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퇴행’이라는 말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유아퇴행이라는 말은 원래 어린이가 스트레스나 불안, 환경 변화에 직면했을 때 발달 단계상 이전의 행동을 보이는 방어기제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보호자의 관심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어왔다.
‘유아퇴행’이라는 표현이 여성 아이돌을 향할 때
하지만 최근 이 말은 전혀 다른 대상을 향하고 있다. 어린이가 아니라, 여성 아이돌을 설명하는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아이돌의 행동이 과하다고 느껴질 때, 혹은 시청자의 기준에서 ‘적당함’을 벗어났다고 판단될 때 ‘유아퇴행’이라는 표현은 쉽게 호출된다.
실제로 한 매체는 그룹 에스파의 멤버 윈터가 방송에서 담력체험 도중 귀신을 보고 오열한 장면을 두고 ‘유아퇴행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 내용에는 “귀엽다”는 반응과 함께 “유아퇴행 같아 보기 불편하다”는 누리꾼들의 평가가 병치되어 있다.
문제는 이 장면이 왜 ‘놀랐다’거나 ‘무서워했다’가 아니라, 굳이 ‘퇴행’으로 명명되는가에 있다. 담력체험이라는 상황 자체가 공포를 전제로 설계된 예능 장치임에도, 그 공포에 대한 반응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성숙함의 기준으로 재단된다. 울음은 허용될 수 있지만, 그 울음이 ‘적당한 선’을 넘는 순간 곧바로 미성숙의 증거가 된다. 그리고 그 미성숙함은 ‘퇴행’이라는 이름으로 진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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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아이돌의 감정 표현이나 행동에 ‘유아퇴행’이라는 병리적 표현을 붙이는 것, 더 깊이 사유해볼 필요가 있다. (자료 이미지 | ChatGPT 생성) |
여성 아이돌은 늘 모순적인 요구를 받는다. 귀여워야 하지만 너무 유아적이어서는 안 되고, 감정을 드러낼 수는 있지만 통제되지 않은 감정은 불편함을 줄 수 있으니 절제해야 한다. 보호받는 존재로 소비되기를 요구받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는 성숙함을 증명해야 한다. 이 모순된 요구를 어기는 순간, 곧바로 ‘과하다’, ‘불편하다’, ‘이상하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또 다른 매체의 기사에서는 그룹 르세라핌의 홍은채를 두고 “‘은채아기’, 평생 아기일 줄 알았는데… 입술 깨물고 ‘으른미’ 발산”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문장은 한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설명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아기’라는 호명을 얼마나 오래 유지해왔는지를 드러낸다.
홍은채는 자주 ‘유아퇴행’이라는 평가를 받는 여성 아이돌 중 한 명이다. 그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기’로 불리며 소비된다. 귀여움이 오래 유지되기를 요구받고,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순간에는 변화 자체가 하나의 사건처럼 다뤄진다. 성장조차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이전 이미지와의 대비’로 설명되는 것이다. 이때 성숙은 당연한 흐름이 아니라, 대중의 허락받아야 하는 선택처럼 취급된다.
한편 최근에는 ‘아기라이팅’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아기라이팅은 ‘아기’와 ‘가스라이팅’이 결합된 표현으로, 성인인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반복적으로 ‘아기’라고 호명하며 실제보다 더 미성숙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행위를 뜻한다. 이 표현은 팬덤 문화의 애정 어린 은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대상에게 특정 이미지를 고정시키고, 그 이미지를 벗어나는 선택을 할 때 오히려 낯설거나 문제적인 변화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보호’의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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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공연장 사진. 여성 아이돌의 감정 표현은 그저 하나의 상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과잉’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이 ‘미성숙함’으로 환원된다. (필자 제공 사진) |
‘미성숙한’, ‘감정 과잉의’, ‘보호해야 할’, ‘문제적인’…
이 표현들이 문제적인 이유는, ‘유아퇴행’이라는 말이 단순히 특정 행동을 묘사하는 데서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퇴행은 설명의 언어라기보다 판단의 언어에 가깝다. 이 말은 언제나 정상적인 성장 경로를 전제하고, 그 경로에서 벗어난 상태를 곧바로 설명과 교정의 대상으로 만든다.
어떤 감정과 행동은 그 자체로 이해될 수 없고, 반드시 원인과 진단을 요구받는다. 특히 그 대상이 여성일 때, 감정의 표현은 더 쉽게 ‘과잉’으로 해석되고, 그 과잉은 곧 미성숙의 증거로 환원된다. 여성의 감정은 그냥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관리 실패의 신호가 되곤 한다.
이 과정에서 ‘유아’라는 범주는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띤다. 유아적이라는 말은 곧 비이성적이고, 미완성된 상태를 뜻하며,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전제를 포함한다. 그 결과 어린이는 이해나 공감의 존재가 아니라,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위치 지워진다. ‘유아퇴행’이라는 표현은 여성에게는 ‘성인여성답지 못함’을, 어린이에게는 ‘존중받기 이전의 상태’라는 의미를 동시에 부여한다. 이 말이 여성혐오이면서 동시에 어린이혐오로 작동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정작 던져야 할 질문을 지운다. ‘왜 그 장면이 불편했는지’, ‘왜 여성의 감정 표현이 유독 과하게 느껴졌는지’, ‘왜 귀여움은 늘 조건부로만 허용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너무 빠르게 병리의 언어를 호출한다. 이해와 맥락을 살피려는 질문은 사라지고, 대신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선이 남는다. 그 선 바깥에 위치한 여성의 감정은 해명되어야 할 문제가 되고, 교정되어야 할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여성과 어린이 모두에게 너무 쉽게 “아직”, “과도한”, “문제적인” 존재라는 이름을 붙인다.
[필자 소개] 이은선. 고등학생 시기 학칙 개정과 학생인권조례 제정 활동을 하며 청소년 인권 운동을 만났다. 청소년이 학교와 사회에서 그저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부당한 순간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시민이 될 수 있기를 고민하며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폭력에 반대하며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는 청소년-시민입니다』, 『노키즈존 한국 사회』 등을 공저했고 청소년의 경험과 권리, 젠더화된 규범에 대해 글을 써왔다. 주변 존재들에 물들고, 물들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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