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현호 8강길 오해와 진실···컴퓨터 야구게임이 아닌, ‘사람 투수’가 움직였다

안승호 기자 2026. 3. 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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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돔 1R의 투수들 뒷얘기
호주전 긴급상황 불펜 대응
플랜B 대만전 선발 올인 사연
더닝, 한국인 어머니에 큰 효도
지난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WBC 1라운드 대한민국과 호주의 경기. 3회말 무실점 호투를 보인 한국 노경은이 이정후와 주먹을 맞대고 있다. 연합뉴스

투수 A는 2025시즌 9승7패 평균자책 3.23을 기록했다. 투수 B는 5승7패 평균자책 4.20을 남겼다. 그런데 투수 B는 부상으로 출발이 늦었던 2025시즌 막판 리그 최고 수준의 강력한 구위를 되찾으며 마지막 2경기에서 2승 평균자책 1.50을 찍었다. 2경기 WHIP는 0.75에 불과했다.

A는 20년간 한국야구를 대표한 초베테랑 투수 한화 류현진이다. B는 두산 에이스이자 KBO리그 톱클래스에 올라 있는 곽빈이다.

‘스탯’으로 나타난 최근 지표, 트래킹데이터에 잡히는 현재의 구속과 구위를 고려하면 곽빈을 조금 더 확률 높은 카드로 판단할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8일 WBC 1라운드 대만전을 앞둔 류지현호의 선택은, 선발 류현진 이후 곽빈 순이었다.

1라운드 마친 뒤 전화로 연결된 대표팀 스태프에 따르면, 두 선발투수가 평소 몸 푸는 시간 등을 고려해 류현진이 먼저 던지고 곽빈이 이어가기로 했다. 뒤에 나오는 ‘+1 선발’ 등판 시점은 계산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빨리 몸을 풀 수 있는 투수가 2번째로 대기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여기에 큰 경기 경험과 제구 안정감 등도 계산에 둔 것으로 보였다

류현진이 지난 8일 WBC 1라운드 대만전 선발로 마운드에 서 있다. 연합뉴스

한주의 레이스를 망쳐도 다음 2주 동안 만회하면 되는 프로야구 정규시즌과 달리 대표팀이 참가하는 단일 대회는 긴 호흡으로 선수를 쓰기 어렵다. ‘컴퓨터 야구게임’처럼 수치로 나타난 선수 역량만을 보고 로봇청소기 꺼내 쓰듯 넣고 뺄 수도 없다. 상대성을 가리키는 데이터가 부족한 데다 투수마다 다른 몸 푸는 시간을 시작으로 경기 상황별 뱃심 차이까지 읽으며 이성과 감성을 혼합한 선택을 해야 한다.

대만전 불펜투수로 데인 더닝이 등판하며 1경기에 ‘선발 몰방’을 한 것을 두고도 ‘결과론적’ 비판이 따랐지만 이번 대표팀에는 KBO리그 마무리투수들이 여럿 포함돼 있지만, 과거 대표팀의 오승환, 임창용, 윤석민, 정현욱, 정대현 등 제구 걱정하지 않고 투입할 투수는 많지 않았다. 플랜A라면 더닝은 호주전 선발이었다. 그러나 대만전이 초박빙으로 진행되며 플랜B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이 승부치기 끝에 분패한 대만전을 어떤 식으로든 잡았다면 초유의 경우의 수를 안고 붙었던 호주전이 1000배는 더 쉬울 수 있었다. 복잡한 WBC룰에서는 대만전에 사실상 올인해야 하는 구조였다.

이른바 지금은 내부인들만 알고 있는 ‘내부 사정’이 있다.

호주전 비상 상황에서 소방수로 나선 노경은의 등판 과정도 그랬다. 대표팀 스태프는 호주전 선발로 손주영을 올리며 2번째 투수로 소형준과 노경은을 준비했다. 2번째 투수 등판 시점 또한 예단할 수 없었지만 주자가 없는 상황이라면 선발 자원인 소형준, 주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전문 불펜 노경은을 먼저 쓰기로 했다. 그런데 손주영이 2회초 한국 공격 중 팔꿈치에 통증을 느끼며 불펜에 ‘사이렌’이 울렸다. 주자 유무를 떠나 급히 몸을 풀 수 있는 투수가 필요했던 가운데 몸을 빨리 푸는 데도 익숙한 초베테랑 노경은이 고속 등판을 자청한 것이었다. 류지현 감독은 2회말 손주영을 마운드에 올려놓고 갑작스런 돌발 상황이 일어난 것처럼 최대한 시간을 끄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대표팀 류지현 감독. 연합뉴스

앞서 7일 일본전에서는 김영규 등판 결과를 놓고 시끄러웠다. 김영규는 앞서 일본 프로팀과 평가전까지 대표팀 불펜투수가 가장 좋은 밸런스를 보였다. 대표팀의 유일한 전문 좌완 불펜으로 승부처에서 오타니는 물론 곤도, 요시다 등으로 이어지는 일본 상위 좌타라인에 투입하는 게 기본 플랜이었다. 김영규는 애석하게도 자기 공을 던지지 못했다.

류택현 불펜코치에 따르면 김영규는 몸을 푸는 동안 평소보다 살짝 급한 모습을 보였다. 가라앉히는 시간을 가졌지만 실전에 올라가 긴장감을 지우지 못했다. 도쿄돔 만원관중에 일본 중심타선 상대라는 낯선 환경과 낯선 상황 속 협소한 선택지. 대표팀 스태프도 김영규도 경험으로 삼을 장면으로 남았다.

이번 대표팀은 대회를 앞두고 문동주, 원태인 등 확실한 선발자원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경기 플랜을 잡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국계 선수인 더닝을 제외하면 해외파 투수가 1명도 없는 게 실상이기도 했다. 다만 스태프와 선수들은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한마음으로 전에 없이 세밀한 준비를 해왔고, 영화 같은 반전으로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다.

9일 호주전에서 역투하는 데닝 더닝. 연합뉴스

대만전에 이어 호주전에도 등판한 더닝은 미국 리그에서 선발투수로 뛴 이력에 불펜 연투가 낯설었지만, 호주전 불펜 대기 가능 여부를 묻는 스태프의 뜻에 잠시의 고민도 없이 바로 호응했다. 대표팀 스태프로 수비 디테일을 만들고 있는 이동욱 코치는 8강행을 확정짓고 10일 아침 더닝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며 더닝의 한국인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가 엄청 우셨대요, 너무 좋으셨나 봐요. 더닝이 ‘어머니한테 큰 선물한 것 같아 너무 다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마이 존스도 너무 좋은 에너지를 주고 있고요. 우리 선수들이 하나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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