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대구여행 2題…측백나무 숲과 달성토성

현경숙 2026. 3. 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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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오래된 아름다움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과 관음사[사진/임헌정 기자]

(대구=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 오래된 것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어서일 것 같다.

천연기념물 1호 도동 측백나무 숲과 달성토성을 향해 옛것을 찾아 떠났다.

숲은 추위를 견디는 인내의 고귀함을 말하고 있었다.

달성토성 산책길을 걷는 시민들의 발밑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도동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됐던 까닭은?

설악산, 제주 성산 일출봉, 진돗개, 속리산 정이품송 …. 대표적 천연기념물들이다.

천연기념물은 역사적, 경관적, 학술적 가치가 커 법률로 보호하는 소중한 자연 자산이다.

동물, 식물, 지질, 천연보호구역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은 1962년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됐다.

쟁쟁한 유산들을 젖히고 이 숲이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됐던 이유는 무엇인가.

측백나무 숲 입구[사진/임헌정 기자]

도동 측백나무 숲은 그리 크지 않다.

동대구역에서 팔공산 쪽으로 20분쯤 차를 타고 가면 불로천을 건넌다.

측백나무 숲은 불로천 옆 작은 야산인 향산에 자리 잡고 있다. 향산은 측백나무로 덮여 있었다.

'향기 나는 산'이라는 뜻의 이름은 측백 향에서 비롯됐다.

소나무, 편백, 향나무 등 여러 침엽수와 함께 측백나무도 강력한 천연 항균 물질인 피톤치드를 내뿜는다. 측백 향은 상쾌하면서 맑고 은은하다.

측백나무 숲은 면적이 약 3만5천㎡이다. 향산 절벽에 수고 5∼7m의 측백나무 1천400여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 중 700여 그루에 달하는 성년 목은 수령이 수백 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고 수령은 약 600년으로 여겨진다.

측백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도동 숲의 존재로 인해 한국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연리지[사진/임헌정 기자]

또한 향산 일대는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측백나무의 자생 남방한계선으로 인식됐다.

이 숲이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됐던 것은 이 숲의 식물 지리학적인 중요성과 역사·문화적 의의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측백나무 숲이 별로 없다.

안동 구리 측백나무 숲, 단양 영천리 측백나무 숲, 영양 감천리 측백나무 숲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 내 수령 300년가량의 측백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이 중에서 도동 숲이 가장 크다.

역경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절개의 표상

향산은 높이 100m, 길이 600m가량의 작은 산이다.

활엽수들이 잎을 떨군 겨울, 향산의 서쪽 면 절벽에는 오직 측백나무들만이 푸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적힌 글귀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 松栢之後凋,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를 떠올리는 장면이다.

추사는 제주도에 귀양살이 갔을 때 곤궁에 처한 자신을 저버리지 않고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송백에 비유했다. 백(柏)은 흔히 측백나무로 풀이된다.

향산의 측백나무들은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함의 상징으로 거론된다.

향산은 척박한 석회암 지대였다.

흙 한 줌이 귀한 석회암 바위틈, 햇볕이 별로 들지 않는 서쪽 절벽 면에서 측백들은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나무들은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기 위해 위로 자란다.

향산 절벽에는 서쪽에서 들어오는 빛을 조금이라도 더 쬐기 위해 수직이 아니라 서향으로 수평에 가깝게 가지를 뻗은 측백들도 있었다.

측백나무는 높이 20m, 직경 1m까지 자랄 수 있다. 하지만 도동 숲의 측백들은 키나 둘레가 이보다 훨씬 작았다.

물과 햇볕이 풍부하지 못한 서식 환경 탓이다.

조선 시대 대학자인 서거정은 대구의 절경 10곳을 꼽으면서 '북벽향림', 다시 말해 도동 측백 숲을 여섯 번째 경치라며 예찬했다.

옛 벽에 푸른 향나무 창같이 늘어섰네 / 사시로 바람결에 끊이잖는 저 향기를 / 연달아 심고 가꾸어 온 고을에 풍기네.

서거정의 칠언절구 '북벽향림'을 노산 이은상이 번역한 시이다.

향산 기슭에 있는 관음전[사진/임헌정 기자]

'향산 칠색' 힐링 코스

측백나무 보호를 위해 향산은 출입이 금지돼 있다.

대신 향산 주변으로 산책길 7개 코스가 나 있어 도동 숲 둘레를 거닐 수 있다.

숲을 중심으로 도동 문화마을이 조성돼 있었고 인근에는 백원서원, 도동 시비동산, 관음사, 문창공영당, 대구 불암고택, 용암산성, 불로동 고분군, 신숭겸장군 유적지 등 명소가 빼곡했다.

