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함께하는 것…산행은 조직의 심장과 혈관을 다지는 기회" [박희성 KR산업 대표]

박희성 KR산업 대표는 계룡건설에서 평생을 바친 건설맨이자 산과 길로 경영을 배운 CEO이다.
그의 산에 대한 이력은 화려한 해외 원정이 아니다. 박 대표의 인생 첫 산행은 고교시절 보이스카웃 활동으로 오른 계룡산이 시작이었다. 그때 그가 배운 것은 '정상' 이 아니라 '질서'였다.
"산행은 단체 생활의 축소판입니다. 앞서가는 사람만 빠르다고 끝이 아니지요. 뒤처진 한 명을 기다리는 인내, 진행을 늦춰도 안전을 확보하는 판단, 그리고 원칙이 흔들릴 때 사고가 난다는 경험을 했습니다."
30여 년을 계룡건설에서 보낸 '건설맨'
박 대표는 계룡건설을 창업한 고 이인구 의원이 제13·15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이 의원을 보좌했다. 공식 직함을 가진 정치 보좌관이나 정치인이 아니었지만, 입법·예산·정책 조율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현장에서 접하며 국가 조직과 공공 의사결정의 메커니즘을 몸으로 익혔다. 국회라는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그는 "정치를 배운 게 아니라, 조직이 어떻게 움직이고 이해관계가 어떻게 조정되는지를 배웠다"고 했다. 이 경험은 이후 그의 경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공공 발주 구조에 대한 이해, 정부·공기업과의 협업 감각, 그리고 무엇보다 말보다 문서와 절차, 관계보다 구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었다. 건설 현장에서 쌓은 '바닥의 감각' 위에 국회에서 본 '위의 구조'를 얹으면서, 그의 경영은 현장과 제도를 동시에 읽는 시야를 갖게 됐다. 국회 경험은 그를 정치인이 아닌 공공성과 책임을 아는 전문경영인으로 단련시켰다.
박 대표는 30여 년을 계룡건설산업에서 보낸 정통 건설맨이다. 1989년 계룡건설 입사 후 경영정보실장, 개발본부장(부사장), KR유통 대표 등을 거쳐 2024년 1월 KR산업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요즘 CEO 이력서에서 흔치 않은 경로다.
그는 CEO가 되어서도 스스로를 '계룡맨'이라 부른다. 계룡에서 배우고, 계룡에서 성장했고, 계룡에서 CEO가 됐기 때문이다.
경영은 속도가 아니라 균형
박 대표는 "경영은 속도가 아니라 균형이다. 정상을 지향하되 무리하지 않는 것, 한 걸음씩 확실히 디디는 것"이라 강조한다.
한국 건설업이 양적 성장과 속도 경쟁에 몰두하던 시절, 계룡은 비교적 느리고 보수적인 길을 걸었다. 결과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단했다. 박 대표의 리더십도 결이 비슷하다. 카리스마형 CEO라기보다 책임형 CEO, 신뢰받는 CEO다.
그런 박 대표에게 산은 기업 경영에 이상적인 기본과 골격을 갖추게 했다. 그는 산이 지닌 매력에 빠져든다고 했다.
박 대표는 "산은 휴식이 아니라 검증의 공간이다"며 "산에 오르면 내가 요즘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 그대로 나온다"고 했다. 특히, 인생의 결단이나 회사의 중요한 판단을 할 때는 설악산 봉정암, 마니산처럼 '역사가 서려 있는 산'을 찾는다고 했다.

박 대표가 즐겨 찾는 산행의 종착지는 정상 전망대도, 정상석도 아니다. 그의 발길은 늘 불상이 없는 법당 적멸보궁에서 멈춘다. 정암사, 통도사, 법흥사, 상원사, 봉정암 5대 적멸보궁이다. 불상 대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곳에서 명상에 집중한다. 그가 이곳에서 얻는 것은 위로가 아니다.오히려 질문이다.
지금의 판단은 욕심에서 왔는가, 원칙에서 왔는가. 이 선택은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가. 되돌아올 길을 남겨두고 있는가. 그는 이를 "경영의 여백"이라 했다. 경영은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일이라 했다. 기업 대표가 산을 찾는 건 흔하지만, 적멸보궁을 찾는CEO는 드물다.
분기별로 직원들과 워크숍 산행
박 대표는 분기별로 직원들과 '워크숍'을 겸한 산행을 한다.
그는 이를 조직의 심장과 혈관을 다지는 기회로 삼는다. 박 대표는 "건설은 팀 스포츠다. 현장은 늘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한 사람이 빠르면 전체가 빨라지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흔들리면 전체가 위험해진다"고 강조한다.
그의 산행법도 그 구조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다. 호흡이 맞지 않으면 뒤가 갈라지고, 보폭이 다르면 팀이 찢어진다. 정상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함께 내려오는 것이라는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조직 산행은 이벤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건설 현장을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 조직의 체력을 길러내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KR산업의 과제를 이렇게 정의한다. 한국도로공사 자회사 시절부터 축적된 도로 유지관리 노하우를 계승하면서, 민영화 이후 종합건설사로서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관리·운영도 마찬가지다. 그의 리더십은 '기본 원칙 준수Base'를 강조하면서도 '과감한 혁신Change'을 주문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가 제안한 산업 처방도 '현장형'이다. 노후 인프라 개량·유지관리 재투자를 위한 장기 재원 장치, 자재비·인건비를 반영한 적정 공사비 현실화, 건설정보모델링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친환경·융복합 기술 적용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이다. 그가 그리는 미래도로는 차량과 소통하는 디지털 플랫폼C-ITS·Cooperative Intelligent Transport Systems(차세대 지능형 교통체계 등)으로, 휴게소는 전기·수소 충전 거점의 그린 모빌리티 허브로 확장하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그린 모빌리티 허브'로
박 대표의 철학이 대중에게 가장 쉽게 전달된 무대는 휴게소이다. 그는 휴게소를 "여행 중의 일부가 되는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정의한다.
대표 사례가 횡성휴게소다. 횡성 한우를 활용한 '횡성 한우 떡더덕 스테이크'는 "일부러 들르는 휴게소"를 만들었다. 지역 명물을 활용해 전국 휴게소 맛집 평가 1위를 달성했다. 비결은 레시피가 아니라 운영의 구조였다. 현장 출신 CEO가 맛을 '감각'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박 대표는 "모든 디테일이 합쳐지면 '한 번 맛있다'가 아니라 '계속 맛있다'가 된다"며 "만드는 사람이 운영까지 고민할 때, 품질의 차이가 생긴다"고 했다.
박 대표를 '산을 좋아하는CEO'라는 흔한 수식어로 묶기 어렵다. 그에게 산은 취미가 아니라 판단 장치요, 임직원과의 산행은 복지가 아니라 조직을 다지는 훈련이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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