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기사 투수의 마지막 투구…체코의 낭만야구, 도쿄돔 '기립박수'

이석무 2026. 3. 1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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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이 수십, 수백억 원에 달하는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에서 낮에는 전기기사로 일을 하는 '투잡 투수'가 큰 감동을 남겼다.

사토리아는 지난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C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일본전에 선발 등판해 4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역시 본업이 신경외과 의사인 파벨 하딤 체코 대표팀 감독은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투구에 나선 사토리아에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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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삼진 잡았던 체코 ‘직장인 투수’ 국대 은퇴 경기
도쿄돔 5만 관중 기립박수 속 4⅔이닝 무실점 역투
야구 변방국 체코, 4전 전패 속에서도 남긴 열정·투지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연봉이 수십, 수백억 원에 달하는 슈퍼스타들이 총출동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무대에서 낮에는 전기기사로 일을 하는 ‘투잡 투수’가 큰 감동을 남겼다. 주인공은 체코 대표팀 투수 온드레이 사토리아(29)다.

사토리아는 지난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C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일본전에 선발 등판해 4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눈부신 호투를 펼쳤다. 안타 6개를 내주긴 했지만 탈삼진 3개를 빼앗으며 일본 강타선을 실점없이 막았다.

체코 국가대표로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준 '전기기사 투수' 온드레이 사토리아. 사진=AFPBBNews
비록 체코는 경기 후반 대량 실점하며 0-9로 패했지만 사토리아의 호투 덕분에 8회초까지 우승후보 일본과 0-0으로 팽팽히 맞설 수 있었다. 사토리아가 마운드를 내려올 때 도쿄돔을 가득 메운 일본 관중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날 경기는 사토리아의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였다. 투구를 마친 뒤 더그아웃으로 향하자 체코 선수들은 포옹으로 그를 맞이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일본 관중들의 응원이 이어지자 다시 그라운드에 나와 관중들을 바라보며 작별 인사를 하기도 했다.

사토리아는 이미 일본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2023년 WBC 일본전에서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 세계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115㎞의 느린 체인지업으로 오타니의 타이밍을 뺏는 장면은 대회 명장면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았다.

이번 대회에서도 사토리아는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호주전에서 중간 계투로 나와 3⅔이닝 동안 1안타만 허용하며 무실점으로 막았다. 일본전까지 두 차례 등판에서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며 체코 마운드를 지켰다.

체코 대표팀 선수들은 대부분 직업을 따로 가진 ‘아마추어’다. 프로리그가 없는 탓에 야구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사토리아 역시 평소에는 전기 관련 일을 하며 생활한다. 야구는 퇴근 후 훈련과 국제대회 참가로 이어지는 ‘두 번째 직업’이다.

체코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호주, 대만, 일본과 같은 조에 묶이며 쉽지 않은 일정을 치렀다. 첫 세 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8강 진출이 일찌감치 좌절됐고, 일본전에서도 져 4전 전패로 대회를 마쳤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으로 야구팬들을 감동시켰다.

역시 본업이 신경외과 의사인 파벨 하딤 체코 대표팀 감독은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투구에 나선 사토리아에게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조국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영웅에 대한 작은 예우였다.

하딤 감독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크게 진다면 그동안 쌓아온 노력까지 흔들릴 수 있다”며 “우리는 단지 우리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제 무대에 도전하는 다른 나라들을 위해서도 싸운다”고 말했다.

체코에서 야구는 아직 대중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축구와 아이스하키가 스포츠 문화의 중심이다. 야구 인구는 1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1989년 공산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야구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체코 야구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023년 WBC에서 처음 본선 무대에 진출해 중국을 상대로 역사적인 첫 승을 거뒀다. 일본을 상대로도 선취점을 올리며 존재감을 알렸다. 지난해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역대 최고 성적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국가대표 은퇴를 결심했다는 사토리아는 “야구를 하며 이루고 싶던 목표를 대부분 이뤘다”며 “내가 이름을 알렸던 이곳에서 대표팀 커리어를 마무리할 수 있어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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