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위장 통째 잘라내…그래도 100km 산길 간다 [산지컬 100]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_ 편집자

"저는 위장이 없어요."
위암이었다. 국가에서 2년에 한 번씩 검진을 받으라고 아무리 독촉해도 회사일이 너무 바쁜 나머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을 미뤘던 검진을 받자, 암이었다. 일반 병원에서 검진했는데 의사의 얼굴이 어두웠다. 심각하단다. 전이 여부가 중요한데, 이건 무조건 전이가 되어 있을 수밖에 없을 거란 진단이었다. 3기, 말기다. 혹의 크기는 6cm 정도 됐다. 또 암이 발생한 곳이 위장 아래쪽이면 부분절제술로 가능한데 위쪽이라 전체를 절제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을 일단 해보긴 해야겠지만 마음준비를 하라는 진단을 받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보다 일단 낫는다고 해도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산을 못 갈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어찌됐건 솔직한 마음이었다.
대구의 큰 병원을 갔다. 8월에 암을 발견했는데 10월이 넘어야 수술 날짜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검진 당시 전이가 되기 직전의 경계선까지 발전된 상태였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는 게 좋기에 날마다 애가 탔다. 그러다 추석 전에 수술을 잡아뒀던 어느 환자가 추석을 가족과 함께 지낸 뒤 수술을 받겠다고 해서 자리가 났다. 천운이었다. 그 환자는 아직 초기 단계라 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수술을 마쳤다. 다행히 경과는 좋았다. 재활이 시작됐다. 재활이 끝나도, 남들은 그를 이제 산에서 볼 수 없을 거라고 여겼다. 실제로 위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당분간 격한 운동을 할 수 없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도 식사는 계속 조절해야 한다.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적게, 조금씩 자주 먹어야 한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극한 등산에선 치명적인 단점이다.
하지만 그는 산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고작 3개월 만이다. 당일산행으로 산 하나를 가볍게 오르기 시작하다가 점차 20~30km대 종주코스로 늘렸고, 어느 순간엔 1,600km에 달하는 땅통종주를 한 번에 50km씩 걸으면서 완주하는 수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해는 그가 암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는 5년차다. 아직 의사의 진단은 받지 않았지만 미리 완치를 자축해 목표도 세웠다. 다시 한 번, 100km 이상의 장거리 종주에 도전하는 것.

구미 '금오산 지킴이'로 산 입문
산꾼 이상만씨는 구미가 키웠다. 그는 구미에서 태어나 자랐고, 일했으며, 지금도 살고 있다. 산도 구미에서 배웠다. 동네에서는 '두건'이란 별명으로 통한다.
"산에서 쓰는 닉네임도 '두건'입니다. 별 뜻이 있는 건 아니고 큰아버지가 지어줬어요. 제가 태어나던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상중이라 모두가 두건을 쓰고 있는 걸 보고 저를 '두건이'라고 부른 게 시작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고향 마을에선 저를 본명으로 부르는 사람들보다 '두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어릴 때는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오래 달리기도 퍽 잘했고 운동회가 열리면 1, 2등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강했다. 하지만 이 선천적인 건강은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혼자 자취하는 삶을 시작해 쭉 사회생활까지 이어졌다. 잘 해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영양섭취가 부실했고, 대학교를 다니면서는 담배도 배웠다. 운동도 안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니 건강이 상할 정도가 됐다.

