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기 전에 

김예원 2026. 3. 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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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이웃으로 살아갈 것인가 
김예원의 다른 시선 - 편집자 주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가 '김예원의 다른 시선'을 연재합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의심하지 않았던 상식에 물음표를 던져 보고, 목소리 큰 이들 뒤에 가려진 사람과 사연을 김 변호사만의 따뜻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길어 올립니다. 우리 사회 다양한 이슈를 새롭게 읽어 낼 이번 연재는 매월 2번째 수요일에 찾아갑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촉법소년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만 13세로 낮추는 방안을 두 달간 공론화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 언론과 여론은 대체로 차분했다. "한 살 정도는 낮춰도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어렵지 않게 들린다.

지난 2월 말, 유럽 코스타에 강사로 참석했다. 강의가 끝난 뒤 한 참여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나뿐인 자녀가 또래 아이들로부터 심각한 범죄 피해를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가해자가 여럿이었는데 주동자는 촉법소년 연령을 벗어나기 몇 개월 전인 아이였다. 사건은 소년 재판으로 진행되었고, 주동자가 형사 법정이 아니라 가정법원에서 재판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 자체가 몹시 괴로웠다고 했다.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재판이 끝났을 때는 분노를 견디기 어려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아이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어지는 그의 말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가 형사재판을 통해 강한 처벌을 받아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도 그렇지만 부모로서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잔인해질 수도 있는지 말이다. 이 사회가 그런 위태로운 아이들을 사회의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 버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라 했다.

소년이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변호사로서, 피해자의 분노와 낙심을 곁에서 많이 봐 왔다. 피해자의 고통이 깊은 사건을 마주할 때면, 솔직히 재판이고 뭐고 얼른 가해자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소년 사법의 틀을 여론의 분노에 기대어 서둘러 바꾸는 것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Gemini AI로 생성.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의는 대개 '흉악한 소년범죄가 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살인·강도·강간 같은 강력 범죄는 전체 소년범죄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절도나 폭행, 교통법 위반 같은 사건들이다. 일부 중범죄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부를 근거로 대부분의 사건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큰 오해가 있다. 촉법소년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소년 사법은 이미 만 10세부터 법원이 개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소년 재판에 따르는 보호처분, 보호관찰, 시설 강제 입소, 소년원 송치 등은 아동의 신체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강한 조치다. 국제적 기준과 비교해도 결코 약한 수준이 아니다. 

소년범들을 만나 상담해 보면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많은 아이가 가정 폭력이나 아동 학대를 경험한 피해자였다.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보호는커녕 겪지 않아야 할 일을 당하며 다치고 절망한 아이들이 어느 순간 가해자의 위치에 서 있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 이들을 더 무겁게 처벌하고 사회에서 격리하는 방식이 오히려 재범률을 높이고 장기적인 사회 치안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도 낯설지 않다.

소년 사법이 형사재판에 비해 번거로운 제도인 것은 사실이다. 처분 전 조사와 상담이 반복되고, 처분 역시 아이의 변화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래서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소년 사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처벌보다 변화의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연령만 낮춘다고 이 복잡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까. 피해자를 어떻게 더 보호하고 지원할 것인지, 그리고 아이들이 다시 범죄로 돌아가지 않도록 어떤 사회적 장치를 만들 것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가정 폭력과 학대에 대한 조기 개입, 학교와 지역사회 기반의 상담·치료, 보호관찰과 소년 시설의 질적 개선 같은 문제들이야말로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야 할 영역이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일은 쉽다. 법 조문에 숫자 하나 바꾸면 되니 말이다. 그러나 그 뒤에 따라올 결과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더 어린 아이들이 형사처벌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면, 그 낙인도 더 오래 남는다. 사회는 잠시 안도할지 모르지만, 그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미래 역시 우리의 몫이다.

소년사법을 논의하는 일은 결국 우리가 속한 이 땅이 어떤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는지 묻는 일이다. 분노 속에서 성벽을 더 두껍게 세우는 사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위태로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손을 내미는 사회가 될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뜨거운 숭늉을 마시듯 천천히 깊게 고민하며 결정했으면 한다. 소년 사법은 아이들을 어떻게 벌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이웃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제도라는 점을 이 사회가 함께 고민하길 바란다. 

김예원 /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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