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속 살아 숨쉬는 연안부두, 세대를 잇는 인천의 노래 [알보달보 인천지역유산·(5)]

백효은 2026. 3. 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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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야구팬들의 응원가 ‘연안부두’
시민의 삶과 일상이 스민 공간의 의미 더해져
세대를 잇는 노래, 새로운 해석으로 이어져

인천 중구 연안부두 해양광장에 설치된 연안부두비. 2026.3.10/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
안개 속에 가물가물 정든 사람 손을 흔드네
저무는 연안부두 외로운 불빛 홀로선이 마음을 달래주는데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 연안부두(조운파 작사, 안치행 작곡, 김트리오 노래)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8회초가 끝난 인천 문학야구장. 홈팀 SSG랜더스의 공격을 앞두고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어 경기장에는 한 노래가 울려 퍼진다.

관중들은 휴대전화 라이트를 켜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불빛 사이로 관중석의 목소리는 하나로 모인다.

1979년 발표된 ‘연안부두’(조운파 작사·안치행 작곡·김트리오 노래)는 인천 중구 연안동에 위치한 인천항 연안부두를 배경으로 한 곡이다. 경쾌한 리듬 속에 어딘가 애잔한 정서가 묻어나는 이 노래는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덕분에 김트리오는 데뷔 음반을 발매한 지 3개월 만에 5만 장 이상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노래 ‘연안부두’와 야구의 인연은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 인천의 첫 프로야구단인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기 위해 이 곡이 쓰였다. 이후 여러 구단을 거쳐 지금의 SSG까지 응원가로 불린다. 프로야구뿐 아니라 프로배구, 프로농구 등 인천 프로 스포츠 구단에서도 응원가로 활용되면서 연안부두는 인천을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인천의 애국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발매한 지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 노래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공간’에 대한 공감에서 찾을 수 있다. 인천 시민들에게 연안부두는 과거의 추억이자 현재의 일상이 함께 담긴 공간이다.

연안부두는 백령도와 연평도 등 다양한 섬으로 향하는 통로로 설렘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고, 어선을 타고 주꾸미 등을 낚으며 바다의 손맛을 느꼈던 기억이 남은 곳이기도 하다. 또 누군가에게는 어선을 이끌고 생계를 이어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연안부두 인근에 자리 잡은 인천종합어시장에서는 갓 잡아 올린 수산물을 통해 인천 앞바다의 풍요로움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배와 사람이 오가는 이곳에서는 각자의 사연이 쌓이며 노래의 의미도 더욱 깊어진다.

인천 중구 연안부두 해양광장에 설치된 연안부두비. 2026.3.10/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 연안부두가 품고 있는 인천의 이야기

연안부두 해양광장에는 ‘연안부두 노래비’가 설치돼 있다. 해양광장 전망대에 오르면 연안부두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서쪽에는 월미산과 갑문, 영종도가 보이고 남서쪽에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인천대교가 펼쳐진다.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밴댕이회무침거리와 인천종합어시장, 인천남항이 자리 잡고 있다.

연안부두 해양광장 전망대에서 본 전경. 2026.3.10/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곡 원작자 조운파 선생은 충남 부여 출신이지만, 학창시절 인천에 살며 서울로 통학했다. 그 시절 연안부두의 기억을 토대로 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11월29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에는 원작자가 기억하는 연안부두의 모습이 소개돼 있다. 조운파 선생은 당시 1970년대 말 수출 중심 경제 성장 속에서 바다에 대한 관심이 ‘계산적 공간’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정감 있고 푸근한 바다’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연안부두는 1970년대 중반 중구 항동 일대 갯벌을 매립해 조성됐다. 교역량 증가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들이 크게 늘며 항만 시설 확장이 이뤄지던 시기였다.

제1단계 인천항 개발사업은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진행됐다. 1974년 인천항 제2선거가 건설되면서 내항은 폐쇄형 항만 구조를 갖추게 됐고, 내항을 드나들던 소형 연안 선박을 수용하기 위해 연안부두가 새롭게 조성됐다.