"컴퓨터 모니터 관련 직종에서 오래 일했어요. 당시 삼성에 버금가는 회사였죠. 해외 제품보다 값은 조금 비싸도 압도적인 품질이라 잘 팔렸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해외 제품들이 단가도 싼데 품질도 어느 정도 흉내를 내기 시작하면서 회사가 급격히 기울더라고요. 다행히 관련 부품회사로 이직해서 거기서 오래 직장생활을 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네요. 지금은 은퇴하고 소일거리 정도 하고 있고요."
일을 제법 열심히 했다. 그러다보니 40대 중반, 잘 때 속이 아파서 잠을 못 이룰 정도가 됐다. 약을 지어서 한 달 정도 먹다 보면 괜찮아졌다가 또 다시 재발하곤 했다. 어느 날 한의원을 찾아가니 "오장육부가 다 약하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면서 "전신운동과 오장육부 강화에 최적인 건 등산"이라는 처방을 내려줬다. 반신반의했지만 마침 운동을 한 번 해봐야 할 때란 생각도 있었기에 꾸준히 등산을 다녔다. 그 전까진 사람들이 왜 그 주말에 귀한 시간을 쪼개어 힘들게 산을 오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6개월을 등산하니 불편하던 속이 말끔하게 나았다.
이제 이해가 됐다. 2012년이다. 구미의 산을 싹싹 긁어먹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당장 동네 뒷산인 비봉산을 운동 삼아서 매번 올랐고, 대표 명산인 금오산은 '금오산 지킴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모든 등산로를 다 다녔다. 그때쯤이 막 등산지도앱 '트랭글'이 생겨서 산꾼들 사이에 이슈가 될 때였는데 앱 출시 첫 해 금오산 주인배지를 달았을 정도로 터를 잡았다. 그렇게 산을 다니는데 확실히 몸이 산을 '잘 받는 체질'이었다.

"1~2년 정도 산을 다녀도 체력이 영 좋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3~4개월만 꾸준히 산을 다녀도 날다람쥐처럼 산을 누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 후자 쪽이었어요. 금방 몸이 좋아지더라고요."
산에 가서 영 힘든 경험만 하면 산이 싫어지고, 안 가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올라도 별로 힘들지 않고 기분이 상쾌하니 점점 산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구미의 산을 오르며 내공이 충분히 쌓이자 좀 더 힘들고 멋진 산을 타고 싶다는 욕망도 커져갔다.
깁스하고도 80km 걸어…"나는 골산 마니아"
그러다가 한 번 혼쭐이 났다. 설악산을 갔다. 오색에서 시작해 공룡능선을 넘어서 설악동 소공원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는데, 공룡에 들기도 전에 희운각에서 다리에 쥐가 났다. 근육이 제대로 안 잡힌 초보였기에 생긴 문제였다. 그래서 공룡을 포기하고 천불동으로 내려가는데 그 길이 그렇게 길고 힘들 수 없었다. 정신으로 이겨내기 어려웠다. 앞뒤로 다리 아픈 줄 모르고 걸어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긴 악몽의 시간을 통해 절치부심했다. 진짜 몸을 제대로 만들어보자고 운동을 했고, 당시 대부분 사람들이 그랬듯 백두대간을 갔다.

"12구간으로 완주했어요. J3클럽 14차 대간팀을 어쩌다보니 같이하게 돼서 끝까지 했네요. 그렇게 백두대간을 처음 걸어보니까 진짜 좋더라고요. 그 이후 북진도 해보고, 남진도 해봤죠. 그러면서 산의 세상이 넓어졌어요. 우리나라 국토에 이런저런 산줄기들도 많고, 여러 산을 엮은 종주코스도 많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걸었던 것 같아요."
당시 산에 다니던 그를 사람들은 '암릉산행 마니아'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는 이 수식어를 꺼내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암벽등반이나 리지등반을 즐겨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란 설명이었다. 단지 백운대 정상부나 의상능선처럼 두 손을 써가면서 올라야 되는 암릉도 가리지 않고 좋아하며 올랐을 뿐이라 정확히는 '골산 마니아'가 맞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데 그땐 그랬어요. 생사를 오고가는 위기가 따르는 곳도 갔죠. 대둔산 용문골리지, 가야산 그리움리지 같은 코스들을 장비 없이 다녔어요. 설악산에서도 토왕폭 인근에 그런 벽을 타고 다니기도 했고요."

