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 든 할머니’ 조각가 “105살까지 하면 ‘딱 봐도 김윤신’ 될 수 있어”

박동미 기자 2026. 3. 1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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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서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아르헨서 40여년 작업 몰두

최신작까지 170여점 한자리

11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윤신(가운데) 작가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김성원(왼쪽) 부관장과 태현선(오른쪽) 수석학예연구원. 박동미 기자

“105살까지 살고 싶어. 그때는 누가 봐도 ‘이거 김윤신이야’ 하는 작품이 나올 거 같어. 그때까지 하면 나올 거 같어….”

11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1층 전시관 대형 스크린 속에서 여성은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바람을 밝힌다. 이 미술관 최초 한국 여성 작가 회고전의 주인공, 조각가 김윤신(91)이다. 영상은 임선애 영화감독이 촬영한 ‘김윤신 다큐멘터리’. “1935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입니다”라고 차분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부터, 방학도 없이 학교에 나와 작업하던 홍대 시절, 파리 유학 당시의 사진, 그리고 겨울날 차가운 눈을 먹는 새들을 가여워 하는 다정한 일상까지, 수많은 ‘김윤신’을 담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깊은 건 전기톱을 번쩍 들고, 입을 꾹 다물고, 가뿐하게 나무를 자르는 ‘조각가 김윤신’이다.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84-11. 158 × 63 × 55 cm, 개인 소장. © Kim Yun Shin·호암미술관 제공

오는 17일 개막하는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앞두고 이날 국내 취재진과 만난 김 작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면서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한 일이다. 나무가 나를 오늘 여기까지 데려와 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호암미술관 김윤신 회고전의 2층 전시 전경. 조각과 회화가 하나가 된 듯, 혹은 하나에서 둘이 된듯, 두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 눈길을 끈다. 박동미 기자

김 작가는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나무 조각에 몰두했다. 먼 타국에서 40여년 오직 깎고, 긁고, 두들기고 매만지는 삶을 살았다. 전쟁으로 허허벌판이 된 조국에선 접하지 못했던, 크고 무성하고 내내 푸른 나무와, 형형색색 아름다운 원석들이 예술적 영감이자 원천이 돼 줬다. 한국 조각 1세대로 독자적인 작업을 꿋꿋하게 이어왔지만, 대중적으로는 비교적 덜 알려졌던 작가는 지난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작가로 선정되면서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생겨난 별명은 ‘전기톱을 든 할머니’.

한국 조각 1세대로 호암미술관에서 국내 여성 작가 최초로 회고전을 여는 김윤신 작가. 호암미술관 제공

이번 회고전에서는 1960년대 파리 유학 시절 판화부터 실험적인 평면 작업, 나무 조각, 60대 이후 몰입한 다채로운 회화까지 17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대표작이자 전시 제목이기도 한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 연작을 중심으로, 김 작가의 예술 세계 전반을 조망한다. ‘합(合)’과 ‘분(分)’은 작가가 평생 작업의 근간으로 삼아온 조형 이념이다.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되어(合)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가 탄생(分)한다는 의미다. 그는 줄곧 “내가 나무고 나무가 나다”라고 말해왔는데, 이날도 “내 영혼과 육신이 작업하는 마음으로 하나 돼 집중하면서 작업한다”고 강조했다.

조각가 김윤신의 회고전이 열리는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2층 전시장 전경. 호암미술관 제공

전시에서는 김 작가의 아르헨티나 체류 초기 작품인 ‘1984-11’을 비롯해, 멕시코 채석장에 장기간 머물며 제작한 돌 조각 ‘1989-211’, 나무를 위로 쌓는 대신 가로가 길게 만든 수평 작품 ‘1994-520’ 등 김윤신 조각 세계의 서막부터 나무 아닌 돌 조각에의 시도, 기독교 신앙과 한국 전통문화를 버무린 복합적 표현까지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전기톱 할머니’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아르헨티나의 나무가 한국의 수종과 달리 너무 크고 단단했기 때문”이라고. 전기톱의 날카롭고 큰 소음에도 아르헨티나의 이웃들은 화를 내지 않았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대신, 그가 마당이나 행길에서 작업할 때마다 나와, 큰 톱으로 나무를 써는 동양 여성을 흥미롭게 바라봤다고 한다.

11일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간담회에서 김윤신 조각가에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동미 기자
노래하는 나무 2013-16V1, 2025. 알루미늄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작품은 미술관 2층 전시장과 전시장 사이 휴식 공간에서 선보인다. 135 × 202 × 56 cm, 김윤신조형예술연구소 소장, 파주 © Kim Yun Shin·호암미술관 제공

작가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엔 새로운 유형의 작업을 선보인다. 외부 활동 제한으로 재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워, 집 주변 건축 폐자재 등을 활용한 ‘2020-45’가 대표적이다. 이 시기 작품은 추상화를 입체적으로 구성한 듯한 조각적 회화, 혹은 회화적 조각의 형태를 이룬다. “어린시절 나무에 그림을 그리고 장난을 많이 쳤어요. 그 마음으로 나무에 그리기 시작했죠. 일종의 ‘회화 조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호암미술관 김윤신 회고전의 1층 전경. 호암미술관 제공

2층 두 개의 전시장 사이, 통창으로 바깥 풍경이 들어오는 복도에는 ‘노래하는 나무 2013-16V1’가 있다. 2013년 제작한 ‘2013-16’을 금속으로 캐스팅한 뒤 그 위에 강렬한 색을 칠하고, 특유의 추상적인 형태를 자유롭게 그린 작품이다. 안데스산맥의 웅장한 생명력을 담아낸 이 조각은, 미술관 호수 건너편 향수산과 마주하고 있다. 이때, 그의 말대로 조각은 온전히, 오롯이 그였다. 이미 완성됐으나, 105세가 돼야 원하는 바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여전히 순수한 열망과 집념으로 가득 찬 90세 조각가 김윤신 말이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입장료는 2만5000원.

박동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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