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권 전복하라” 이란 경찰 “시위대는 적, 살상”···폭격과 탄압 사이에 낀 이란인
이란 정권, 모즈타바 후계자 선출 후 통제 강화
이란 경찰 “시위대 적으로 간주하고 대응”
석유저장고 폭격으로 대기오염·산성비 피해 우려
밤새 계속된 공습으로 “지옥 같았다”
민간인 사망 1300명 넘고 민간 시설 1만 곳 파괴
신정체제 종식 희망 점점 절망으로

“정부를 접수하라.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다. 자유의 시간이 다가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공격 시작을 알리며 이란 국민을 향해 말했다.
미·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12일째 접어들고 있지만 이란 국민에게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 거리가 멀어 보인다. 37년 동안 이란을 철권 통치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사망했지만, 강경 정책을 물려받은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후계자로 선출됐다. 미·이스라엘의 폭격이 멈추지 않고 테헤란의 대기는 불탄 석유가 뿜어낸 검은 연기와 독성 물질로 가득 찼다. 전쟁 발발 이후 이란에서 1300명 이상이 숨지며 인명 피해도 커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0일 “이란 모든 구성원이 독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이란을 건설해야 할 때가 왔다”며 거듭 이란인들을 향해 반정부 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정작 이란인들은 미국·이스라엘의 대규모 폭격과 내부 단속을 강화하는 정권의 통제 사이에 낀 채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차기 최고지도자로 모즈타바가 선출된 이후, 이란 당국은 반정부 시위를 사전 차단하기 위해 통제의 고삐를 죄고 있다. 아흐마드 레자 라단 이란 경찰청장은 10일 이란 국영TV를 통해 “누구든 적의 의도에 부합하는 행동을 한다면 그를 단순한 시위대로 보지 않을 것”이라며 “적으로 간주하고 적을 상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모든 병력은 방아쇠에 손을 얹고 혁명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미·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란 전역의 군사·정보·경찰 시설이 초토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치안을 책임지는 세력이 붕괴됐다는 뚜렷한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의 준군사 조직 바시지 민병대원들이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검문소가 늘어났고, 정부는 시민들에게 “안보를 교란하는 어떠한 움직임도 적과의 직접적 협력으로 간주하고 혁명수비대 정보기관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위협 문자를 보내고 있다.
미·이스라엘 공격으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가 사망하자 아파트 발코니에서 환호성을 질렀던 한 주민은 보안 당국이 추가적 소요가 발생할 경우 보안 당국이 아파트를 급습할 것이라고 관리사무소에 경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란의 정치경제학자 모하마드 말주는 소셜미디어에 “권위주의에 지쳐 있던 사회가 갑자기 외부에서 타오른 불길 한가운데에 놓이게 됐다”며 “전쟁은 개혁의 문도, 해방의 지평도 열어주지 않는다”고 썼다. 지난해 6월 미·이스라엘과의 ‘12일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난 1월 반정부 시위에 대한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7000명이 넘게 사망하는 트라우마를 겪은 이란인들은 다시 전쟁의 포화에 시달리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가장 격렬한 공습”을 경고한 10일 테헤란 주민들은 밤새 폭격에 시달렸다. 한 주민은 “지옥 같았다”며 이날 밤 미·이스라엘의 공습이 개전 후 가장 심각했다고 전했다. 테헤란의 20대 남성은 “미사일이 매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지난 7~8일 테헤란 석유저장소를 폭격해 검은 연기가 대기를 가득 채우면서 테헤란에서는 강한 산성 성분의 ‘검은 비’가 내렸다. 주민들은 “최루탄이 공기 중에 퍼진 것 같다” “지옥으로 가기 전 마지막 정거장”이라고 현 상황을 묘사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검은 비’가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수 있으며, 산성비가 피부 화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전쟁 역사상 이렇게 민간인 희생을 피하려고 시도한 국가는 없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이란에서는 민간인 사망과 민간 시설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 아미르 사에이드 이리바니 주유엔 이란 대사는 전쟁 발발 이후 13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 학교 및 교육기관 65곳과 주택 8000채를 포함해 민간 시설 약 1만 곳이 파괴됐다고 밝혔다.
미·이스라엘의 표적 공습으로 하메네이가 사망한 후 신정체제 종식을 희망하는 이란인도 있지만, 지속되는 전쟁에 절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테헤란의 20대 여성은 “지금 당장 몇 주가 걸리더라도 평생 이런 체제 아래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으며 30대 남성은 “정권만 물러나면 이런 상황을 참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1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 총에 눈을 맞아 부상당한 20대 남성은 “우리가 희생자다. 이슬람공화국 때문에 피해를 입었고, 그 때문에 지금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전쟁은 우리에게 또 해를 끼치고 있다”고 BBC에 말했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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