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첫날…포스코·쿠팡 왜 가장 먼저 교섭문 열었나

김정민 2026. 3. 1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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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쿠팡 법 시행 첫날 노조 교섭 요구 수용해 공고
법원, 산업안전 의제 원청사 사용자성 인정판례 쌓아와
근로조건 두고 사회적 대화 진행중인 쿠팡, 교섭거부 '실익없다' 판단
포스코 산재 다발 사업장 오명 부담에 교섭 요구 제한적 수용
“진짜 사장 나와라” 원청사 교섭 요구 봇물..안...

[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10일 포스코와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이 가장 먼저 하청·용역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며 교섭 절차에 들어갔다.

노동계와 법조계에서는 두 기업이 그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돼 온 산업재해 사망 사건과 관련해 원청 책임 논란으로 인해 곤혹을 치뤄왔다는 점에서 대외적인 이미지를 고려해 곧장 교섭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은 노란봉투법 제정 이전에도 산업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원청에 대한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하는 판례들을 쌓아왔다.

노란봉투법 1호 기업은 포스코·쿠팡

포스코는 10일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이 제기한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공고문에는 금속노련이 교섭을 요구했다는 사실과 함께 다른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 등을 명시했다. 쿠팡 물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도 같은 날 한국노총 전국택배산업노동조합이 제기한 단체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노란봉투법은 교섭을 요구받으면 이를 공고해 다른 하청 노조 등이 공동 또는 단독으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포스코는 해당 공고가 33개 하청 노조의 위임을 받은 노조의 교섭 요구를 공고한 것이라며 향후 실질적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서는 법적 판단을 받아 교섭할 계획이라고 선을 그었다. 33개 하청 노조가 모두 교섭권이 있는지는 별도로 따져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용역 노동자라도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하는 경우 교섭 의무를 부여한 것이 핵심이다.

다만 정부는 교섭 대상 여부를 둘러싼 노사 간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의 교섭 의무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했다.

노조가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용자인지 여부를 두고 이견이 발생할 경우, 중앙노동위원회가 해당 기업이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을 행사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교섭 대상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노동위원회는 사건 접수 후 최장 20일까지 교섭 의무 인정 여부에 대한 심사를 진행한다.

이 절차를 통해 원청이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기업에는 노조와의 교섭 의무가 발생하며, 사측이 교섭을 거부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법원 하청 노동자 안전문제 원청 사용자성 인정

그러나 두 회사가 중노위 판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교섭 요구를 수용한 것은 법원이 하청 노동자의 안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해 온 판례 흐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법원은 노란봉투법 제정 이전에도 작업 방식이나 설비 운영, 작업 일정, 안전관리 체계 등 노동자의 생명·안전에 직결되는 영역에서 원청이 실질적으로 통제권을 행사한다고 판단될 경우 사용자성을 인정해 왔다.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은 현대제철 사건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가 제기한 ‘산업안전’ 관련 교섭 요구에 대해 ‘사업장의 설비·작업 방식·작업 일정 등 주요 안전 요소를 원청이 지배·통제하고 있다면, 법령상 도급인의 안전조치 의무라는 이유만으로 지배력을 부인할 수 없다’며 원청인 현대제철에 교섭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화오션 사건에서도 법원은 노동안전 의제와 관련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두 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령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안전조치를 이행했을 뿐 하청업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스코의 경우 제철소 내 협력업체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산업안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지난해 민주노총이 공개한 ‘포스코 2016~2025 중대재해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포스코 산하 포항제철소 및 광양제철소 등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해 총 5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이중 87.7%에 속하는 50명이 하청업체·외주·계열사 소속 노동자다.

쿠팡 또한 마찬가지다.고용노동부가 지난해 쿠팡 연석청문회를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현황’ 자료를 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1월부터 작년 11월까지 쿠팡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등 3곳에서 일하다 숨진 물류센터 노동자, 택배기사는 모두 23명에 달한다.

특히 쿠팡은 현재 배송 노동환경 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진행 중인 점도 교섭 요구를 수용한 배경으로 거론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환경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조의 교섭 요구를 거부할 경우 불필요한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10일 0시에 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이 접수돼 내부 검토 끝에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며 “공고문에도 적시했듯이 향후 교섭권이 있는 노조인지 여부는 따로 다퉈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진짜 사장 나와라” 원청사 상대 교섭 요구 봇물

노란봉투법 시행과 함께 노동계의 교섭 요구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하청·비정규직 노조들이 원청 기업을 상대로 대규모 교섭 공문을 발송하는 등 원청사를 대상으로 한 교섭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앞서 민주노총은 약 13만7000명 규모의 하청·비정규직 조합원이 원청 기업을 상대로 일제히 단체교섭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조직적인 대응에 나선 상태다.

교섭 요구는 제조업 대형 사업장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자동차·조선·철강 업종에서는교섭 요구를 수용한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주요 원청 기업을 상대로 하청 노조들이 임금 격차 해소와 고용 안정 등을 요구하며 교섭을 신청했다. 물류·유통 분야에서도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뿐 아니라 CJ대한통운 등 택배사 하청 노조가 원청 기업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교섭 요구는 제조업과 물류 분야를 넘어 공공·서비스 영역으로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와 백화점·면세점 판매 노동자 노조 등도 원청 기관이나 브랜드사를 상대로 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교섭 의제 역시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경영상 의사결정 영역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일부 노조는 사업부 매각 반대나 배치 전환 문제 등 경영 결정 사항을 교섭 의제로 제시하며 필요할 경우 쟁의행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과 교수는 “현장 노사 담당자들은 교섭 절차를 어떻게 개시해야 할지조차 감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공문을 어디로 보내야 하는지, 교섭 단위를 어떻게 설정할지 등 실무적인 부분에서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어느 제도가 도입되든 시행 초기에는 혼란이 따르기 마련”이라며 “정부는 행정지침과 감독을 통해 보완하고 노사는 협의를 통해 각자의 교섭 관행을 만들어 가면서 결국 현장에서 해법을 찾아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민 (jm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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