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네기또는 불효자인가 영웅인가

심규호 2026. 3. 1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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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호의 제주 마을 이야기] ⑧ 천하제일 마을 김녕 下

제주의 진가는 멋진 관광지에만 있지 않다. 중산간부터 바닷가까지 긴 세월에 걸쳐 주민들이 뿌리 내리며 살고 있는 곳, 바로 마을에서 더욱 멋진 제주를 만날 수 있다. 심규호 중국학회회장이 신발 끈을 질끈 묶고 제주 마을로 향한다. 심규호 회장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마을 이야기를 [제주의소리]를 통해 만나보자. [편집자 주] 

두럭산

제주도에는 다섯 개의 산이 있다. 주봉인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군산, 그리고 설문대할망이 빨래를 할 때 빨래판이었다는 '두럭산'이 그것이다.(일설에 따르면, 한라산, 성산의 성산, 성읍의 영주산, 화순의 산방산, 두럭산) 고근산(고근산오름), 미악산(솔오름)도 산이란 이름이 붙어 있지만 오름이지 산이 아니다.  
마을 축제 '두럭산과 할망이야기'.
두럭산도 산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기이하다. 민물 때는 보이지 않고 썰물 때만 보이는 기이한 암초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음력 3월 중순에만 나타난다고도 한다. 우리는 주로 이런 암초를 여礖라고 부른다. 김녕에는 가수여, 갈여, 개국여, 높은여, 소여, 보릿눌여 등 암초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두럭산은 거문오름에서 용출된 용암이 처음으로 바다와 만나 형성된 바다의 산이다. 육지에 한라산이 있다면, 바다에는 두럭산이 있는 셈이다. 두럭산의 형상도 멀리서 바라본 한라산 정상과 유사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천치창조의 여신 설문대할망과 연관시키고, 그냥 여나 암초가 아니라 '산'이라 불렀을 것이다. 예로부터 김녕의 바다는 심포深浦(지픈개)라고 했다. 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는 두럭산은 작은 암초에 불과하나 그 밑에는 심대한 산이 우뚝 서 있을 터이다. 금기의 산으로 신성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가깝게 좀 더 다정스럽게 마주봐야 하지 않을까? 
바다에 모습을 보인 두럭산.

멜 후리는 소리

멸치는 제주바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선이다. 멸아鱴兒, 말자어末子魚로, 정약전이 『자산어보』에서 추어鯫魚, 멸어蔑魚라고 불렀던 물고기다. 잡아 올리면 급한 성질 때문에 바로 죽어 버린다고 하여 멸할 멸滅 자까지 붙였으니 멸치에 대한 선조들의 시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멸치는 해양생물의 생태지표가 되는 매우 중요한 어류이다. 멸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바다가 건강하다는 뜻이다. 또한 작지만 개체수가 많아 우리 밥상에 흔히 올라오는 반찬이다. 특히 제주에서는 멜젓, 멜튀김, 멜조림, 멸치국수 등 다양하게 조리하여 먹는다. 잡는 방법도 특이하여 남해에 죽방멸치가 있다면, 제주에는 원담 멸치가 있다. 원은 해안가에 자그맣게 만을 이룬 곳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 그곳에 돌담을 쌓아 밀물에 들어온 고기가 썰물이 되면 돌담에 갇혀 나갈 수 없게 만든 것을 일러 원담이라고 한다. 일종의 '돌그물'인 셈이다. 구좌나 성산, 조천에서는 이러한 '원'을 '개'라고 부르며, 원담 또한 갯담이라고 한다. 물론 고등어새끼인 고도리, 전갱이(각재기) 등도 잡히고 운이 좋으면 갈치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멜이 가장 많이 잡히는지라 멜 후리기 노래가 전승되고 있다.
해녀불턱.

멜 후리기 노래는 1986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제주의 대표적인 노동요이다. 김녕리에도 있다. 예전에 한개(큰 포구) 앞바다에 멸치를 잡는 서김녕리 공동작업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해녀 쉼터인 '한개 불턱'도 있고, 포구를 끼고 있는 너럭바위인 '한개 빌레'도 있는 바로 그곳에서 상설 또는 매년 정기적으로 멸치 후리는 노래를 부르는 축제를 하면 어떨까싶다. 제주도 전역에 멸치 후리는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을 모두 모아 경연을 해도 좋고, 함께 어울리기만 해도 좋지 않을까?  

