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깨자, 생리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소녀가 없도록[#아시아여성]

김서영 기자 2026. 3. 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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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인도- 월경, 침묵과 금기를 깨다
#인도여성 #ChuppiTodo(침묵을 깨자)
그래픽 | 이아름 기자
오늘날 아시아에서 개별 국가 여성들의 목소리는 초국적 공간인 소셜미디어에서 해시태그(#)를 타고 확산한다. 혼인관계의 성평등, 월경권, 전시성폭력 등에 관한 수많은 목소리들은 하나하나의 해시태그로 묶이며 의제로 발전한다. 그렇게 형성된 해시태그는 소셜미디어 바깥에서 실재하는 사회적 움직임으로 나아간다. 해시태그는 단순히 같은 주제를 모아주는 본래 기능을 넘어 구호로 작동한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해시태그라는 렌즈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성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을 들여다봤다. 일본의 여성들은 구시대적 가족 규범과 맞서고, 인도 여성들은 종교적 금기가 삶을 제한하는 현실과 싸운다. 내전의 참상과 전시 성폭력의 문제를 고발하는 미얀마의 여성들, 여성착취 구조에 대항하고 피해자들을 돕는 태국의 여성들도 만났다. 각국 여성들이 처한 맥락은 한국과 다르지만 중요한 건 모두가 삶 속에서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고민한다는 점이었다. 그 공통의 고민 속에서 ‘#아시아여성’이라는 해시태그를 길어올릴 수 있었다.

“월경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침묵을 깰 때 인식이 시작되고, 인식이 시작되면 자신감이 자라납니다. 그래서 ‘침묵을 깨자(Chuppi Todo)’는 곧 용기를 상징합니다.”

14억 인구의 인도는 ‘월경 빈곤’과 월경 보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꼽힌다. 가부장적이고 종교의 영향이 강한 인도에는 월경과 관련된 여러 금기(터부)가 있다. 사원에서 여성을 출입금지하는 것은 물론 보수적인 가정에서는 월경 중인 여성을 내쫓기도 한다. 월경을 지칭하는 ‘비밀스러운’ 표현도 넘쳐난다. 월경 때문에 학교를 관두는 소녀들이 많다는 게 무엇보다도 큰 문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월경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는 여성들이 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인도 오디샤주의 월경권 활동가 파얄 파텔(31)을 이달 초 e메일과 메신저로 인터뷰했다. 파얄 파텔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고향 오디샤주에서 지역사회 여성들에게 무상으로 월경 관련 강의를 하고 재사용 가능한 생리대를 보급하는 활동을 이어 와 ‘패드 걸(pad girl)’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여성들이 월경 기간 낡은 천, 신문지 등을 사용하고 월경에 관한 문제를 알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실태를 목격하면서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됐다. 파텔은 “침묵을 깨자”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월경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생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여성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금기와 무지, 그리고 수치가 여전한 문화
인도 오디샤주에서 월경 빈곤에 대한 활동을 하고 있는 ‘패드 걸’ 파얄 파텔(왼쪽에서 6번째). Soumi Das. UNICEF 2024 . 유니세프 페이스북

- 인도에는 월경과 관련해 어떠한 사회적·종교적 금기가 존재하나요?

“인도에서는 월경이 여전히 사적이고 때로는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됩니다. 특히 시골과 부족 공동체에서 그렇습니다. 월경 기간 사원이나 절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일부 가정에서는 따로 떨어져 앉거나 일상 활동을 하지 말라고도 합니다. 동시에 월경을 존중하는 문화도 있긴 합니다. 오디샤주에서는 어머니 지구의 월경을 축하하고 존중하는 의미로 농업 활동이 3일 동안 멈춥니다. 월경이 단지 불결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창조의 한 부분임을 보여줍니다.”

- 인도에서는 월경을 우회적으로 지칭할 때 어떤 표현을 쓰나요?

“‘날짜가 왔다(Date aa gaya)’, ‘달이 진행 중(Mahina chal raha hai)’, ‘문제가 있다(Problem hai)’, ‘시간이 왔다(Time aaya hai)’, ‘매달 오는 것(Masikia)’ 등으로 언급합니다.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고 속삭이거나 제스처를 사용할 때도 있고요.”

