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산업계, 원청 교섭 요구 ‘봇물’

박철중 기자 2026. 3. 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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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지난 10일 서울 세종로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등이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난 10일 전국의 주요 산업 현장에서는 하청 노동조합의 원청 상대 교섭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하청 노동자에 대해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한 법 개정 취지에 따라, 그간 협상 테이블에서 소외됐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일제히 ‘진짜 사장’을 호출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원청 기업들은 섣불리 교섭 요구를 받아들이기 보다, 법 해석에 대한 자문 등을 기다리며 물밑 대응에 나섰다. 재계는 글로벌 불확실성 속 기업 경영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명확한 해석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11일 재계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 시행 첫날에만 하청노조 407곳이 원청 221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자동차, 조선, 철강 등 대규모 제조 사업장이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와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는 법 시행 당일 각각 원청에 단체교섭 요구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임금 인상과 성과급 지급, 정규직 전환 등 핵심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주체가 실질적으로 원청임을 강조하며 법적 의무 이행을 촉구했다. 

거제 지역 한화오션 하청노조와 부평 한국GM 비정규직지회 역시 고용 안정과 안전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가세했다. 특히 한화오션은 이날 업계 최초로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 사실을 공식 공고하며 “법령에 따라 성실히 교섭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교섭 요구는 전통 제조업을 넘어 IT 플랫폼과 유통, 공공 분야까지 전방위 확산하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IT 업계 노조는 플랫폼 기업 집단의 통합 교섭 구조 구축을 주장했다.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모회사가 예산과 인사 정책을 지배하면서도 법적 책임은 회피해온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통업계에서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사실상 수용하며 관련 사실을 공고했다. 포스코 역시 한국노총 산하 하청사 노조들의 대리 교섭 요구에 대해 공고를 진행했으나, “실질적 지배력 범위에 대해 추후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공공 부문과 교육계의 압박도 거셌다. 한국공공사회산업노조는 서울시와 한국철도공사,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해 신촌세브란스병원, 고려대 등 30여개 기관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경기신용보증재단 노조는 예산 승인과 정원 관리권을 가진 경기도가 실질적 사용자라며 지자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공식 요구하는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대학가 청소·경비 노동자들과 인천공항 자회사 노동자들 역시 각각 원청인 대학 총장과 공항공사가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투쟁을 선포했다.

이런 가운데 재계는 산업 현장의 혼란과 법적 분쟁 폭증을 우려하며 보완 입법을 촉구했다. 경총 관계자는 “사용자성 인정 범위 외 무리한 요구를 내세우거나 이를 관철하기 위한 불법행위는 자제하고, 교섭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며 “해석지침이나 매뉴얼에서 벗어난 요구는 분쟁만 지속할 뿐이다”고 우려했다.

재계 관계자는 “미-이란 전쟁, 관세 리스크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개정 노조법 시행은 법적 분쟁과 산업 현장의 부담을 가중시켜 기업 경영을 한계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의 무분별한 확대로 인해 제조업·건설업 등 원·하청 구조 사업장의 교섭 부담이 급증하고, 이는 노사 간 끝없는 법적 분쟁과 비용 낭비로 이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현실은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된다. 법 시행 이후 현장의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한 명확한 보완 입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철중 기자 cjpark@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