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네기또는 불효자인가 영웅인가
제주의 진가는 멋진 관광지에만 있지 않다. 중산간부터 바닷가까지 긴 세월에 걸쳐 주민들이 뿌리 내리며 살고 있는 곳, 바로 마을에서 더욱 멋진 제주를 만날 수 있다. 심규호 중국학회회장이 신발 끈을 질끈 묶고 제주 마을로 향한다. 심규호 회장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마을 이야기를 [제주의소리]를 통해 만나보자. [편집자 주]
두럭산


멜 후리는 소리
멸치는 제주바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선이다. 멸아鱴兒, 말자어末子魚로, 정약전이 『자산어보』에서 추어鯫魚, 멸어蔑魚라고 불렀던 물고기다. 잡아 올리면 급한 성질 때문에 바로 죽어 버린다고 하여 멸할 멸滅 자까지 붙였으니 멸치에 대한 선조들의 시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멜 후리기 노래는 1986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된 제주의 대표적인 노동요이다. 김녕리에도 있다. 예전에 한개(큰 포구) 앞바다에 멸치를 잡는 서김녕리 공동작업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해녀 쉼터인 '한개 불턱'도 있고, 포구를 끼고 있는 너럭바위인 '한개 빌레'도 있는 바로 그곳에서 상설 또는 매년 정기적으로 멸치 후리는 노래를 부르는 축제를 하면 어떨까싶다. 제주도 전역에 멸치 후리는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있으니 그들을 모두 모아 경연을 해도 좋고, 함께 어울리기만 해도 좋지 않을까?


덩개해안

김녕의 신당과 해녀들의 잠수굿

김녕리 어촌계는 1962년 조직되었다. 주로 덩개, 한여, 가수코지, 목지코지, 이아래, 소여, 소노비, 수어새 근처에 있는 막물, 아끈줴기, 한줴기, 다섯물 등 이름도 예쁜 공동어장에서 물질이 이루어지며 한 물때에 8일 작업한다. 천초의 양이 많고 품질이 좋다. 수어새와 소노비 바다에는 톳이 많이 난다. 가수코지는 백호, 목지코지는 청룡이라고 한다는데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그러한 것일 터이나 구체적인 연유는 잘 모르겠다. 해녀가 일하는 곳이니 당연히 불을 피워 쉬거나 옷을 갈아 입는 불턱, 예컨대 가수코지불턱, 목지코지불턱, 소노비불턱 등이 있다.
매해 3월 8일 세기알 바닷가에서 영등굿과 성격이 다른 김녕 해녀들만의 굿이 벌어진다. 3월 8일에 행하는 것은 김녕 성세기당 본풀이에 "동해용왕 말젯아들이 요왕 개폐문을 열고 나오는 날"이 그날이기 때문이다. "물질하는 날이면 요왕지를 싸서 요왕할망에게 비념을 한다." 가족들의 안녕, 물질의 안녕과 수확의 풍요를 비는 것이다. 심방의 계보는 늘굽이하르방(이달춘)-한옥녀-문춘성-서순실로 이어진다.
김녕의 신당은 다음과 같다.
사장빌레 큰당: 동김녕리 본향당이다. 당신은 '관세전부인' 또는 '큰도안전 큰도부인'이다. 당본풀이에 따르면, 강남천자국 안카름에서 삼형제가 들어와 큰 형님은 조천 정중부인, 막내는 온평리 맹오부인, 둘째는 김녕에 관세전부인으로 좌정했다. 당제일은 대제일, 마블림제, 시만국대제 등을 날짜에 따라 거행한다. 궤문을 열어 앉은제로 비념하고, 1년에 3번 당제를 지낸다. 큰당의 메인 심방은 김윤보 심방의 장모였으며, 이후 김윤보 심방이 뒤를 이었고, 지금은 그의 딸인 서순실 심방이 맡고 있다. 원래 김녕중학교 구내에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 시절 신사를 만들면서 학교 동쪽 길가 팽나무 있는 곳, 속칭 '사장빌레'로 옮겼다.
