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출신 안무가 샤론 에얄 “춤은 삶의 연장…내가 바라는 것은 평화”
NDT 초연 이후 한국서 아시아 첫 공연
“안무가 아닌 몽상가…춤으로 세상과 소통”
![안무가 샤론 에얄이 서울시발레단과 ‘재키’를 선보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1/ned/20260311100303880zafd.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전 작품을 위한 작품은 만들지 않아요. 제 춤은 삶의 연장선이에요.”
이스라엘 출신의 세계적인 안무가 샤론 에얄은 네 살 때부터 춤을 췄다. 열세 살에 빨간 토슈즈를 신고 안무를 한 것이 그의 첫 작품. 에얄에게 몸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발원지다.
샤론 에얄이 처음으로 한국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춘다. 창단 2주년을 맞은 서울시발레단이다. 오는 14일 개막하는 더블 빌(Double Bill, 두 작품을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형식) ‘블리스 & 재키’를 통해서다. 공연에선 두 거장 요한 잉거와 샤론 에얄의 작품이 올라간다. 요한 잉거의 ‘블리스’는 지난해 서울시발레단을 통해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샤론 에얄의 ‘재키’가 아시아에서 공개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작품은 앞서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를 통해 무대에 올라 찬사를 받았다.
개막을 앞두고 서울시발레단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에얄은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무용수들은 굉장히 엄격하고 (춤의) 형태에 중점을 두는데, 나 또한 이 부분에 집착하는 면이 있어 서로 긍정적인 자질을 끌어내고 있다”며 “서로에게 도전이 되는 경험”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공공 컨템포러리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은 지난 2년간 놀라운 성장을 보여줬다. 오하드 나하린, 요한 잉거 등 세계적인 안무가들과 협업하며 단숨에 주목받는 발레단이 됐다.
안호상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안무가가 올 때마다 주인공이 달라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며 변화하는 모습이 새삼스럽고 놀랍다”면서 “이번 공연도 지나온 2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무대”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그는 이어 “타 단체의 무용수들은 서울시발레단의 방식에 생소하고 힘들어한다”면서 “우리 단원들이 자기 성장에 대한 확신을 주고받는 이 흐름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무가 샤론 에얄이 서울시발레단과 ‘재키’를 선보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1/ned/20260311100304184aclw.jpg)
‘재키(Jackie)’는 전자음악에 맞춘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움직임을 무대에 담아낸다. ‘발레의 엄격함’과 ‘테크노의 자유로움’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독특한 감각이 특징이다.
특히나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공연 이후 3년 만에 새로운 단체에서 선보이는 만큼, 작품엔 변화도 있다. 에얄은 “개별 무용수에 맞춰 작은 변화를 줬다”며 “새로운 정신과 얼굴, 감각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고 말했다.
에얄의 작업 방식은 파격적이다. 스스로를 “안무가가 아닌 몽상가”라고 부르는 그는 창작 과정에서 음악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춘 뒤, 이를 촬영해 무용수들에게 전달한다. “춤을 못 추는 날이 오면 창작도 그만둬야 할 것”이라 말할 만큼 그의 안무는 철저히 자신의 신체적 경험에 근거한다.
그는 수백 마디의 말보다 몸짓의 힘을 믿는다. “춤은 자유이자 연결, 감정을 이야기한다. 움직임은 우리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더 좋은 감정을 준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에얄에게 춤은 직업이기 전에 세상과 소통하는 정직한 방식이다. 그는 “나는 지금 느끼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꿈 꾸는 사람”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것, 그것을 춤으로 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에얄은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의 바체바 댄스 컴퍼니 무용수와 상주 안무가를 거쳐 자신의 무용단 S-E-D를 설립했다. 그의 남편이자 단체의 예술감독인 가이 베하르는 든든한 조력자이자 예술적 동반자다. 에얄은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일할 수 없을 것”이라며 “무용수 출신은 아니지만, 다른 관점과 다른 시선을 제공해 준다”고 했다. 가이 베하르는 기획자를 넘어 텔아비브의 하위문화(테크노, 나이트라이프)를 무대로 끌어들인 선구자다. ‘재키’의 테크노적 색채 역시 그의 영향이다.
‘재키’는 에얄이 강조하는 ‘신체적 민감성’이 고스란히 묻어난 작품이다. 그는 무용수들의 ‘사투’를 끌어내는 안무가다. 에얄은 “이야기는 몸 안에서 나온다고 믿는다”며 “신체적으로 극단적인 상태에 이를수록 감정은 더 강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안무가 샤론 에얄이 서울시발레단과 ‘재키’를 선보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3/11/ned/20260311100304561dfqo.jpg)
그러면서 “무용수들이 기술과 형태에 있어 모든 극단에 도달하려 애쓰면서 갓 태어난 아기처럼 과거도 미래도 없는 깨끗한 존재가 되길 원한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움직임에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고도로 숙련된 프로 무용수들이 자신을 비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더하는 것이 아닌 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무용수들이 자신과의 사투를 거쳐 만들어내기에 에얄은 스스로를 “경험을 공유하고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피부처럼 밀착되는 의상을 입는 것도 에얄이 춤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는 “무용수들의 몸이 좋다. 그래서 옷은 적을수록 좋다”며 “의상은 피부가 한 겹 더 있는 정도다. 피부가 보이면 감정이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한다. 근육, 땀, 그것에 따라 색깔이 변화하는 것이 관객에게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얄과 호흡을 맞춘 무용수들도 새로운 경험에 눈을 뜨고 있다. 독일 튀링겐 주립 발레단에서 활동하다 서울시발레단에 합류한 무용수 김여진은 “정신과 몸을 100% 이상 깨우지 않으면 수행할 수 없는 동작들이 많다. 손바닥과 발바닥, 심지어 눈동자의 위치까지 섬세하게 조정하는 고도의 디테일을 담는 과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남윤승은 “움직임이 뇌의 신경과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것에서 시작된다”며, 단순한 안무의 나열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작품의 제목인 ‘재키’에 대해 에얄은 신비주의를 고수했다. 그는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이유는 잘 말씀드리지 않는다. 제목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나 곰이나 달로 생각해도 좋다”며 “관객이 줄거리를 미리 읽기보다 극장에서 직접 경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제목은 에얄 지인의 이름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나고 자란 에얄의 근육에는 모국인 이스라엘의 긴장감이 새겨진다. 그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내 춤은 내가 자란 환경을 반영한다”며 “환경이 안무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체득한 ‘실존적 긴장감’이 그의 근육과 세포에 새겨진 것이다. 에얄에겐 환경이 신체 언어의 근간인 셈이다. 현재 이어지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 대해 에얄은 직접적 언급은 피했지만, 예술의 가치만큼은 분명히 들려줬다. 그는 “저는 창작을 하는 사람이고, 예술만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며 “바로 사랑과 평화, 공유”라고 했다.
이번 공연은 22일까지 이어지나, 오는 21일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방탄소년단의 컴백 공연으로 취소됐다. 안호상 사장은 “행사 당일 극장 접근 및 교통 통제로 관객들의 불편이 예상되어 부득이하게 결정을 내렸다”며 “성공적인 행사 진행을 위해 협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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