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통장 빌려주면 月수십만원”… 불법도박 먹잇감 된 외국인 계좌
한국인 통장 3분의 1 가격에 거래
“무심코 빌려줬다가 범죄자 전락… 목적 확인 등 개설 요건 강화 필요”

자신을 ‘베트남 업자’라고 소개한 한 인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대출 광고다. 당장 돈이 급한 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에서 개설한 은행 통장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유혹이다. 하지만 이 ‘담보’의 실체는 범죄의 통로였다. 유학생이 업자에게 넘긴 통장은 곧바로 범죄 조직의 손에 들어가 불법 도박 사이트의 자금 세탁용 ‘대포통장’으로 돌변했다. 유학생이 푼돈을 빌리려다 자신도 모르게 국제 범죄 조직의 하수인이 되는 구조다.
●외국인 통장 150여 개, 불법 자금세탁에 쓰여



이 사이트는 인공지능(AI) 딥페이크 기술로 축구선수 손흥민 등 유명인을 사칭해 홍보를 벌이다가 강원랜드가 지난해 7월 진정서를 내 경찰 수사를 받아왔는데,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외국인 명의의 계좌를 ‘방패’로 삼은 것이다. 현재 경찰은 해당 도박 조직의 한국 총판과 외국인 계좌 판매책을 수사하고 있다. 도박없는학교 조호연 교장은 “청소년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강력한 처벌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외국인 명의 통장이 범죄에 악용되는 핵심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도박없는학교 관계자는 “암시장에서 외국인 통장은 통상 100만∼120만 원에 거래돼 한국인 통장(약 400만 원)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국인 대포통장은 명의자가 범죄를 인지하면 계좌를 정지시킬 위험이 크고 만약 처벌을 감수했다면 ‘위험 비용’이 포함돼 단가가 높다. 반면 외국인은 ‘귀국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인식으로 통장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범죄 조직 입장에선 ‘가성비 좋은 소모품’으로 통한다.
유학생 등 외국인은 “통장 대여 시 월 수십만 원을 보장해 준다”거나 “10일만 유지하면 60만 원을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에 악용된 외국인 통장 명의를 추적해 보면 대개 유학생 등 젊은층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통장을 함부로 빌려주거나 양도하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은 벌금 3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출입국 사범 심사를 거쳐 거의 예외 없이 강제퇴거 조치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헐값 대포통장’의 범람이 결국 범죄 조직의 진입 장벽을 낮춰 온라인 범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는 만큼, 외국인 통장 개설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는 외국인등록증이나 여권, 재학·재직 증명서 등만 있으면 통장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앞으로 실거주지 확인이나 실제 사용 목적에 대한 증빙 절차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통장 개설 목적과 정상 고용 상태, 취업 회사의 정상 운영 여부 등을 엄밀하게 확인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정동진 기자 haedoji@donga.com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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