궤네기당: 입산봉 마을 공동묘지 서쪽에 있다. 자연 굴 안에 있으며 제단이 있다. 굴밖에 300년 된 팽나무(신목)는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궤네기동굴유적지로 지정되어 내부에 들어갈 수 없다. 궤네기당의 내력을 전하는 본풀이에는 "돼지 천 마리를 잡아 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돗제를 하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궤네기당에서 돗제를 지냈으며, 지금은 주로 집안에서 돗제를 지낸다.
성세깃당: 해수욕장 입구에서 남서쪽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제단 뒤 동백나무 2그루가 신목이다. '유황황제국 일곱째 아들' 'ᄌᆞᆨ은아들' 양푼에 밥 한 그릇 담아 숟가락 하나를 꽂아오거나 한 디짜리 시루에 시루떡을 해서 양푼에 담아온다.
ᄂᆞ모리 일뤠당: 백련사 남쪽 골목에 있다. 신목은 팽나무. '강남천자국 용녀부인'을 모신다. "물비리, 당비리, 너벅지시, 홍허물, 등에 등창, 배에 배창나게 맙서."라고 비념한다. 김윤보-서순실 심방이 맡고 있다.
서문하르방당: 바다에서 건진 은진미륵을 모신 당. 남당, 미륵당이라고 부른다. 서문하르방을 위한 제물을 차리고 왼쪽으로 삼승할망상, 하르방상, 아래쪽에는 요왕상, 입구 왼쪽에는 올래지기상을 차린다. 특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나 아들을 낳는 영험한 당. 택일하여 새벽 1시쯤 불도맞이굿을 한다. 바랑점을 치는데, 두 개의 바랑이 엎어지면 반드시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궤네기또(궤네기도)는 불효자인가 영웅인가
송당리에 소천국이란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 시간 남쪽 나라 한 마을에 백주또란 계집아이가 태어났다. 그들 두 사람은 원래 땅속 나라 신이었다. 땅속나라가 싫어 백 년 동안 기도하여 밝은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그들은 부부가 되었다. 백주또는 아들 다섯 형제를 낳고 여섯째를 가졌다. 소천국은 일은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면서 먹성이 얼마나 좋은지 보통 사람의 아홉 배를 먹었다. 백주또가 구슬려 농사를 짓게 하였다. 하루는 소천국이 땀을 흘리며 밭을 갈고 있는데, 지나가던 스님이 먹고 남은 점심이 있으면 좀 달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먹으려던 점심을 주었더니 밥 아홉 그릇, 국 아홉 그릇을 다 먹고 가버렸다. 소천국이 배가 고파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먹을 밥이 없었다. 그래서 밭 갈던 소를 잡아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파 암소도 잡아먹었다. 백주또가 이 사실을 알고 소도둑놈과 살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다. 소천국은 집을 나와 사냥을 하며 살았다. 얼마 후 백주또는 여섯째 아들을 낳아 궤네깃또라고 이름을 지었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어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하자 백주또는 아들을 데리고 소천국을 찾아갔다. 궤네깃또가 어리광을 부리는데(아버지의 수염을 뽑았다), 소천국은 아이가 맘에 들지 않아 돌궤짝에 집어넣어 제주섬 앞바다에 던져버렸다. 돌궤짝은 물 위에서 3년, 물 아래에서 3년 동안 떠다니다가 용궁 산호가지에 걸려 용왕의 셋째 공주와 결혼한 뒤 돌궤짝을 타고 남쪽 나라 바닷가로 왔다. 북쪽 나라 오랑캐가 남쪽 나라를 쳐들어오자 궤네깃이 전쟁터로 달려가 물리쳤다. 궤네깃또는 해동국 제주섬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군사와 하인들을 데리고 제주로 오자 소천국과 백주또는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를 하려고 쳐들어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소천국은 송당리 뒷산(아랫마을)으로 도망치다 돌부리에 걸려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 아랫마을 당신이 되고, 백주또는 송당리 앞산(윗마을)으로 도망치다 소나무 그루터기에 머리를 부딪쳐 죽어 윗마을 당신으로 좌정되었다. 이에 궤네깃또는 슬퍼하며 굿을 하여 망자를 위로했다. 어느 날 김녕리에 가게 되었는데, 명당으로 여기고 그곳에 살기로 결정하고, 마을 사람들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죽은 후에도 가뭄이 들면 풍년이 들게 하고, 풍랑을 잠재웠다. 하여 김녕리 사람들이 당집을 짓고 궤네깃또를 마을신으로 모셨다.
