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항뜨는 프랑스인, 히잡벗는 무슬림…외국인이 빠진 ‘찐 한국’의 경제학
병원서 링거 맞고 호텔서 ‘때밀이’
쇼핑 패턴도 변화…면세점 매출 줄때
다이소·편의점 등 동네 상점 매출↑
서울 마포구 홍대 앞의 미용실 순시키헤어 5층에는 히잡을 쓰는 여성 고객을 위한 전용 공간이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머리카락을 보일 수 없는 고객들이 히잡을 벗고 스타일링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미용실 방문이 늘면서 문화권에 따라 미용실의 서비스가 세분화한 셈이다.
K-미용실의 인기는 달라진 외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패턴의 단면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방한 관광객들이 역사적 명소를 중심으로 일정을 소화했다면 이제는 미용실이나 한의원 등 한국인들의 평범한 일상 체험이 외국인들에게여행의 목적이 되고 있다. 이예린 하나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한국인처럼 살아보기’ 보고서에서 “콘텐츠에서 보던 한국인의 일상적인 활동을 경험하는 데일리케이션(Dailycation, Daily+Vacation)이 최근 외국인 관광객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했다”고 짚었다.

방한 외국인이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상품은 무엇일까. 크리에이트립에 따르면 피부과(22%), 헤어숍(20%), 메이크업(19%) 순이었다. 크리에이트립의 지난해 뷰티·의료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년 대비 71% 성장했다. 외국인들에게 K뷰티 체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코스가 됐다.
외국인이 선호하는 K뷰티도 변화고 있다. 1~2년 전만 해도 K뷰티 체험은 퍼스널 컬러와 메이크업 중심이었지만 이제 뷰티·의료 카테고리의 매출 1위 상품은 ‘피부 시술’이다. 비중이 36%에 이른다. 이어 시력 교정 상품 비중이 32%로 전통적 K뷰티 체험 상품인 메이크업(15%)을 두 배 이상 앞질렀다. 콘텐츠에서 본 K뷰티를 직접 체험하는 수준을 넘어 의료·웰니스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가 뚜렷하다.
최근에는 외국인들의 관심사가 세신이나 수액(링거) 맞기, 침·뜸, 신점 등 한국인들의 보다 내밀한 일상 영역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프랑스인 마리 씨는 지난해 한국을 관광하면서 서울 동대문구의 한 한의원에 들러 뜸과 부항 치료를 받았다. 그가 해당 한의원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첫 방문 때도 만족스러웠지만 두 번째에는 더욱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며 “가격도 합리적이어서 자주 이용하고 싶고 가족들과도 함께 오고 싶다”고 말했다.
크리에이트립 기준 한의원 예약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무려 89배 급증했다. 수액 및 건강검진 거래액은 281%, 1인 세신숍은 170% 늘었다. 드라마 ‘케이팝데몬헌터스’에서 나온 세신 장면이 화제가 되면서 세신숍이 신규 인기 카테고리로 급부상했다.
특히 세신의 경우 웰니스 트렌드와 맞물려 외국인을 위한 ‘럭셔리 세신’ 서비스도 등장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인 웨스틴조선 서울은 세신에 대한 외국인 고객들의 호응이 커지자 지난해 11월 한국 전통 요소를 가미한 한국식 세신 서비스 ‘온기(On-gi)’를 새롭게 출시했다. 은은한 한국 전통음악에 자연의 향을 더하고 온탕에서 피로를 푼 후 전문 세신사가 이태리타월·쌀겨를 이용해 스크럽과 트리트먼트를 제공하는 형식이다. 웨스틴조선 서울이 온기 출시 전 1년간 세신 프로그램을 운영했을 때 전체 이용객의 84%가 외국인일 정도로 관광객 호응이 컸다.

일상 체험 여행은 관광 소비 패턴도 바꾸고 있다. 과거 외국인의 쇼핑 장소였던 면세점 매출은 2019년 178억 42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21조 원)에서 지난해 65억 6100만 달러(지난해 환율 기준 약 9조 원)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반면 한국인의 일상적인 소비가 이뤄지는 올리브영과 다이소·무신사의 외국인 매출은 2024년 기준 106%, 43%, 343% 증가했다. 올해 주요 백화점 업체의 외국인 매출도 처음으로 1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들이 K 일상 제품을 현지에서 역직구하며 소비가 연장되는 현상도 포착된다. 올리브영이 이달 1일부터 시작한 글로벌몰 정기 할인 행사에서 마사지 용품 카테고리의 누적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0배 이상 급증했다. 올리브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K팝 아이돌 부기 관리법’ 등이 확산한 영향”이라며 “한국을 다녀간 외국인을 중심으로 글로벌몰 가입과 이용이 지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혜민 크리에이트립 대표는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방문에 그치지 않고 한국인의 일상 속으로 깊이 빠져들기를 원한다”며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인처럼 살고, 관리하고, 즐길 수 있는 ‘한국인스러운’ 여행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흥록 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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