성세기 해변 - 김녕해수욕장
마을 축제 풍물 길놀이.
구좌읍의 모래해안은 김녕리 성세기 해변을 비롯하여 동쪽으로 월정리, 행원리, 세화리, 하도리, 종달리까지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해수욕장으로 지정되어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김녕 해수욕장이다. 매년 축제를 개최하고, 시설 또한 완비되어 있다. 구좌의 모래는 다른 지역과 다르다. 모래의 사전적 정의는 암석과 광물질의 작은 조각으로 구성된 입자이다. 하지만 모든 모래가 돌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모래에서 가장 많은 성분은 이산화규소(SiO2, 실리카)로 경도가 높아 풍화작용에 잘 견디는 석영 형태가 많다. 두 번째로 많은 성분은 탄산칼슘이다. 오랜 세월 조개껍질이나 산호의 가루가 모래에 축적된 것인데, 우도 산호해변의 홍조단괴紅藻團塊가 대표적이다. 이렇듯 김녕의 모살, 즉 모래는 이산화규소보다 탄산칼슘이 많다. 김녕리 해안선을 따라 흐르는 연안류가 넘실대는 파도를 따라 만灣 형태의 해안가에 하얀 모래를 밀어 올렸고, 그 모래가 북쪽이나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이나 갈하늬바람으로 인해 해안 사구沙丘를 만들고, 다시 용암길을 따라 내륙 사구를 만들었다. 모래에 포함된 탄산칼슘은 산성화된 땅을 중성화시키고, 땅 밑으로 들어가 용암동굴에 종유석이나 석순, 석주를 만들었다.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바다로 흘러가면서 만든 총 길이 2.5km의 거대한 용천동굴이 화려한 석회 생성물로 인해 '세계 최고의 지하 비경'이라는 찬사를 얻게 된 배경이다. 김녕 모살의 힘! 
성세기 해변(김녕해수욕장).

덩개해안

바당빌레의 대표격인 덩개해안은 용암이 흘러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장관을 이룬다. 흙 한 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갯매꽃, 갯완두, 갯질경 등 염생식물이 자라며, 노란 꽃잎이 예쁜 암대극岩大戟(갯바위대극)과 사초莎草도 볼 수 있다. 염습지가 있는 까닭이다. 덩은 바위, 개는 포구 또는 바다이니, 바위 포구, 바위가 누워있는 바다라는 뜻이다. 해녀들이 덩개해안 길을 따라 바다로 나간다. 
덩개해안 바당빌레.

김녕의 신당과 해녀들의 잠수굿

김녕은 반농반어 지역이다. 농사도 짓고 물질도 하며, 어로도 한다. 지금은 양파, 당근의 생산지로 유명하지만 그 옛날에는 척박한 땅에 곡식이 잘 되지 않을 터이니 바다가 귀한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하여 김녕은 해녀가 유명하며, 그네들의 삶의 형태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2025년 김녕 해녀 은퇴식 기념사진.

김녕리 어촌계는 1962년 조직되었다. 주로 덩개, 한여, 가수코지, 목지코지, 이아래, 소여, 소노비, 수어새 근처에 있는 막물, 아끈줴기, 한줴기, 다섯물 등 이름도 예쁜 공동어장에서 물질이 이루어지며 한 물때에 8일 작업한다. 천초의 양이 많고 품질이 좋다. 수어새와 소노비 바다에는 톳이 많이 난다. 가수코지는 백호, 목지코지는 청룡이라고 한다는데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그러한 것일 터이나 구체적인 연유는 잘 모르겠다. 해녀가 일하는 곳이니 당연히 불을 피워 쉬거나 옷을 갈아 입는 불턱, 예컨대 가수코지불턱, 목지코지불턱, 소노비불턱 등이 있다.  

매해 3월 8일 세기알 바닷가에서 영등굿과 성격이 다른 김녕 해녀들만의 굿이 벌어진다. 3월 8일에 행하는 것은 김녕 성세기당 본풀이에 "동해용왕 말젯아들이 요왕 개폐문을 열고 나오는 날"이 그날이기 때문이다. "물질하는 날이면 요왕지를 싸서 요왕할망에게 비념을 한다." 가족들의 안녕, 물질의 안녕과 수확의 풍요를 비는 것이다. 심방의 계보는 늘굽이하르방(이달춘)-한옥녀-문춘성-서순실로 이어진다.  

김녕의 신당은 다음과 같다. 

