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이 거절한 뇌출혈 환자, 2차 병원이 살렸다… 응급실 뺑뺑이의 '버팀목'

변태섭 2026. 3. 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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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제생병원 응급실, 연간 4만 명 진료
전국 평균 2배… 용인‧이천 등에서 '원정'
"치료 가능한 환자는 수용하는 게 원칙"
기준 인원 넘는 응급실 인력 모여 시너지
"같은 진료에 3차보다 낮은 수가 해결을"
5일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 재활치료실에서 뇌출혈로 입원한 이규태(왼쪽)씨가 감각입력치료를 받고 있다. 변태섭 기자

“아직도 왼쪽 손과 발의 감각이 다 돌아오진 않았어요. 그래도 천만다행입니다. 어디에서도 절 받아주지 않아서 구급차 타고 이곳저곳 헤맸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5일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 재활치료실. 이규태(61)씨가 누런 콩들이 들어 있는 상자 속에 왼손을 넣은 채 ‘감각입력치료(콩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콩 마사지는 촉각과 관절 감각을 자극해 기능 회복을 돕는 재활치료법이다. 안창욱 작업치료사는 “처음에는 (이씨의 손) 감각이 정상의 6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1월 26일 밤, 귀가하기 위해 성남 인근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던 그는 갑자기 왼손과 왼쪽 다리에 이상을 느꼈다. 촉각이 확 둔해졌고, 코를 만지려 해도 손이 입으로 향할 만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직감한 그는 급히 도로 한쪽에 차를 세웠다.

행인의 도움으로 구급차에 올랐지만, 병원을 찾는 일이 문제였다. 인근 대학병원 2곳 모두 병상 부족을 이유로 수용을 거절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2차 의료기관인 분당제생병원이 이씨를 받아줬다. 그는 “이송이 더 늦어졌다면 마비가 왔거나 더 안 좋은 상황에 처했을지 모른다. 빠르게 치료받을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뇌출혈이었다. 뇌혈관이 터지고 뇌 안에 피가 고여 2시간 안에 핵심 치료를 받지 않으면 치명적인 후유증을 앓거나 사망할 수 있다. 구급차에 오른 뒤 응급실에 도착하기까지 이씨는 약 30분이 걸렸다.

응급실 수용 현황 비교. 이지원 기자

전원 환자 수용 분담률 145%... 지역 평균 82%

정부가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응급환자 수용 병원을 지정하는 시범사업까지 추진하는 가운데, 자체적으로 응급 환자를 적극 받으며 지역 응급의료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2차 종합병원이 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분당제생병원이다.

분당제생병원 응급의료센터의 연평균 환자 수는 4만 명 안팎으로, 전국 지역응급의료센터 평균(2만~2만5,000명)보다 약 두 배나 많다. 119 구급대가 이송하거나 다른 병원에서 보낸 응급 환자를 해당 병원이 얼마나 수용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전원 환자 수용 분담률'(지난해 2분기 기준 145.6%) 역시 지역응급의료센터 평균(82.1%)을 크게 웃돈다. 병원 규모에 따른 수용 인원보다 45% 더 많이 받은 것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있는 '24시간 뇌졸중센터'에서 의료진이 환자들을 살피고 있다. 분당제생병원 제공

김영식 분당제생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우리가 치료할 수 있는 환자라면 이송 문의가 올 때 수용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며 “용인과 이천, 광주 등 경기 남부에서 응급실을 찾지 못한 환자들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24시간 뇌졸중센터 등을 갖춘 이 응급의료센터에선 응급의학과 전문의 10명과 전공의 8명, 간호사 39명, 응급실 전담 방사선사 9명 등 의료진 70여 명이 환자를 돌본다. 의사 4명(응급실 전담 전문의 2명 포함), 간호사 10명을 요구하는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 기준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그렇다고 응급실 의료진에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응급실은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파다하지만, 이곳은 1998년 개원 때부터 응급실 운영을 최우선으로 뒀기에 응급 환자에 대해선 수익과 연결 짓지 않는 공감대가 내부에 정착됐다는 병원 설명이다. 응급실 의료진이 늘면 서로 도와 시너지를 내는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생긴다는 것이다.


2차-3차 병원 수가 차이 10~50% '비대칭'

의료 현장에선 향후 지역 내 응급실과 2차 의료기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2차 의료기관이자 국내 유일 심장전문병원인 부천세종병원을 운영하는 혜원의료재단의 박진식 이사장은 “급격한 고령화로 응급 환자와 복합질환자가 늘고 있고, 거주지 인근에서 치료받으려는 수요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국내 의료전달체계에서 2차 의료기관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현재 의료기관은 경증‧다빈도 질환을 담당하는 1차, 중난이도 질환을 맡는 2차, 고난도 중증 환자를 살피는 3차로 구분돼 있다. 그러나 경증 환자조차 1차에서 3차로 직행하는 일이 빈번하다 보니, 허리 역할을 맡은 2차 병원은 경쟁력을 잃고 있다. 정부가 3차 의료기관 문턱을 높이고, 3년간 2조1,000억 원을 투입해 2차 의료기관의 진료 역량을 높이겠다고 나선 건 이런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크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8월 발표한 ‘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상급종합병원(3차)의 경증 질환 비중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며 “역량 있는 2차 의료기관에 대한 충분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20~2024년 상급종합병원의 연평균 외래급여비 증가율은 7.8%다. 박 이사장은 “병상당 정부 지원 규모로 비교했을 때 3차 의료기관이 2차의 약 10배”라며 “같은 수술을 해도 2차와 3차 의료기관 수가가 10~50% 차이 나는 비대칭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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