향산 기슭의 관음사는 신라 시대 지어진 천년고찰이다.

백원서원은 조선 시대 지극한 효행으로 존경받았던 서시립 선생을 기리는 곳이다.

'도동'(道洞)이라는 지명은 사람의 도리를 실천했던 그에게서 유래했다.

측백나무 숲과 불로천[사진/임헌정 기자]

도동마을 입구에는 수령 250여 년의 회화나무와 120여 년의 느티나무 가지가 이어진 연리지가 수호신처럼 서 있었다.

종이 다른 나무 사이의 연리지는 흔하지 않다.

단독 수목에서도 보기 어려운, 크고 멋진 수형을 만들어낸 두 나무는 공존의 미학을 증명하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북방계 식물의 자생 남방한계선은 점차 북상하고 있다.

대구 특산물이었던 사과의 재배지가 강원도 휴전선 부근까지 올라간 지 오래다.

측백나무 숲도 온난화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도동 숲의 수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염려도 없지 않다.

국가유산청은 천연기념물과 문화재에 붙였던 지정번호를 몇 년 전부터 대외적으로 공식 사용하지 않고 있다.

고유한 가치와 정체성을 가진 문화재에 번호를 매김으로써 자칫 문화재를 서열화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도동 숲의 푸르름이 온난화를 이기고 지속돼, 이 숲이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됐던 사실이 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달성토성과 대구 시가지[사진/임헌정 기자]

2천년 전 원형을 간직한 달성토성

산성, 읍성의 경우 전국 곳곳에 그 형태나 터가 제법 남아 있지만 토성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흙은 유실되거나 인위적으로 무너뜨리기 쉬운 탓이다. 인구가 밀집한 도심에 건재한 달성토성의 존재는 놀라웠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는 신라 첨해이사금 때인 216년 달벌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기록과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토대로 학자들은 달성토성이 늦어도 4세기쯤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상화 시비[사진/임헌정 기자]

달성토성은 남부지방에 세워졌던 초기 성곽의 전형으로,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성 높이는 안쪽이 4m 정도, 둘레는 약 1.3km이다. 성벽의 밑너비는 20∼30m이다.

성곽은 낮은 구릉의 자연 지형을 살려 쌓았다. 흙 성의 성벽 위는 시민들의 산책로로 변모해 있었다.

산책로를 한 바퀴 걸어보면 이 성이 왜 대구의 '심장'으로 여겨지는지 이해하게 된다.

성은 대구 분지의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 요충지였다. 성안에는 조선 전기까지 군대의 창고와 우물, 연못이 있었다.

달성토성은 현재 공원으로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달성공원 내 사슴들[사진/임헌정 기자]

달성공원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공원의 품격을 웅변하는 아름드리나무들은 봄을 앞두고 조경사들의 전정 작업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기온이 올라가고 해가 길어지면 나무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 생장을 시작한다. 가지에 물이 돌기 전에 전정해야 나무가 입는 상처와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달성공원은 사람과 나무에만 안식처가 아니었다.

동물들도 쉬고 있었다. 이곳 동물원은 1970년 개장했다.

이후 달성공원은 대구의 대표적 가족 나들이 장소로 사랑받았다.

달성공원에서 찍은 사진 몇 장 없는 대구 시민이 드물 정도로,이곳은 추억의 공간이다.

하늘에서 본 달성토성[사진/임헌정 기자]

발굴과 복원 앞둔 대구의 뿌리

달성토성은 대구의 기원, 뿌리 같은 곳이다.

대구를 뜻하는 달구벌이라는 명칭은 이 달성에서 유래했다.

삼국 시대 이전 삼한 시대부터 달성은 대구 분지를 지배했던 정치 세력의 근거지였다.

조선 시대에는 경상감영이 이곳으로 옮겨오기도 했다.

공원에는 경상감영의 정문이었던 관풍루, 광복 후 한국 문단 사상 최초로 세워진 시비인 이상화 시비, 어린이 헌장비가 있다.

달성토성을 복원하고, 낡고 좁은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동물원은 곧 이전될 예정이다.

이전이 끝나면 달성토성의 역사적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발굴 작업이 본격화된다. 성벽 일부에서는 이미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달성토성 주변은 활력이 넘친다.

토성 바깥에는 성벽을 따라 약 700m의 구간에 매일 새벽 장이 선다.

대구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인 서문시장은 하루 종일 인파로 북적인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이 유통업계를 장악한 요즘, 서문시장은 보기 드물게 번성하는 재래시장이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6년 3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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