사장빌레 큰당:  동김녕리 본향당이다. 당신은 '관세전부인' 또는 '큰도안전 큰도부인'이다. 당본풀이에 따르면, 강남천자국 안카름에서 삼형제가 들어와 큰 형님은 조천 정중부인, 막내는 온평리 맹오부인, 둘째는 김녕에 관세전부인으로 좌정했다. 당제일은 대제일, 마블림제, 시만국대제 등을 날짜에 따라 거행한다. 궤문을 열어 앉은제로 비념하고, 1년에 3번 당제를 지낸다. 큰당의 메인 심방은 김윤보 심방의 장모였으며, 이후 김윤보 심방이 뒤를 이었고, 지금은 그의 딸인 서순실 심방이 맡고 있다. 원래 김녕중학교 구내에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 시절 신사를 만들면서 학교 동쪽 길가 팽나무 있는 곳, 속칭 '사장빌레'로 옮겼다.

궤네기당:  입산봉 마을 공동묘지 서쪽에 있다. 자연 굴 안에 있으며 제단이 있다. 굴밖에 300년 된 팽나무(신목)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궤네기동굴유적지로 지정되어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궤네기당의 내력을 전하는 본풀이에는 "돼지 천 마리를 잡아 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돗제를 하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궤네기당에서 돗제를 지냈으며, 지금은 주로 집안에서 돗제를 지낸다. 

성세깃당: 해수욕장 입구에서 남서쪽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제단 뒤 동백나무 2그루가 신목이다. '유황황제국 일곱째 아들' 'ᄌᆞᆨ은아들' 양푼에 밥 한 그릇 담아 숟가락 하나를 꽂아오거나 한 디짜리 시루에 시루떡을 해서 양푼에 담아온다.

ᄂᆞ모리 일뤠당: 백련사 남쪽 골목에 있다. 신목은 팽나무. '강남천자국 용녀부인'을 모신다. "물비리, 당비리, 너벅지시, 홍허물, 등에 등창, 배에 배창나게 맙서."라고 비념한다. 김윤보-서순실 심방이 맡고 있다.

서문하르방당: 바다에서 건진 은진미륵을 모신 당. 남당, 미륵당이라고 부른다. 서문하르방을 위한 제물을 차리고 왼쪽으로 삼승할망상, 하르방상, 아래쪽에는 요왕상, 입구 왼쪽에는 올래지기상을 차린다. 특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나 아들을 낳는 영험한 당. 택일하여 새벽 1시쯤 불도맞이굿을 한다. 바랑점을 치는데, 두 개의 바랑이 엎어지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궤네기또(궤네기도)는 불효자인가 영웅인가 

송당리에 소천국이란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 시간 남쪽 나라 한 마을에 백주또란 계집아이가 태어났다. 그들 두 사람은 원래 땅속 나라 신이었다. 땅속나라가 싫어 백 년 동안 기도하여 밝은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백주또는 아들 다섯 형제를 낳고 여섯째를 가졌다. 소천국은 일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면서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보통 사람의 아홉 배를 먹었다. 백주또가 구슬려 농사를 짓게 하였다. 하루는 소천국이 땀을 흘리며 밭을 갈고 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먹고 남은 점심이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먹으려던 점심을 주었더니 밥 아홉 그릇, 국 아홉 그릇을 다 먹고 가버렸다. 소천국이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먹을 밥이 없었다. 그래서 밭 갈던 소를 잡아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 암소도 잡아먹었다. 백주또가 이 사실을 알고 소도둑놈과 살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다. 소천국은 집을 나와 사냥을 하며 살았다. 얼마 후 백주또는 여섯째 아들을 낳아 궤네깃또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어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자 백주또는 아들을 데리고 소천국을 찾아갔다. 궤네깃또가 어리광을 부리는데(아버지의 수염을 뽑았다), 소천국은 아이가 맘에 들지 않아 돌궤짝에 집어넣어 제주섬 앞바다에 던져버렸다. 돌궤짝은 물 위에서 3년, 물 아래에서 3년 동안 떠다니다가 용궁 산호가지에 걸려 용왕의 셋째 공주와 결혼한 뒤 돌궤짝을 타고 남쪽 나라 바닷가로 왔다. 북쪽 나라 오랑캐가 남쪽 나라를 쳐들어오자 궤네깃이 전쟁터로 달려가 물리쳤다. 궤네깃또는 해동국 제주섬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군사와 하인들을 데리고 제주로 오자 소천국과 백주또는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를 하려고 쳐들어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소천국은 송당리 뒷산(아랫마을)으로 도망치다 돌부리에 걸려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 아랫마을 당신이 되고, 백주또는 송당리 앞산(윗마을)으로 도망치다 소나무 그루터기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 윗마을 당신으로 좌정되었다. 이에 궤네깃또는 슬퍼하며 굿을 하여 망자를 위로했다. 어느 날 김녕리에 가게 되었는데, 명당으로 여기고 그곳에 살기로 결정하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죽은 후에도 가뭄이 들면 풍년이 들게 하고, 풍랑을 잠재웠다. 하여 김녕리 사람들이 당집을 짓고 궤네깃또를 마을신으로 모셨다.  