연안부두에는 남과 북에 각각 410m, 240m 길이의 방파제가 축조됐고, 해안 면적 약 33만㎡ 규모에 소형선박 약 300척을 수용할 수 있는 잔교와 물양장도 조성됐다. 내항에 있던 관용부두와 객선부두를 오가던 어선·객선·소형화물선들이 정박하기 시작했다.

인천종합어시장이 지금의 자리에 자리 잡은 것도 이 시기다. 이전까지 인천의 어시장은 중구 북성동 일대에서 크게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1981년 새로 매립된 연안부두에 연안부두어시장이 건립되면서 이곳으로 중심이 옮겨왔다. 이 인근에는 횟집들이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다. 인천의 대표 수산물인 꽃게를 비롯한 활어와 건어물 등을 취급하며 수도권 최대 수산물 시장으로 성장했다.

연안부두 하면 인천종합어시장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유년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연안부두로 낚시를 하러 다녔다는 윤국진(68·인천 중구)씨는 “연안부두가 조성된 이후에는 모든 고깃배들이 이곳으로 몰렸고, 어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며 “밴댕이회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현재도 매년 10월이면 인천종합어시장 일대에서 ‘연안부두 꽃게 축제’가 열린다. 신선한 꽃게를 구매하고, 꽃게 경매 등 다양한 체험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연안부두에 정박된 어선들. 2026.3.10/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현재 연안부두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는 여객선을 타는 사람들이 자주 찾고 있다. 연안여객터미널은 1995년 건립된 이후 서해 섬지역을 연결하는 여객 항로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연안여객터미널에서는 인천의 인근 섬을 왕래하는 15개 항로를 운영 중이다. 과거 육상교통이 발전하기 전인 1950~1960년대 인천에서는 충남 당진, 전남 목포, 경남 마산 등을 연결하는 항로도 운행됐다.

연안부두 해양광장에서는 인천 앞바다의 격동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기념물도 만날 수 있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영흥도와 무의도 일대 해상에서 일본 군함과 교전을 벌이다 항복 대신 스스로 침몰한 러시아의 군함 ‘바랴크호’를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2013년에는 방한한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이곳을 찾아 헌화하기도 했다.

연안부두는 시민들의 삶과 기억이 쌓인 공간이면서, 개항 이후 열강의 세력이 충돌하던 인천 앞바다의 역사도 함께 품고 있다.

■ 연안부두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최근에는 노래 ‘연안부두’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4년 인천콘서트챔버는 연안부두를 일본과 중국 민요, 미국의 재즈 스타일로 편곡하고, 각국의 언어로 다시 불러 엮은 앨범 ‘Reimagined: INCHEON’을 선보였다.

인천 콘서트 챔버의 음반 ‘Reimagined: INCHEON’ 커버. /인천 콘서트 챔버 제공


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는 “이 재해석 작업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 빛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고, 인천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취지에서 작업을 시작했다”며 “이 같은 취지를 원곡자인 조운파 선생께 설명해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리메이크 작업을 진행하는 배경에서는 원작자 조운파 선생의 ‘연안부두’에 대한 애정도 엿볼 수 있었다. 다른 도시에서도 이 노래의 활용을 요청했지만 ‘인천의 것’이라며 고사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승묵 대표는 “운치와 멋은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와 시민에 맞게끔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1970년대 김트리오의 ‘연안부두’가 있다면 2026년을 살아가는 시민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연안부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프로야구 인천 SSG 랜더스가 인천 랜더스필드에서 ‘랜필 썸머 페쓱티벌’ 행사를 열고 있다. /SSG 제공


세대가 거듭되며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정체성은 희미해질 수도 있다. 인천 연고 프로 스포츠 구단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며 함께 부르는 ‘연안부두’는 인천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매개체가 된다.

지난해 프로야구 관중이 1천20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2026시즌 개막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시즌에도 문학야구장에서는 수많은 관중이 ‘연안부두’를 함께 열창하며 인천이라는 도시의 기억을 나눌 것이다.

인천 중구 연안부두 해양광장에 설치된 연안부두비. 2026.3.10/김용국기자yong@kyeongin.com


/백효은 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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