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자존심 싸움…쿠팡 김범석은 ‘필패’ 한다

한겨레 2026. 3. 1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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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리포트 - 최한수의 경제와 정치의 경계에서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연합뉴스

한국의 유통 시장은 플랫폼 창업자의 ‘독기’가 재벌 3세의 ‘치기’를 누르는 순간 재편되었다. 필자는 한때 정용진 회장의 신세계보다 김범석 의장의 쿠팡을 더 높이 평가했다. 적어도 그가 정 회장과 달리, 사적 감정 표출과 공적 역할 수행을 구분할 분별력은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헤지펀드 시타델(Citadel)의 최고경영자(ceo) 켄 그리핀은 한 강연에서 “(비록) 자신은 영업에 관심이 없지만, 모든 최고경영자는 본질적으로 세일즈맨”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 오른 순간, 최고경영자에겐 그 자신의 선호와 무관하게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느 날 밤 재벌 3세가 소셜미디어에 뜬금없이 ‘멸공’ 발언을 올리는 돌발적 행동의 파장을. 에고가 강한 경영자일수록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을 표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가 조금이라도 회사를 생각한다면, 그 에고를 억제하는 것 역시 최고경영자의 자질임을 인지해야 한다. 재벌 3세의 이러한 돌발적 행동이 ‘신호’가 아니라 ‘소음’이었음은 이후 그의 행보가 증명한다. 신세계의 지마켓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계 알리바바와 전략적 제휴를 택하는 모순적 행보를 보였으니 말이다.

반면 김범석 쿠팡 아이엔시(Inc) 의장은 달랐다. 쿠팡은 로켓배송을 앞세워 기존 유통 재벌들이 안주하던 온라인 시장을 뒤흔들었다. 특히 새벽배송은 쿠팡만의 강력한 경제적 ‘해자’가 되었다. 특히 수도권 30∼40대 직장인들이 새벽배송에 부여한 가치는 쿠팡에 든든한 정치적 방패막이가 되었다. 또한 김 의장은 당국이 무엇을 원하는지 읽어낼 줄 아는 정치적 감수성도 갖추고 있었다. 지금은 미국 기업임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문재인 정부 초기 쿠팡은 ‘한국 고용에 공헌하는 국민기업’ 담론을 즐겨 활용했다.

혁신의 민낯: 아마존 모델의 답습과 규제 공백의 착취

그러나 쿠팡에 대한 우호적 판단은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첫째, 쿠팡 역시 여느 플랫폼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벌과도 다르고, 미국의 빅테크와도 다를 것이라는 기대 섞인 바람은 플랫폼 기업에 대한 필자의 순진한 인상 비평에 불과했던 것이다. 둘째,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쿠팡이 법 집행 당국과 의회에 보인 이해 못 할 오만하고 공격적 태도다. 그 오만함은 김범석 의장 또한 정용진 회장처럼 회사의 이익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앞세우는 경영자임을 방증한다.
쿠팡 운송차량의 쿠팡 로고. 연합뉴스

쿠팡은 초기에는 기존 질서를 깨는 도전자, 소비자의 편에 선 스타트업으로 자신을 포장해왔지만 일정 수준의 시장지배력을 얻은 순간 그 민낯을 드러냈다. 쿠팡의 성장 전략은 아마존 모델의 판박이다. 초기엔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망을 구축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뒤 시장을 장악해 플랫폼 안의 소상공인으로부터 잉여 이익을 흡수한다. 쿠팡의 노동 환경을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물류센터와 새벽배송 규제에 대한 쿠팡의 입장은, 외교적 수사를 걷어내고 보면 ‘준법보다 이윤’으로 요약된다. 버티는 것이 이득이면 법 위반을 무릅쓰고, 더는 버틸 수 없으면 로봇으로 대체한다. 노동친화적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이제 거추장스러운 치장에 불과하다. 이 역시 쿠팡의 롤모델인 아마존이 실제로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소파레러티(Sofa-larity): 쿠팡이 만들어낸 편익

경제학에서 쿠팡 같은 플랫폼을 규율하는 가장 흔한 접근 방식은 자사상품 우대나 알고리즘 조작을 적발해 사후 제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집행이 느리고 소송으로 지연되기 쉬워 억지력이 약하다. 무엇보다 문제의 핵심인 시장지배력을 만들어낸 결합 구조(플랫폼 규칙·데이터·물류의 통합)를 그대로 둔 채, 개별 행위만 건드린다는 한계가 있다. 사전 예방책으로도 부족하다. 경쟁 촉진 대안으로 거론되는 상호운용성도 전환비용을 낮추는 효과는 있지만, 물류·데이터·멤버십에서 나오는 플랫폼의 지배력 문제를 풀기에는 구현 난도와 실효성이 제한적이다.