암릉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백두대간에서 자라났다. 대간을 타다보면 곧잘 암릉을 만날 수 있었다. 좀 위험한 곳은 대부분 우회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그는 호기심에 몇 번 직등을 해봤다. 그러자 바위 위에서 보는 환상적인 경치와 아슬아슬하게 오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사진도 그런 곳에서 찍어야 멋이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역치가 낮아지자 조금 더 위험한 곳도 서슴없이 다니게 됐다. 그러다 벽에서 오도가도 못 하고 벌벌 떠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난 이후로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산행은 절대 하지 않는단다.
"그 이후로는 그냥 꾸준히 산에 다녔을 뿐입니다. 한 번에 200km씩 일시종주하는 고난도 장기간 산행은 못 했습니다. 능력이 될지도 미지수지만 일단 시간이 없었어요. 평일에는 출근해야 됐거든요. 휴가를 며칠 쓸 수 있다지만 길게 쉴 순 없었어요. 그래서 최대 3~4일 정도 걸리는 종주들을 많이 했어요. 말하자면 '자잘한 종주'들이라고 할까요?"
가령 황금종주란 걸 걸었다. 백두대간 황악산부터 구미 금오산까지 이어지는 130km의 산길이다. 그런 종주들을 여럿 섭렵했다. 태극종주란 것도 설악, 태극, 영남알프스 등지에서 다 했다. 물론 3번의 백두대간 종주, 9정맥완주는 기본으로 깔아뒀다.

여기에 기맥, 지맥도 조금씩 하고 있는데 걷기 좋고 멋있다는 하이라이트 구간들만 섭렵해 두고 전체 완주는 좀 먼 미래의 목표로 남겨놓고 있다. 흐린 길들이 개척하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개발로 인해 동네 아파트나 도시, 도로를 지나는 경우가 너무 많아졌다. 한 번은 지맥을 타다가 갑자기 산골짜기에 나타난 공장에 도저히 우회할 길이 없어서 양해를 받고 지나갈 수 있을까 빼꼼 들여다봤다가 캡스가 울려 보안업체가 출동하는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다.
그렇게 건강에 좋은 등산을 열심히 10년 동안 빠지지 않고 했다. 산이 얼마나 좋으면 2017년 마창진 종주산행 때는 손에 깁스를 하고도 끝까지 걸었다. 그런데, 암에 걸렸다.
산악회에 2,000여 편의 산행기 남겨
앞서 말했듯 위암이었다. 그를 평소에 알던 지인들은 "그렇게 무소 같은 체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위암에 걸리냐"면서 놀랐다고 했다. 그는 "식습관이 전적인 문제"라고 반성했다. 골고루 먹지 않았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먹는 게 부실하면 답이 없단다.

"그래도 등산하기를 잘한 게 수술 후 회복이 기가 막히게 빨랐어요. 퇴원은 8일 만에 했고, 등산도 석 달 만에 다시 시작했죠. 물론 수술하기 전만큼 체력이 좋진 않아요. 택도 없죠. 그래도 일주일에 70km 정도 산행을 하니까 일반인 기준으로 보면 많이 걷는다고 봐야겠죠? 지금은 그 정도로 만족하고 있어요."
그는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사실 당연하지 않은 것이 있다. 수술 후 회복이 잘됐다고 해서 꼭 다시 등산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 병원에서 등산을 권유한다곤 하지만 의사가 생각하는 등산은 분명 둘레길 산책이나 뒷산 오르는 정도지 무박으로 수십km의 산길을 주파하는 고난의 행위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산에 가야 했단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해외 파견을 제안 받은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급여조건도 좋았고 아이들 유학도 보내준다고 했죠. 그래도 고민 끝에 안 간 게 산 때문이었어요. 뉴욕이나 멕시코에도 물론 산이 있지만 우리나라 산을 오르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로 산을 좋아합니다. 산은 두 다리가 움직이기만 한다면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100살이 되어도 걸을 수만 있다면 오를 겁니다."