궤네깃또의 '또(도)'는 신을 뜻하는 말이다. 된소리로 발음하기는 하나 '도'가 맞다. '도(또)'는 일뤠또(음력 7일, 17일, 27일에 모시는 마을신), 요왕또, 베포도업침(제주 큰 굿의 첫 의례로 배포排布하시는 신들의 업業을 친다는 뜻), 하로산또(한라산신) 등 제주 무속신앙에서 흔히 등장한다.  

궤네깃또 신화에는 등장인물이 제법 된다. 소천국, 백주또, 용왕, 남쪽 나라, 북쪽 나라 오랑캐, 스님, 소와 돼지도 있다. 궤네깃또는 소 대신 돼지를 잡아먹도록 했다는데, 궤네깃또를 모시는 궤네기당에선 매년 돗제를 지냈다. 학자들에 따르면, 소천국은 남성 수렵신, 백주또는 여성 농경신이라 하고, 궤네기또는 집안에서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타지에서 여러 경험을 하고 돌아와 새로운 문화를 일군 영웅으로 간주된다. 그런 까닭인지 문학작품이나 애니메이션(2008년 식신食神인 '와릉탕 궤네깃또')으로 재창조되기도 했다. 김녕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새로운 해석은 없는 것일까? 궁금하다.  

돗제豚祭는 구좌읍 김녕은 물론이고 월정, 행원, 평대, 세화 등지에서 거행되는 무속의례이다. 김녕포구는 선박 출입항이 많은 곳인지라 예전에는 바닷길 안전을 위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며 용왕신, 천신, 북두칠성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흔했다. 그럴 때마다 돗제를 지냈는데, 택일을 '생기복덕生氣福德 맞는 날'이라고 부르며, 제사가 끝나면 분육하여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서순실 심방집 돗제가 대표적이다. 

마무리하며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은 『탐라순력도』 외에도 7언 율시 「팔경八景」을 통해 제주 동북쪽의 자연경관을 읊었다. 그가 제시한 팔경은 한라채운漢拏彩雲, 화북제경禾北霽景, 김녕촌수金寧村樹(藪), 평대저연坪岱渚煙, 어등만범魚燈晩帆, 우도서애牛島曙靄, 조천춘랑朝天春浪, 세화상월細花霜月이다. 김녕촌수의 樹는 아마도 藪, 영주십경에 나오는 고수목마古藪牧馬의 '수'의 오기인 듯하다. 흔히 김녕 곶자왈이라고 부르는 곳, 김녕십경에 나오는 '金藪巖林'을 의미하는것일 터이다. 김녕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그저 김녕 마을의 나무인줄만 알았다. 그래서 이형상이 김녕 마을을 지나며 어떤 나무를 보았기에 팔경 가운데 하나로 집어넣었을까 궁금했다.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셈이다. 허나 어찌 김녕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다고 어찌 김녕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하는 몇 가지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몇 가지를 언급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것이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김녕에 사는 이들, 김녕 출신인 이들, 아니 제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이들이 천하제일 마을로서 김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녕에 갔을 때 인상적인 것은 박근현 청년회장을 중심으로 일군의 젊은이들이 마을의 일꾼으로 김녕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마을 기행을 통해 외지 사람들에게 김녕을 알리고, 축제를 개최하며, 젊은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하여 실천하고 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김녕을 천하제일 마을로 만드는 데 앞장 서는 이들은 분명 김녕 사람이어야 한다. 옆에 서서 김녕을 바라보는 이들은 손으로 박수칠 준비를, 입으로 소리쳐 응원할 태세를 갖추고 있을 터이다. 다만 생각하고 도모하는 일은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김녕이 그런 이들을 따스하게 품기를 바란다. 그래야 천하제일이 될 수 있을 터이니.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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