정치적으로 플랫폼 규제의 방식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수수료 상한을 설정하는 것이다. 전통적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플랫폼 수수료 규제는 혁신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필자 역시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예외적인 경우 이러한 접근방법이 정당화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바이든 행정부에서 빅테크 독점 규제를 주도했던 컬럼비아대 팀 우(Tim Wu) 교수의 ‘소파레러티(Sofa+ularity)’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파레러티란 플랫폼이 제공하는 쇼핑, 콘텐츠, 추천 서비스 등 ‘무마찰 편의’를 뜻하는데, 진정한 혁신이 아니라 “없으면 불편한 중독적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빅테크의 혁신이 가져온 소비자 후생 증가와 ‘소파레러티’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쿠팡이 쿠팡플레이를 운영하며 사용자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이 혁신이 아니라 소비자를 고착시키려는 전략적 지대 추구 행위에 가깝다고 본다. 양면 시장 이론에 따르면, 플랫폼 수수료는 궁극적으로 입점업체와 소비자의 가격탄력성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소비자의 가격탄력성이 중독에 의해 극도로 낮아진 상태라면, 플랫폼은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여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비용을 전가할 수 있다. 따라서 소파레러티에 의한 중독적 구조를 규제하는 것은 파괴된 가격 메커니즘을 정상화하는 합리적 정책 개입일 수 있다.

쿠팡의 데이터는 어느 나라 기업이 관리해야 하나

이번 사태가 던진 또 다른 질문이 있다. 국민의 민감 정보를 미국 기업인 쿠팡에게 맡겨도 되는가라는 것이다. 쿠팡이 축적한 데이터는 알고리즘 개발에 필요한 익명의 구매 이력을 넘어선다. 수백만 소비자의 실거주 주소, 카드 정보, 그리고 일상적 소비 행태가 집적된 민감 정보로 디지털 지문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민감 정보가 외국 기업의 서버에 독점 관리되는 구조를,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네이버나 신세계와 같은 국내 기업들은 쿠팡처럼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와 맞서거나, 미국 정부의 압력을 지렛대 삼아 국내 법 집행 사안을 통상분쟁으로 전환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단국가라는 한국의 지정학적 특수성까지 고려하면 이 질문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미국이 틱톡(TikTok)을 압박한 논리를 떠올려보라. 중국 기업이 미국 소비자의 데이터를 보유하는 것 자체가 국가안보 위협이라는 것이었다. 그 논리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미국 기업이 한국 소비자의 일상 소비 행태와 신원 정보를 독점 관리하는 구조 역시 동일한 위험을 내포한다. 물론 미국은 중국이 아니기에 이러한 접근은 다소 과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이후의 일련의 사태들은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어느 수준까지 자국의 사법주권이 관여하는 곳에 두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알고리즘 규제와 같은 공정거래법 차원의 접근으로는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사례처럼 쿠팡의 개인정보 관리 부문을 한국 자회사 혹은 한국 기업과의 합작법인으로 분리 운영하도록 강제하는 구조적 분리 명령 같은 새로운 규제 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와 맞서려 하지 마라

김범석 의장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다. 정부와 맞서 이기는 기업은 없다. 쿠팡보다 몇 배나 크고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던 삼성조차 정부와 정면충돌을 피했다. 한국의 사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트럼프 취임식에서 실리콘밸리 빅테크 수장들이 얼마나 공손하게 줄을 섰는지를 떠올려보라.

필자가 김범석 의장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은 그가 감정보다 계산이 앞서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행보는 어떤가. 사사건건 법 집행 당국에 맞서고, 미국 정부를 방패막이 삼아 한국 국회를 압박하는 모습은 냉정한 창업자의 그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하버드 출신 교포 사업가의 오만에 굴복할 만큼 만만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김범석 의장이 진심으로 주주 이익을 우선한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한국 정부와 한국 소비자 앞에 신뢰를 쌓는 것이다. 독기는 시장을 뒤흔드는 데 쓸 때 빛난다. 정부와 맞서는 데 소진할 것이 아니라.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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