그래서 수술을 받은 후에도 곧 기운을 차려 땅통종주를 완주했다. 이름대로 해남 땅끝부터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걷는 길이다. 약 1,600km 된다. 한 번에 50~60km씩 걸어서 완주했다. 다른 종주코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라 산행기를 상세히 썼는데, 사람들이 '후속 연재를 늘 기대하고 잘 보고 있다'고 연락을 줘서 보람도 느끼고 행복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산을 오르는 것만큼 산행기를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여러 산악회 게시판에 약 2,000편의 산행기를 남겼다. 산행의 완성이 산행기라든지 그런 고루한 원칙주의 때문에 타성적으로 쓰는 게 아니다. 본질적인 이유는 재미다. 다른 산과 에피소드와 추억을 공유하고, 또 그렇게 공유한 정보를 남이 보고 길을 따라 걷는 걸 보는 게 재밌고 좋았다. 그래서 늘 산행기를 쓸 대상지를 선정하는 데 고민을 기울인다. 남들이 다 가본 곳이 아니라 누가 봐도 흥미로운 새 코스, 새 산을 찾아서 오르려고 한다.
산행기를 많이 써둔 탓에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글을 통해 그 산에 있는 바위나 봉우리에 나름의 이름을 붙여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지자체가 어떻게 봤는지 그 산봉우리에 정자를 지어놓고는 이씨가 지은 봉우리 이름을 따서 정자 이름을 붙여놨다고 한다.
100km 이상의 장거리 산행을 꿈꾼다
수술로 예전만 못 하다지만 여전히 산에선 힘든 줄 모른다. 산에 가는 날 아침에 일어나는 것, 신발 신기 직전이 가장 힘들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이게 꽤 귀찮고 힘들게 다가온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산에 가면 공기를 맡는 순간 꾸깃꾸깃했던 마음이 확 펴진다. 걷는 것도 설레고 땀이 나는 것도 좋고 가파른 경사에 붙으면서 장딴지가 쭉 당겨오는 긴장감마저도 사랑스럽다. 여름 숲속 공기, 화려한 조망이 터지는 능선, 깔린 운해, 걷다가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일출이나 일몰이 터지는 그런 멋진 순간들이 산에 있다. 그래서 산이 생활이 됐고, 친구가 됐고, 주치의가 됐다.
"옛날엔 두 달에 한 번씩 100km 이상 산행을 했어요. 한 번 하면 질리는데, 그게 딱 초기화되고 몸이 근질거리는 간격이 두 달이더라고요. 그런 산행은 2박을 넘어가죠. 하루 무박으로 50~60km 걷는 것과 2박을 넘어가면서 걷는 장거리는 천지차이입니다. 수술한 이후로는 최대 80~90km까지만 걸어봤고 100km 이상의 장거리는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래서 은근슬쩍 "100km 이상의 산행이 목표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목표'라고 딱 잘라 말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막연한 기대감'이란 말로 그 자리를 채웠다. 목표로 삼게 되면 이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지금은 그런 강박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
과거엔 실제로 그랬다. 아침마다 집 뒤에 있는 백마산을 올랐고, 퇴근하고 또 올랐다. 체력 유지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유산소운동만큼 무릎관절 강화에도 신경을 썼다. 스쿼트를 꾸준히 하고 고무밴드를 이용해 TV를 보며 휴식하는 순간에도 강화운동을 했다. 그래서 지금껏 여러 중장거리 산행을 스틱 없이 했어도 어디 하나 다친 곳이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극한 도전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는 것보다 사람들과 같이 걷는 것의 소중함과 감사함이 더 짙다. 그래서 도전은 막연한 기대 정도로 남겨두고, 일단은 산악회에서 단체로 진행하는 정맥 종주팀에 힘을 보태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체력 관리를 느슨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도 계속 몸을 만들고 있다. 오히려 더 철저하다. 이젠 수술의 여파로 올바른 식습관을 들이느라 힘쓰고 있다. 생무, 생당근, 우엉, 말린 표고버섯, 무청시래기까지 다섯 가지 채소를 달여서 식간마다 먹는다.
그는 그저 그렇게 살다보면 기회가 올 것을 이제 안다. 처음 위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앞으로 등산은 힘들 것이란 말을 들었지만, 아니었기에.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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