 호주전에서 극적인 승리로 대회 8강 진출을 확정한 뒤 환호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바늘구멍 같던 경우의 수
극한 상황서 빛발한 집중력
젊은 대표팀 ‘할 수 있다’ 마법
결국 전세기 티켓 셀프체크인
최근 국제대회 잇단 부진 속
선배들 투지 비교, 태도불량 지적도
비장함 대신 성장 즐거움 느끼는
태극마크 세대교체 보는 즐거움

류지현 야구 대표팀 감독은 지난 9일 호주전을 마치고 “선수들이 상상도 못할 중압감을 안고 뛰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선수들은 부담이 컸을 호주전을 가장 잘 뛰었다. 홈런 포함 3안타 4타점을 기록한 문보경은 “부담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매 이닝, 한 타자 한 타자가 승부처였다. 투수는 공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던졌고, 타자들도 어떻게든 점수를 뽑으려 했다”고 말했다. 8회 1사 위기를 막고, 1.2이닝 투구로 끝낸 조병현은 “줄 수 있는 점수가 2점 뿐이었다. 홈런 2개면 끝인 점수다. 모든 투수가 다 집중해서 던졌다”고 말했다.

‘2실점 이하, 5점 차 이상 승리’라는 가혹한 조건이었지만, 선수들은 중압감에 짓눌리기 보다 오히려 집중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투수도 타자도 마찬가지였다.

대표팀은 앞서 조별 라운드 3경기에서 8홈런을 맞았다. 호주전을 앞두고 8강 ‘경우의 수’ 비관론이 컸던 것도 홈런에 대한 공포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뜨면 넘어갈 것 같은 도쿄돔에서, 줄줄이 힘좋은 타자들이 나오는 호주 타선을 홈런 없이 막아내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가 많았다.

그러나 대표팀 투수들은 호주전 단 1홈런만 내줬다. 홈런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바깥쪽으로 던져야 했지만, 그렇다고 바깥쪽 일변도로만 던져서 상대 노림수를 허용해서도 안됐다. 몰리는 공은 피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도망만 다니며 볼넷으로 주자를 쌓아갈 수도 없었다. 이중, 삼중의 제한 속에서 호주 타선을 1피홈런 2실점으로 묶은 것은 투수들의 집중력이 전에 없었던 수준이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대만전 투런 홈런을 맞았던 데인 더닝은 이틀 연속 마운드에 올랐다. 위기가 없지 않았지만 병살과 삼진으로 자기 역할을 해냈다. 주로 선발로 활약한 더닝이 불펜으로 이틀 연속 마운드에 오른 건 딱 2번이다. 2023년 월드시리즈, 그리고 이번 WBC다. 그만큼 호주전 각오가 뜨거웠다. 다른 투수들 모두 똑같았다.

야수들의 공수 집중력 역시 눈부셨다. 호주전에서 병살타만 세 차례 유도했다. 호주전에서의 대표팀 내야진은 ‘안정성’ 면에서 아주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유격수 김주원이 지난해 29실책, 3루수 김도영은 2024년 30실책을 했다. 지난해 최다실책 야수와 2024년 최다실책 야수가 내야 반쪽을 맡았다. 2루수 신민재와 1루수 노시환은 수비가 탄탄한 선수들이지만 WBC 들어서는 호주전이 첫 선발 출장이었다. 내야 전 포지션에 각각의 불안요소가 있었지만 호주전 대표팀 수비는 완벽에 가까웠다.

훨씬 더 유리한 조건으로 출발한 호주가 경기 막판으로 갈 수록 오히려 쫓겼다. 9회초 호주 유격수 제러드 데일이 치명적인 실책을 했다. 9회말 대표팀은 이정후의 기적 같은 슬라이딩 캐치로 마지막 위기를 막았다.

이정후는 “행운에 행운이 더해진 결과”라고 9회 수비를 설명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였기 때문에 몇 발짝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서 있었고, 공이 조명에 들어갔는데도 행운이 겹치면서 실수하지 않고 공을 잡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위기의 순간 더 빛난 집중력이 없었다면 그런 행운들 역시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중압감을 도파민으로’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부진을 거듭하며 앞선 세대와 비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선배들 같은 투지, 집중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 태도가 불량하다는 비난까지 있었다.

시대가 변했다. 지금 선수들과 앞선 세대 선수들은 같지 않다. 과거 같은 비장함은 없다. 벼랑끝까지 몰렸던 대만전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김도영은 ‘대회는 즐기고 있느냐’는 미국 MLB닷컴 기자의 질문에 “경기를 하면서 즐거움을 많이 느끼고 있다. 점점 감각이 올라오는 것도 느껴 행복해하고 있다. 한 경기, 한 경기가 정말 재미있고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전과 다른 방식으로 임하면서도,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해 최고의 결과까지 가져왔다. 첫 타석 홈런을 친 문보경이 그랬듯 이날 호주전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할 수 있다”였다.

논란 많은 WBC 타이브레이커룰에서 전 국민이 ‘9이닝 세이브’ 경기를 공 하나하나마다 가슴 졸이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공 하나하나에 도파민이 터져 나왔다. 극한의 집중력 속에 최고의 플레이를 펼친 대표팀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국제전의 매력 혹은 마성이었다.

마이애미 |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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