- 어떤 계기로 월경에 관해 알리는 일을 시작했나요?

“저는 작은 부족 출신인데요. 마을을 방문하면서 여성들이 월경 기간 낡은 천이나 심지어 신문을 사용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많은 이들이 부끄러움 때문에 옷을 비밀리에 말리기도 하고요. 오늘날에도 몇몇 시골과 부족 공동체에선 기본적인 재생산 지식조차 부족해, 많은 여성들이 요도와 질이 다르다는 것을 모릅니다. 출혈이 계속되는데도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처럼 위생과 재생산 보건에 관한 인식이 매우 낮은 탓에 많은 소녀들은 자신의 몸에 관해 혼란을 안고 자라납니다. 이러한 풀뿌리 현실이 저를 공동체와 직접적으로 함께 일하도록 이끌었습니다. 21살에 월경 보건 인식 향상을 위해 인생을 헌신하겠다고 다짐했죠.”

- 교육의 중심 내용은 무엇인가요?

“강의에서는 월경과 관련된 생리학적 지식, 정상 출혈과 비정상 출혈의 차이, 위생 습관, 영양, 운동, 월경 용품의 종류, 안전하게 버리는 법 등을 다뤘습니다. 처음에는 여성들이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긍정적인 변화가 나왔습니다. 여성들이 수치심 없이 질문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됩니다. 혼란스러움이 명확함으로,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침묵이 대화로 바뀔 때 보람을 느낍니다. 단지 인식을 제고하는 게 아니라 힘을 갖는 것이거든요.”

- 월경에 대해 말하기 힘든 분위기 속에서 활동하면서 곤란을 겪진 않았나요?

“초창기에는 공격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월경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몇몇 사람들은 제 인성을 문제삼았어요. 제 미래와 결혼에 관해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공개적으로 말할 주제가 아니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주제야말로 곧 중요한 주제라고 믿습니다.”

열악한 월경용품·위생 시설…학업 중단으로 이어지기도
파얄 파텔이 인도 오디샤주에서 지역 여성들에게 월경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본인 제공

파얄 파텔이 지난 10년 동안 직접 목격한 것은 주로 오디샤주 시골 지역에 집중돼 있다. 그렇지만 인도 전체로 넓혀봐도 월경용품 접근성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인도 정부가 실시한 제5차 국가가정건강조사(2019~2021년)에서 위생적인 월경용품(생리대, 탐폰, 생리컵 등)을 사용하는 15~24세 여성의 비율은 77.3%에 그쳤다. 직전 제4차 조사(2015~2016년) 당시에 이 비율이 57.6%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4명 중 1명은 월경용품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도시 89.4%, 농촌 72.3%로 도농 격차도 크다.

또 인도에서는 매년 여학생 약 2300만명이 학교를 그만두는데, 열악한 학교 위생 시설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2023년 기준 인도에서 화장실이 없거나 매우 열악한 학교는 13%였다. 손씻기를 위한 물과 비누를 모두 갖춘 학교는 53%에 불과했고 손씻기 시설 자체가 없거나 물이 없는 학교도 25%에 달했다.

- 인도에서는 월경용품을 구하기 어려운 편인가요?

“2015년 이전까지만 해도 농촌 지역에서는 월경 때 낡은 천이나 마른 잎, 신문지 등을 사용하는 일이 흔했어요. 생리대에 관한 인식과 접근성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0년이 지나 뚜렷한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이제 많은 이들이 생리대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난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생리대를 살 능력이 없거나 지식이 부족해 여전히 깨끗하지 않은 천을 쓰는 여성도 있거든요. 특히 저소득 가정에서 생리대는 비싸게 느껴집니다. 몇몇 농촌 지역에서는 생리대를 찾기도 어렵고요. 남성 직원에게서 생리대를 구입하기 부끄러워하는 여성도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월경 빈곤은 단지 구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과 사회적 침묵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월경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맥락은 무엇인가요?

