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리포트] "우린 심판 받을 것"…역사 지키며 하늘 품은 뉴욕의 지혜
[편집자주] 서울 집값은 지방 평균의 약 4배에 달한다. 그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택은 지어지고 있지만, 교통이 불편한 외곽은 미분양으로 남는다. 도심 고밀도 개발로 집값을 안정시킨 선진국에서 교훈을 찾아보자.

하늘은 도시의 마지막 부동산이다. 뉴욕에서는 역사적 건물 위에 남겨진 '미사용 용적률'이 인근 초고층 빌딩 개발사에 매각되고, 도쿄에서는 철도역이 자신의 상공 개발권을 팔아 100년 된 구청사를 복원했다. 그 중심에 공중권(Air Rights)이 있다.
해당 부지에 허용된 용적률 중 쓰지 않은 공간을 다른 곳에 양도하거나 매매하는 개발권 양도제(TDR, Transfer of Development Rights)가 그 대표적 활용 방식이다. 그러나 공중권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제도는 단순히 개발업자의 배를 불리는 수단이 아니었다. 보존과 개발, 사유재산권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수십 년에 걸쳐 치열하게 빚어낸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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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완공된 펜실베이니아 역은 뉴욕 최대의 공공 건축물이었다. 로마의 카라칼라 목욕탕을 모티브로 설계됐으며, 46m에 달하는 아치형 천장을 84개의 화강암 도리아식 기둥으로 받쳤다. 건축사학자 빈센트 스컬리 예일대 교수는 "펜실베이니아 역을 통해 사람들은 신처럼 도시에 입장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철도 수요가 급감했다. 역사를 운영하는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PRR)도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다. 결국 PRR은 재정난을 타파하기 위해 이 역사적 건축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다.
역사적 건축물의 철거는 격렬한 반대 시위로 이어졌다. 수많은 건축가와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섰지만, 뉴욕시는 사유재산의 철거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며 방관했다. 1963년 10월 28일 철거가 시작됐다. 이 비극이 남긴 사회적 충격은 즉각적이었다. 당시 뉴욕타임스 건축 비평가이자 훗날 '보존 운동의 대모'로 불린 에이다 헉스터블은 1963년 10월 30일 "우리는 아마도 우리가 건설한 기념물이 아니라, 우리가 파괴한 기념물로 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국 1965년 4월, 뉴욕시는 랜드마크 보존법(Landmarks Preservation Law)을 제정했다. 그러나 제정 당일, 뉴욕타임스 사설조차 "법이 생겼다 해도 뉴욕의 과거를 지켜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실질적인 유산을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뉴욕은 여전히 잃어버린 역사의 자리 위에 빈 공간만 새겨놓은 도시"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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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이니아 역의 비극은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살려냈다. 1968년 그랜드 센트럴의 소유주가 상공에 55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올리려 하자, 랜드마크 보존 위원회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이끈 시민운동이 정면으로 맞섰다. 10년에 걸친 법정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1975년 재클린은 뉴욕 시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도시의 자랑스러운 기념물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우리 자녀들이 역사와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을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1978년 미국 연방 대법원 판결은 보존의 손을 들어줬다. 동시에 대법원은 역사적 건물에 대한 개발 제한이 곧 재산 몰수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판시하면서, TDR을 통해 미사용 공중권을 인근 부지에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함으로써 공중권 거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켰다. 이 판결이 낳은 대표적 성과가 '원 밴더빌트(One Vanderbilt)'다. 시행사 SL그린은 그랜드 센트럴의 공중권을 매입해 31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초고층 마천루를 완공했다. TDR은 이처럼 보존 측에는 재정적 유인을, 개발 측에는 용적률 확보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는 '윈-윈의 그릇'으로 설계됐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 그릇이 저절로 채워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한다. 뉴욕대 로스쿨 힐스·슐라이허 교수는 2019년 논문에서 TDR을 "납세자 비용 없이 보존과 개발의 이해관계를 결혼시킨 마법 같은 제도"로 보는 시각은 "대부분 연막"이라고 지적했다. TDR이 작동하려면 "협상 테이블에 힘 있는 이해관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티코프 센터(현 601 렉싱턴 빌딩)가 성 베드로 루터교회의 공중권을 매입해 교회 위로 캔틸레버 구조의 마천루를 세운 것도, 브로드웨이 극장들이 공중권을 매각해 저층 극장을 유지한 것도 제도가 자동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었다. 이해관계자들이 테이블에 함께 앉은 정치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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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권은 단순히 건물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버려진 공간을 입체적으로 부활시키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민간 부동산 개발인 뉴욕 허드슨 야드(Hudson Yards)는 실제 열차가 운행 중인 28에이커(약 11만 3000㎡) 규모의 철도 선로 상공에 거대한 인공 데크를 덮고, 그 위에 초고층 빌딩과 녹지를 조성했다. 공공 인프라 금융 전문기관 글로벌 인프라 허브는 이 프로젝트를 공중권 수익화의 모범 사례로 꼽으며 "공중권 매각은 도시 내 개발 잠재력과 자산 가치를 개방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지상 개발 공간이 제한돼 있고, 소규모·공공·역사적 등록 건물들이 자신의 개발권을 매각할 여력이 있는 경우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시행사 릴레이티드(Related Companies)는 MTA(뉴욕 광역교통국)로부터 공중권을 99년간 임차하는 대가로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를 지불했다. 공중권을 활용해 공공 재정을 충당한 것이다.

도쿄의 마루노우치 지구는 민관 협력의 또 다른 백미다. 2002년 일본 정부는 도시재생특별법을 제정해 도쿄역 일대를 긴급 정비지역으로 지정했고, 1996년부터 도쿄도·치요다구·JR동일본·개발협의회가 함께 꾸려온 자문위원회가 대변혁의 실행 주체가 됐다. 도시계획 전문 연구기관 ULI(Urban Land Institute)는 마루노우치 재개발을 분석하며 "정부 기관, 민간 개발사, 지역 공동체가 도시 개발 합의를 바탕으로 재개발 콘셉트·사업 목표·도시 설계·기반 시설 개선을 함께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도쿄역은 미사용 용적률을 주변 개발사에 매각해 얻은 수익으로 1914년 완공된 마루노우치 구청사를 원래 모습대로 복원했다. 공중권이 역사(歷史)를 되살리는 재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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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도쿄가 수십 년의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해법은 같았다. 개발업자의 사적 이익과 도시의 공적 가치를 맞교환하는 구조였다. 하늘을 높이 쌓을 권리를 허용하는 대신 역사적 건물을 지키고 공공 공간을 돌려받는 것. 그 균형을 만들어낸 것은 법 조문이 아니라 시민 사회의 압력과 이해관계자들의 협상이었다.
◆특별취재팀=이무영 제도혁신연구소 부소장, 이남의 건설부동산부 기자, 김성아 정치경제부 기자, 이화랑 건설부동산부 기자
이무영 제도혁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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