궤네깃또의 '또(도)'는 신을 뜻하는 말이다. 된소리로 발음하기는 하나 '도'가 맞다. '도(또)'는 일뤠또(음력 7일, 17일, 27일에 모시는 마을신), 요왕또, 베포도업침(제주 큰 굿의 첫 의례로 배포排布하시는 신들의 업業을 친다는 뜻), 하로산또(한라산신) 등 제주 무속신앙에서 흔히 등장한다.
궤네깃또 신화에는 등장인물이 제법 된다. 소천국, 백주또, 용왕, 남쪽 나라, 북쪽 나라 오랑캐, 스님, 소와 돼지도 있다. 궤네깃또는 소 대신 돼지를 잡아먹도록 했다는데, 궤네깃또를 모시는 궤네기당에선 매년 돗제를 지냈다. 학자들에 따르면, 소천국은 남성 수렵신, 백주또는 여성 농경신이라 하고, 궤네기또는 집안에서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타지에서 여러 경험을 하고 돌아와 새로운 문화를 일군 영웅으로 간주된다. 그런 까닭인지 문학작품이나 애니메이션(2008년 식신食神인 '와릉탕 궤네깃또')으로 재창조되기도 했다. 김녕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새로운 해석은 없는 것일까? 궁금하다.
돗제豚祭는 구좌읍 김녕은 물론이고 월정, 행원, 평대, 세화 등지에서 거행되는 무속의례이다. 김녕포구는 선박 출입항이 많은 곳인지라 예전에는 바닷길 안전을 위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며 용왕신, 천신, 북두칠성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흔했다. 그럴 때마다 돗제를 지냈는데, 택일을 '생기복덕生氣福德 맞는 날'이라고 부르며, 제사가 끝나면 분육하여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서순실 심방집 돗제가 대표적이다.
마무리하며
제주목사 이형상李衡祥은 『탐라순력도』 외에도 7언 율시 「팔경八景」을 통해 제주 동북쪽의 자연경관을 읊었다. 그가 제시한 팔경은 한라채운漢拏彩雲, 화북제경禾北霽景, 김녕촌수金寧村樹(藪), 평대저연坪岱渚煙, 어등만범魚燈晩帆, 우도서애牛島曙靄, 조천춘랑朝天春浪, 세화상월細花霜月이다. 김녕촌수의 樹는 아마도 藪, 영주십경에 나오는 고수목마古藪牧馬의 '수'의 오기인 듯하다. 흔히 김녕 곶자왈이라고 부르는 곳, 김녕십경에 나오는 '金藪巖林'을 의미하는것일 터이다. 김녕에 대해 잘 몰랐을 때는 그저 김녕 마을의 나무인줄만 알았다. 그래서 이형상이 김녕 마을을 지나며 어떤 나무를 보았기에 팔경 가운데 하나로 집어넣었을까 궁금했다.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셈이다. 허나 어찌 김녕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다고 어찌 김녕을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하는 몇 가지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몇 가지를 언급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것이 첫걸음이 아니겠는가? 김녕에 사는 이들, 김녕 출신인 이들, 아니 제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 사는 모든 이들이 천하제일 마을로서 김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녕에 갔을 때 인상적인 것은 박근현 청년회장을 중심으로 일군의 젊은이들이 마을의 일꾼으로 김녕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마을 기행을 통해 외지 사람들에게 김녕을 알리고, 축제를 개최하며, 젊은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기획하여 실천하고 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별꼴학교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