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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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예전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시절, 강사 선생님들끼리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을 가지고 이 뜻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두고 투표를 한 적이 있다.
속담의 '장날'을 '시장(市場) 서는 날'이 아닌 '장례(葬禮)를 치르는 날'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속담 해석의 백미는 역시 한국어 선생님답게, 사전에는 '가는 날이 장날'까지만 실려 있지만 우리가 이 말을 보통 '이라더니'로 끝내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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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예전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시절, 강사 선생님들끼리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을 가지고 이 뜻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두고 투표를 한 적이 있다. 교재에 쓰인 예문이 영 마음에 안 들고 어색하다며 문제를 제기한 선생님 덕분에 다들 모여 수군수군 한두 마디씩 거들다가, 나중엔 손을 들어 투표까지 한 것이다. 놀랍게도 선생님들은 제각각 이 속담을 서로 일치되지 않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속담을 나름의 상상력으로 스토리텔링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뜻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왔다. 읍내를 갔는데 마침 장이 선 날이라 풍성하고 흥겹고 먹을거리도 많은 기분 좋은 상황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본 책에서든 들은 이야기가 영향을 미쳤으리라. 반대로 어떤 선생님은 모처럼 친구 집에 갔는데 마침 장이 선 날이라 친구가 장터에 가서 없는 상황을 떠올리며, 부정적인 뜻이라 하셨다. 속담의 '장날'을 '시장(市場) 서는 날'이 아닌 '장례(葬禮)를 치르는 날'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날 속담 해석의 백미는 역시 한국어 선생님답게, 사전에는 '가는 날이 장날'까지만 실려 있지만 우리가 이 말을 보통 '이라더니'로 끝내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러니까 '-더니'라는 끝맺음으로 미루어 보면 분명 '갔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안 좋은 방향'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재밌지만 예리하다.
속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고사성어와 같이 역사적 유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해석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속담이 사전에 처음 실린 것이 1938년인데, 그때는 '①우연히 갔다가 의외의 재미를 보았을 때'와 '②형편에 따라 그 반대되는 경우', 이렇게 긍정 뜻을 먼저 세우고 부정 의미를 이어 적어 두었다. 최근 사전들은 '뜻하지 않은 일을 공교롭게 당함' 정도로 새겨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합쳐 둔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건 사람들의 사용 용례이다. 신문이나 보도와 같은 예문에 쓰인 '가는 날이 장날'은 과거에는 긍정적인 뜻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부정적인 뜻이 좀 더 많은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무엇보다 현대인에게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인 '장날'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여, 이 말뜻이 그저 희미하게 대충 받아들여진다. 수업 시간에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를 이야기하다가 학생들이 '낫'이 무엇인지 몰라서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으니 말이다.

강남욱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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