“이제 웬만한 학교에 화장실과 자판기, 쓰레기 처리 시설이 있다고는 하지만 밑바닥 현실은 다릅니다. 수도 시설이 일정하지 않거나,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거나, 자판기를 사용할 줄 모르거나, 교사가 월경에 관해 가르치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러면 여학생들은 도움을 요청하기 부끄러워집니다. 이러한 고통과 불편함이 출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한달에 4~5일 정도 학교를 빠지면 학업에 흥미도 잃고 자신감도 떨어지게 되고, 결국 학업 포기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월경 존엄이 교육과도 연결되는 것입니다.”

- 학업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건 큰 문제로 보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여학생들이 자신의 걱정을 누구와도 터놓고 상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망설이고, 학교에서도 불편하고, 사회에서도 비난당할 것이란 두려움이 있습니다. 때로는 어머니조차 딸에게 월경에 관해 설명하길 망설이니까요. 결과적으로 많은 소녀들이 초경을 혼란과 공포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침묵이야말로 깊이 내재한 문제고, 존중을 유지하면서 수치심을 없애는 게 과제인 것입니다.”

침묵을 깨자, 존엄을 되찾자
인도 오디샤주에서 월경 빈곤에 대한 활동을 하고 있는 ‘패드 걸’ 파얄 파텔(가운데). Soumi Das. UNICEF 2024 . 유니세프 페이스북

지난 1월말 인도 대법원은 월경 건강과 위생이 헌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생명권과 인간 존엄성 보장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한 활동가가 ‘정부는 여학생과 교육 기관에 생분해성 생리대를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고 청원한 것에 대한 판단이었다. 인도 대법원은 안전하고 저렴한 월경용품을 구할 수 없는 문제를 ‘월경 빈곤’이라 지적하며 이 문제가 여학생의 학교 출석률 저하와 중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또한 인도 대법원은 모든 교육 기관이 무료 생리대 외에도 여벌 속옷과 교복, 일회용 봉투 등을 비치해야 하며 성별 분리된 화장실을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판결이 인도 사회를 얼마나 바꿀지는 두고 봐야 한다. 월경용품 접근성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시골 지역에선 월경용품 보급 자체가 어렵다. 가격이 저렴해진다 하더라도 저소득 여성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월경을 수치스럽고 불경한 것으로 보는 시선을 어떻게 개선할지의 문제가 남는다.

- ‘침묵을 깨자’를 구호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마을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생리대 부족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침묵이었거든요. 많은 소녀들이 통증과 불규칙적 월경, 감염, 혼란 등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부끄럽단 이유로 말하지 않아요. 자신이 월경 중이라고 말하지 못하니 어떻게 도움을 청할까요? 그래서 ‘침묵을 깨자’는 메시지를 골랐습니다. 이 메시지는 사회를 향한 요청, 소녀들이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월경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침묵을 깰 때 인식이 시작되고, 인식이 시작되면 자신감이 자라납니다. 그래서 ‘침묵을 깨자’는 곧 용기를 상징합니다.”

-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것이 여성에게 왜 중요한가요?

“사고방식이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회가 월경을 불결하다고 생각한다면 여성들은 수치심을 느끼며 자랍니다. 자신감과 교육,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받지요. 그렇지만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제도적 뒷받침도 중요합니다. 학교에 깨끗한 화장실과 수도 시설, 쓰레기 처리 시설이 있어야 하고 교사도 주저없이 학생을 가르치도록 훈련돼야 합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자판기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진짜 변화는 긍정적 사고방식과 제도적 뒷받침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 인식 제고와 더불어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나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재사용이 가능한 저비용 생리대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을 하고 있어요. 일회용 생리대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했습니다. 이 생리대는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여성들의 자조모임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건강과 지속가능한 월경용품, 자연을 지키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인도의 모든 여성이 인식과 존엄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한 월경 선택지를 갖기를 바랍니다. ‘패드 걸’이라는 명칭은 수년 동안의 월경 존엄을 향한 싸움, 책임감, 헌신을 뜻하니까요.”

파얄 파텔은 인도 동부 오디샤주를 기반으로 하는 월경권 활동가다. 지난 10년 동안 지역사회 여성들에게 월경에 관한 기초적 지식을 가르치고 재사용할 수 있는 저렴한 생리대를 공급하는 일을 하며 ‘오디샤의 패드 걸(pad girl)’이란 별칭을 얻었다. 유엔여성기구와 유니세프도 파텔의 풀뿌리 활동을 주목한 바 있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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